ㆍ『백록원』과 『태백산맥』
천중스의 『백록원』은 바이루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바이(白)씨와 루(鹿)씨 등 두 집안의 3대에 걸친 이야기이다. 산시성(陝西省) 지역의 ‘바이루 마을(白鹿村)’이라 불리는 작은 촌을 중심으로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한 보통 사람들의 삶, 교류와 암투, 일상의 무력함과 비극을 그린다. 이들의 끈끈한 삶은 청나라 말 봉건사회의 몰락, 군벌과 국공내전, 신해혁명,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직전까지 섬세하게 나타난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여순사건 직후부터 한국전쟁 중단까지’ 약 5년(1948-1950) 정도의 시간 안에서 280여명의 인물들이 ‘벌교, 순천, 여수, 지리산’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서사를 만들어내는 이야기이다. 작가는 분단이라는 비극적 체험을 소설로 형상화하면서 독자에게 ‘민족’, ‘이데올로기’에 대한 정의와 그 대결의미가 무엇인가 화두를 던진다. 텍스트의 시공간은 한정적이지만, 내적 공간은 해방 전, 일제강점기, 구한말까지 확장된다. 텍스트는 이념 선택과 대결 문제를 쌀과 토지 배분 문제에 따른 계층 간의 대립 문제와 연결 지으면서 민족 내부의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청나라 말부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까지 50년이라는 중국 현대사를 그린 『백록원』은 출간될 때부터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중국 학계에서 평론이나 논문으로 연구되고 있으며 독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한국 학자들도 『백록원』의 문학적 특징, 미덕, 가치와 의의, 작가 의식, 가독성(可讀性), 교육성, 성(性) 심리 묘사, 창작 의식, 서사구조 등 다양한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태백산맥』은 작가의식, 역사의식, 이데올로기, 분단인식, 인물 유형, 민중성, 탈식민성 연구, 서사 미학적 관점에서 텍스트의 특징, 의의, 한계를 내용층위와 표현층위로 구분하여 연구한 서사담론 연구, 인물들의 역사 인식, 역사적 의미, 역사소설의 증언사적인 의미와 가치에 대한 연구 등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태백산맥』 역시 연극과 영화로 재탄생되기도 했으나 일부만 각색되어 상영되었고, 서사의 주요 부분이 생략되어 아쉬움이 남는다. 총 10권으로 만들어진 서사를 두세 시간 안에 전부 재현한다는 것은 무리이다. 압축된 내용을 가지고 만들어진 서사물 안에서는 작가가 의도한 서사전략이 무대에서 구현되기 힘들 뿐 아니라 관객 또한 맥락을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이런 지점들은 텍스트가 영화나 연극으로 재탄생되었을 때 그 의도와 가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렇듯 『태백산맥』과 『백록원』은 각각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국과 중국 현대사의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문제, 모순과 갈등에 대해 서술한다. 각 문단에서 문학사적 의미와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작품이지만 아직 두 작품을 비교한 연구가 보이지 않는다.
『태백산맥』과 『백록원』은 유사한 여러 지점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 조정래와 천중쓰의 나이, 작품활동 시기, 텍스트의 창작 시기 등이 유사하다. 둘째, 두 작품 모두 텍스트의 시간과 공간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셋째, 이념, 계급, 지역, 성별 등에 대한 작중 인물의 대립 구도가 비슷하게 전개된다. 넷째, 거대 역사 담론을 해체하고 민중의 고난과 개인의 역사를 전면에 내세웠다. 다섯째, 영웅 인물 일변도의 역사소설의 패턴에서 벗어나 있다. 소설 창작에 있어서 인물 형상화 방법은 텍스트의 서사구조를 연구하는데 기본적인 방법 중 하나로 작품의 성패를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백록원』과 『태백산맥』의 주요 인물의 형상화 방법을 통해 서사 공간에서 텍스트 주제가 어떻게 구현되는지 살펴보자.
ㆍ신·구 역량의 갈등 속에 나타난 비극적 인물들
사실과 허구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여러 인물들이 지닌 본질적 특성을 재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인물의 전형화에 성공했다고 말한다. 『백록원』의 중심인물들은 관중 지역의 백록원(白鹿原)에서 살고 있는 백씨와 녹씨 양가 집안사람들이다. 물론 주선생이나 렁(冷)선생, 녹삼, 흑왜, 소아, 전복현, 악유산(岳維山) 등을 위시한 다양한 주변 인물들도 등장한다. 인물들이 보여주는 대립과 투쟁의 삶은 역사적 상황의 맥락 속에 작동하면서 그 존재의 의미를 증폭시킨다.
---「제1장 한·중 소설의 인물 형상화와 서사전략(임환모·엄영욱·전영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