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 아래서
청솔가지에 누웠습니다.
푸른하느리 곱기만 하네요.
조용히 눈을 감으면
산새들 울음소리
시냇물소리
바람이 연주하는
산대나무,풀잎소리...
이대로 드러누워
나무가 될래요
바람이 될래요
산이 될래요
(내가 베껴놓은 시중에 하나이다.)
--- p.72
첫 삭발
슬픔 가지곤 웬만한 설움 가지곤
좀체 눈물을 보이지 않던 내가
새벽 먼동에
파르라니 깍은 머릴 매만지며
나의 믿음이신 그분의 품에 이르러서는
그만 흥건히, 흥건히, 목놓아 울어 버렸다.
찬 눈 몰아치던 간밤에
좌복을 함께 적시던 알알이 3천 주.
하얀 눈서리가 장삼 등골에 맺혔더랬어도
가슴 싸늘하게 쓸어 내리는 풍경 소리가
나를 놀라게 해도
한 마음 오직 한 생각.
샘가에 이르러 꽁꽁 언 살얼음 깨고
옥수를 긷는 붉은 손가락.
오늘을 기다려 사뭇 시집살이 억척 마당쇠였던
행자 생활.
끝내 운명은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하였다.
첫 삭발
머리처럼 송송한 세상의 인연이
부뚜막 장작과 함께 훨훨 타오르던 날
--- p.18
찾잔에 차를 가득 차지 않고 모자라게 따르는 것도 차 향기의 여운이 머무를 수 있는 자리를 주는 것이 아닐는지. 드넓은 여백 속에 뛰노는 동승의 천진함은 어는 곳 어느 때이든 나의 마음 속으로 뛰어 들어올 수 있는 자리를 여백이 처리하고 있는 게 아닐런지.
--- p.176
찻잔에 차가 가득 차지 않고 모자라게 따르는 것도 차 향기의 여운이 머무를 수 있는 자리를 주는 것이 아닐는지. 드넓은 여백 속에 뛰노는 동승의 천진함은 어느 곳 어느 때이든 나의 마음 속으로 뛰어 들어올 수 있는 자리를 여백이 처리하고 있는게 아닐는지
--- p.176
장난기 어린 그의 글, 싫어싫어, 몰라몰라 투의 떼쓰는 듯한 원성스님의 글에서 오히려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베어 있음을 느낀다. 사실 우리들의 문장이란 얼마나 아름답게 짜여져 있고 얼마나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는가. 참으로 오래간만에 투박함이 주는 글의 맑음을 느낀다. ㅡ 안도현(시인)
--- 책 표지에서..
어떤 그리움
'보고싶다'
진실로 그렇게 마음 깊이
가슴 싸하게 느껴 본 적 있으신지요.
아마 없으시겠지요.
앞으로도 없으시겠지요.
하늘을 보고 허공을 보다가
누군가가 보고싶어
그냥 굵은 눈물 방울이 땅바닥으로
뚝, 뚝, 떨어져 본적이 있으신지요.
없으시겠지요.
없으실 거예요.
언제까지나 없으시길 바래요.
그건 너무나, 너무나...
--- p.51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나는 언제나 겁이 많다.
싸움을 하면 옹졸했고
시샘이 많아 욕심도 많았다.
잠이 많아 부지런하지도 않고
기억력이 없어서 공부도 못했다.
잘 참지도 못해 끈기도 없을뿐더러
마음이 약해 눈물이 많다.
누가 내 약점을 알까 봐 위선을 떨었고
잘난 체하려고 가식적이었다.
남의 말을 듣기 전에 내 말이 앞섰고
내 생각대로 해 버리는 고집쟁이였다.
욕망은 생각에서 지울 수 있지만
외로움은 견딜 수 없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나쁜 것만 모조리 안고 있는
나를 보고, 나를 알고
나를 탄식한다.
나를 내보임으로써 집착을 버리고
나를 스스로 변화시키려는 방법을
나는 선택했다.
나약한 인간이라 인정하며
스스로 기만하며 살고 싶지 않기에.
--- p.128
세상은 변해 간다.
자연은 그렇게 태어나고 죽고
늙어 가고 병들어 가고
무엇하나 변하지 않는 게 없는데
변함 없는 건 그 진리일 뿐인데
사람들은 나에게 변했다고 한다.
내 얼굴이 변해 가는 것
내 생활이 변해 가는 것
내 마음이 변해 가는 것
겉부터 속까지 변해 버리는
당연한 자연의 순리에
사람들은 내게 변하지 말아 달라 한다.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면
또다시 생각이 변할 당신의 마음은 돌아보지 않고
변하고 있는 당신은 챙기지 않고
타인에겐 변하지 말라 한다.
우리는 우리 서로의 변모해지는 모습에
더 탁해지더라도 더 맑아지더라도
언젠가는 완성될 자아에 대해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
--- 세상은 변해 간다
산새들 울음 소리
시냇물 소리
바람이 연주하는
산대나무, 풀잎 소리....
이대로 드러누워
나무가 될래요.
바람이 될래요.
산이 될래요.
--- p.55
산사의 새날을 고하는
우렁찬 울림소리. 법고
영혼을 맑게 하는 범종은
거룩한 부처님 음성.
산새들과 물고기에게 들려주는
목어. 운판
이른 새벽
세상의 모든 생명에게 들려주는
깨달음의 울림소리
그대는 아시는가요.
사물의 의미를
--- p.70-71
'보고싶다'
진실로 그렇게 마음 깊이
가슴 싸하게 느껴 본 적 있으신지요
아마 없으시겠지요
하늘을 보고 허공을 보다가
누군가가 보고 싶어
그냥 굵은 눈물 방울이 땅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본 적이 있으신지요
없으시겠지요
없으실거예요
언제까지나 없으시길 바래요
그건 너무나, 너무나...
--- p.51
목놓아 울고 싶을때가 있습니다.
사무쳐 밀려오는 설움도 있습니다.
복받혀 끓어오르는 분노도 있습니다.
--- p.27
먼길 떠나는 상좌 마중길 보슬 봄비 애잔히도 대지를 적시는데 부도탑 솔 마루까지 아무 말씀 없이 가시는 스님.큰 산처럼 묵묵하고 아득한 넓은 등에 그대로 소리 없이 파묻히고 싶다. 여태껏 손도 한 번 못 잡아 본 은사 스님.
--- p.102
다짐 하나
붓다의 가르침을 품고
어디론가 떠나 보자.
선재 동자가 53선지식 만나
무상 보리를 증득했다 해서
경 읽은 내가 깨달았다 할 수 있나.
간접 경험을 통한 사고의 넓이
실제 경험으로 얻은 의식의 깊이
살아 숨쉬는 것과
숨쉬지 않는 것들을 보며
깊이 사유하여
스스로 깨닫자.
--- p.115,--- 시 한편.
나는 빗자루를 던져 버렸다.
아침 공양을 마치고
모두들 마당을 씁니다.
전날 몹시 분 바람 덕에
분홍빛 벚꽃 잎이 마당 가득 피었습니다.
옹기종기 입을 맞춰 노래하고 있습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어여쁜 꽃 잎을, 그 고운 살결을
도저히 쓸어 낼 수 없습니다.
'... 물 속에는 나보다 더 예쁜 소년이 살고 있다. 더 맑은 눈빛으로 더 진실한 마음으로 나를 맞이한다. 이따금 소년은 펑펑 울다가도 금세 웃곤 한다. 때로 그 소년의 변덕이 싫어질때면 돌을 던지기도 하지만, 소년은 등을 돌리는 일은 없다.... 호수 위에는 언제나 햇살이 머물고 달빛을 안고 바람이 잠을 잔다. 녹음이 우거져 푸르름을 간직한 호수에는 철없는 소년이 살고 있다. 그 소년이 보고 싶다. 그 소년이 너무도 보고 싶다.'
--- p.78
'... 물 속에는 나보다 더 예쁜 소년이 살고 있다. 더 맑은 눈빛으로 더 진실한 마음으로 나를 맞이한다. 이따금 소년은 펑펑 울다가도 금세 웃곤 한다. 때로 그 소년의 변덕이 싫어질때면 돌을 던지기도 하지만, 소년은 등을 돌리는 일은 없다.... 호수 위에는 언제나 햇살이 머물고 달빛을 안고 바람이 잠을 잔다. 녹음이 우거져 푸르름을 간직한 호수에는 철없는 소년이 살고 있다. 그 소년이 보고 싶다. 그 소년이 너무도 보고 싶다.'
--- p.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