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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랑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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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랑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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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43쪽 | 260g | 124*198*13mm
ISBN13 9791192651101
ISBN10 1192651103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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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   수뗑이   평점4점
  •  특이사항 : 시인수첩 시인선 71-한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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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최초는 부풀어 거대하고 최후는 희박해

알고 있는 답인데 알고 싶지 않다

자꾸 살아나는 건 두렵기 때문 아니
약하기 때문 아니 우연 때문 아니
문명 때문 아니다 힘을 내야지
커피와 피로회복제를 사들고
시작을 시작해보자

오늘 같은데 어제라고
내일 같은데 오늘이라고
언제라고 말해도 지나치다고

그 여름 온통 사랑했던 사람은
태어난 적이 없다 하고

벌거벗은 아이들은 백발의 머리를 빗고
배가 부푼 여자들은 죽은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손을 대면 풀썩 무너질 것 같은 정물들이라니

매립으로 완성된 이 도시는
비린 멀미를 그치지 않는다

시간을 묻고 장소를 묻고
사람을 묻고 기억을 묻고
돌아보면 어느 한 뼘 한 틈
매립이 아닌 자리가 없으니

걸으려 애쓸수록 떠있을 뿐
아픈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
온전히 가라앉을 수가 없다

오른쪽이 왼쪽으로 돌아오다니
위가 아래로 돌아오다니

지금은 언제인가요
나는 누구입니까

한로에 늙은 참새가 물에 들어 대합조개가 되고
입동에 꿩이 물에 들어 무명조개가 된다고
그들이 토해내는 기운이 쌓여
신기루를 지어내는 이야기라니
전언이란 믿을 것도 못되지만

바닷바람이 맵차게 도는 건물 틈에서
두 팔을 있는 힘껏 멀리 저으며
코를 높이 들고 위로 조금 더
고개를 내밀어 숨 쉬고 싶지만

물에 불어 희미해진 이목구비만
텅 빈 공중을 향하고 있다

모든 것은 물 밖의 일
수면 아래는 웅성거림 뿐

천상천하 사람 아닌 것들의
울음과 향방만이 뒤섞인 채

바다의 바닥에는 모래사막이 있고
모래사막의 바닥에는 바다가 있어서
고래 뼈 산호석 조개무지 같은 것들이

이해와 희망 같은
도무지 아름다운 것들이
두 눈을 감고 손발을 묶은 채
최선을 다해 다정해지다니

바다였던 광장 바닥에
푸른 귀를 그려 넣으면
귓속으로 마른 모래가 차오르고

이상하게 캄캄한
고요가 온다
---「매립」중에서

새벽 세 시, 손가락에서 싹이 나는 꿈을 꾸었다 떡잎을 지나 온전히 자라난 식물은 어마한 나무가 되려는 걸까 뿌리를 들추어 보느라 놀라움도 두려움도 잊었지 언젠가 온몸 가득 잎사귀들이 솟구치겠지 숲이 보이지 않을 만큼 무섭게 크겠지 아주 깊이 뿌리를 내리겠지 너에게 나의 그늘을 줄게 향기를 줄게 연두 빛 손끝에는 푸른 열매들이 매달릴 거야 약간의 심장과 약간의 감정 약간의 피와 약간의 재 약간의 돌멩이와 약간의 흙 약간의 강물과 약간의 짐승 약간의 먼지와 약간의 벌레 그리고 또 약간의 약간이라도 되기를 욕망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기억하고 후회하고 그리워하고 용서하고 싶어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까 류, 다시 잠들 수 있게 뭐든 읽어 줘 너의 시도 좋고 일기도 좋고 편지도 좋고 유서도 좋고 그것을 들으며 잠을 청하려는데 어떤 잠은 두 번 다시 깰 수 없이 깊이 올 텐데 마지막 난간 밑으로 얼어붙은 수면이 깨지는 소리가 번져오는데 지금 어디 있니 새벽 세 시가 되기 위해 흘러가는 모든 류가 다시 한 번 나라는 거니
---「모든 류」중에서

모스코는 두 시
베이징은 일곱 시
서울은 여덟 시 오 분
뉴욕은 일곱 시 사 분
이곳은 오전 혹은 오후의
여덟 시 정도가 적당하다

검진을 기다리는 대기실
진회색 벨벳 바지를 입은 여자
큰 리본을 단 연초록 코트의 여자
붉은 운동화 옆에는 붉은 깅엄체크 운동화
표정은 시선은 동작은 일제히 감사와 용서를

문진표를 작성하고 제출한다
큰소리로 질문하고 대답한다
주차권이 필요하십니까
차량번호를 불러주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이쪽입니다

어떻게 붉고 따스한데
무엇인지 모를 것을 모르다니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 그게 무엇일까
묻는다면 뭘까요 꼭 답해주셔야 합니다,
만약에 아직도 괜찮습니까

파고든다면 사로잡힌 것,
전부라서 기를 쓰고 애걸복걸
무릎을 꿇는 흔해빠진 클리셰라니

어쩔 수 없다 말하면 속인 것 같아
여기까지입니다 말하면 속은 것 같아

균열을 파고들며 자라나는 풀도
기를 쓰고 파고드는 검은 발톱도
제발 놔줘 그러나 열린 문이 없어서
끝도 없이 신호를 보내는 거라면

불이 켜지고 워밍업이
이어진다, 원 투 원 투

늦가을 철새 같은 대열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하지 가야 할까

혀는 두 갈래 네 갈래로 갈라지고
두 팔은 희미하게 스며드는데 깊어 캄캄해
내 몸에 갇힌 거라면 어쩌지
알고 있잖아

맑은 살점을 매단 아가미가 뻐끔거릴 때
벼락 맞아 그을린 가지들이 흔들릴 때
벌어진 입 속 바싹 마른 혀가 해를 찌를 때
다리가 부러진 새가 힘차게 날아오를 때

옷섶을 열고 수많은 가슴을 꺼내어
물리고 싶어 울리고 싶어
살게 하고 살고 싶어
더욱 하고 싶어

그런데 벌써
차례가 지났습니까
---「검진센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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