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시인 노동(盧仝)의『칠완차가(七碗茶歌)』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차를 일곱 잔 마시고 나니 “양 겨드랑이에 맑은 솔바람이 이는구나(唯覺兩腋習習淸風生)”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신선의 경지이며(此境幾欲仙) 세상사 속된 일들이 모두 사그라진다(世間俗事皆可抛).
일반적으로 열심히 차를 마시고 차를 잘 아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차를 음미한다”고 말한다. 마치 거기에 어떤 심오하고 현묘한 이치가 있는 것처럼….
다실에서 차를 마실 때 우아하고 침착하게 차를 따르는 팽주의 모습, 영롱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붉은 보이차(普?茶), 비취 녹색의 녹차(綠茶), 춤추는 듯한 군산은침(君山銀針),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기문홍(祈門紅), 귀에 속삭이는 듯한 사죽(絲竹), 찻잔에 담긴 차, 부드러운 미소,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차향 등 이러한 것들은 자신을 무아지경에 빠진 듯한 착각을 준다.
눈에 차가 있고(眼中有茶), 입속에 차가 있고(口中有茶), 마음속에 차가 있다(心中有茶).
“좋은 차를 가지고 있으면서(有好茶喝), 좋은 차를 마신다는 것은(會喝好茶),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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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노신(魯迅) 선생이 하신 감탄의 말이다. 사실 유유자적한 삶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고 또 누려야 할 행복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행복한 삶은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위대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너무 바쁘게 지내는 탓인지 자신의 손에 쥐어진 차가 담긴 잔을 망각하고 차를 즐길 수 있는 행복을 잊고 산다. 누구나 오늘을 살면서 매일 피로를 느끼고 권태를 느낀다. 그럴 때 준비된 다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생활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찻집에 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차를 사다가 물을 손수 끓이고 차를 우려서, 혼자서 아니면 가까운 친구 두세 명 정도 모여 차를 마시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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