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으로는 노화를 질병, 치료 대상으로 간주하고 암이나 감염병처럼 치료 방법을 개발하려고 한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기 위해 노력한 지 2,000년이 넘게 흐른 지금까지 아무도 성공한 사례가 없지만, 그런 방법이 개발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주도적 유전자 변이에 의해 발생하는 일부 암과는 달리, 사람의 노화는 여러 장기와 조직의 구조, 기능 이상이 오랜 시간 동안 섞이고 상호작용한 최종 결과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어떤 생물학적 경로에 개입하는 한 가지 약물이 ‘이미 노화의 결과물인 노쇠가 나타난 사람’에게서 눈부신 효과를 보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수십 년간 동물과 사람을 통해 연구된 결과들이 이를 증명한다. 오히려 많은 연구들을 종합하면 노화의 속도는 개인이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다. 그다지 비싼 돈을 들이지 않아도, 또 뼈를 깎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말이다.
---「프롤로그」중에서
의과대학에서는 질병을 중심으로 공부를 하고, 그 질병의 증상이나 징후, 검사 패턴이 어떤지를 주로 배운다. 반면에 환자는 불편함을 가지고 병원에 온다. 거꾸로다. 실제 진료에서 환자의 불편함에서 시작해 문제를 푸는 과정은 주로 전공의를 하면서 학습하게 된다. 전공의 수련 과정은 이상적으로는 아기들이 손을 이리저리 뻗어보면서 세상을 배우는 과정인 팅커링tinkering과 비슷하다. 지도전문의가 책임을 지고 안전망을 유지해주면서, 전공의는 여러 가이드라인이나 교과서에 근거해서 어느 정도 스스로 의사결정을 시도한다. 전공의는 스스로 내린 다양한 의사결정에 대해 지도전문의와의 회진을 통해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으로 피드백을 받거나 또는 조금 더 공부해야 할 학습 목표를 제공받게 된다. 윌리엄 오슬러 같은 19세기의 대가들이 미국의 존스홉킨스 대학을 시작으로 이런 도제식 교육 방법을 확립했고, 지금은 전 세계의 전공의들이 비슷한 방법으로 수련하고 있다. 이런 수련 끝에 의사들의 머릿속에는 어떤 사고 과정의 컴퓨터 회로가 형성되는데, 환자가 가지고 온 문제를 풀어나가는 이런 생각의 과정을 행동경제학적 방법을 차용해 재미있게 기술한 책이 제롬 그루프먼Jerome Groopman의 《닥터스 씽킹》이다. 요약하자면 의사들은 불확실성 속에 경험에 기반한 휴리스틱heuristics이라고 하는 여러 가지 직관적 어림짐작과 베이지안Bayesian이라고 하는 이성적이고 수치화된 확률 계산을 이용해서 잠정 진단을 수정해나간다.
---「pp136~138, 오컴의 면도날과 히캄의 격언」중에서
40세 남자인 C는 별다른 지병 없이 비교적 건강하게 살아오다가, 건강검진에서 담낭(쓸개)에 용종이 발견되었다. 담낭 절제술이 필요하다는 권고를 받았고, 종합병원에 입원해 첫째 날 간단한 검사를 받고, 둘째 날 수술을 하고, 셋째 날 통증은 아직 있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어 퇴원을 할 수 있었다. …… 그러나 C 씨와 동일한 담낭 절제 수술을 받았지만 그 결과는 전혀 다른 D 할머니의 사례를 보자. C 씨와 D 할머니는 모두 내가 경험한 실제 환자다. 84세 여성인 D 할머니는 집에서 실내 일상생활은 독립적으로 할 수 있었고, 무리하지 않게 집 앞 산책 정도는 해오고 있었다. 그동안 당뇨, 고혈압과 무릎 관절염, 척추관 협착증으로 여러 병원들을 다니고 있었다. 2년에 걸쳐서 담낭염과 담도염으로 항생제 치료를 받았는데 이번에 담낭을 절제하기로 했다.
수술은 잘 됐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할머니는 계속 자려고 하고 먹지 않았다. 앞 장에서 보았던 섬망이 생긴 것이다. 누워서 자기만 하는 할머니 몸에 들어가는 것은 수액과 항생제뿐이었다. 얼마 후 가래도 늘고 열이 나면서 호흡이 가빠지고 산소 수치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폐 사진을 찍어보니 폐를 둘러싸고 있는 흉막 공간에는 물도 찼고, 폐렴도 생겨 있었다. 광범위 항생제가 처방되었고, 할머니는 계속 자기만 했다. 가만히 누워 있다 보니, 엉덩이에는 욕창이 생겼다. 며칠이 지나면서 다행히도 열이 떨어지고, 할머니는 눈을 떠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침대에서 일어날 힘이 없었다. 죽을 떠먹여드려도 잘 넘기지를 못했다.
---「pp149~150, 질병만 보아서는 안 되는 노년의 입원」중에서
사람이 기계가 아니고 생명체라는 점을 놓치면, 간혹 현상을 잘못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 연구 보고서는,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서비스가 분절되고 중복된 상태에서 제대로 서비스가 연계되지 못한 채 운영되다 보니 요양이 필요한 노인이 요양병원에 입원하고, 의료적 처치가 필요한 노인이 요양시설에 입소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람은 아픈 정도가 그때그때 변하는데, 예를 들어 오늘은 51만큼 아프니 요양병원으로 가고, 내일은 49만큼 아프니 요양원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하나의 스펙트럼 선상에 놓고, 회색 영역에 있는 미충족 수요를 어떻게 실제 환자한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채워줄지를 고민해야 한다. 어떤 선을 긋고 그 선을 넘으면 나쁜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가 크면 잘라서 죽이고, 키가 작으면 늘여서 죽이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어느 정도 역할을 정립하는 가이던스를 만들 수는 있으나, 생명체는 객관식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큰 틀 안에서 유연한 치료와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보다 중요할 것이다.
---「pp 260~261, 노년 의료 서비스 체계에 명확한 선을 그을 순 없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