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저는 궁금했습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친구가 음악을, 그것도 다소 청력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록 장르 특히 강한 헤비메탈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 「헤비메탈을 듣는 방법」 중에서
“한밤의 태양이라고 해도 대낮처럼 밝은 건 아니고, 초저녁처럼 붉고 흐린 하늘이 밤 내내 이어지는데 스웨덴 사람들은 그 시간에 대부분 잠을 자요. 태양이 떠 있어도, 밤이니까. 밤에는, 자야 하니까.” 제임스는 ‘Midnight Sun’을 나름 한국말로 해석해 ‘한밤의 태양’이라고 말했지만, 지연은 끝내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 「한밤의 태양」 중에서
웨이브 진 긴 머리칼과 새하얗고 맑은 피부, 갸름한 턱선, 또렷한 이목구비와 그 위로 덧칠한 아이라인과 새빨간 립스틱과 가슴골이 훤히 보일 정도로 푹 파인 꽃무늬 민소매 티셔츠와 청 핫팬츠까지. 그 사람은 영락없는 여자였지만, 그 얼굴은 몸은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익숙했다. 그것은 분명 내 친구 기철이 맞았다.
--- 「중요한 이야기는 다음에」 중에서
두 곡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는 그들을 놓칠세라 수빈은 그들에게 달려갔다. 그들은 여러 팬들에 휩싸여 있었다. 수빈은 마음 모서리에 붙은 조그만 용기 한 조각까지 박박 긁어모아 떨리는 목소리로 유준에게 말을 걸었다. “오빠, 사인해주세요.”
--- 「보고 싶다」 중에서
검은 유령 바이러스가 뉴스에 등장했을 때는 사람들이 코웃음을 쳤다. “북아메리카, 유럽에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 유령 바이러스’는 사람들 간의 접촉이나 왕래로 인해 쉽게 전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물건이나 장소, 자동차 등 각종 이용시설에서도 전파되는 것이기 때문에 청결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감염 증상으로는 발열, 기침, 하품, 딸꾹질, 웃음, 상황에 맞지 않는 말과 행동 등을 보인다고 합니다.”
--- 「문 앞에 두고 가세요」 중에서
행복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게 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도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이 모든 게 정말 온전한 내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이게 내가 그토록 바라던 꿈이었는지도 말입니다.
--- 「달빛 아래서」 중에서
신입생 환영회 때만 해도 비슷비슷해 보이던 의대 동기들은 점차 두 가지 종류로 갈렸다. 한 종류는 두꺼운 안경을 끼고 종일 의학서적을 들여다보며 밤새워 공부하는 여전한 모범생이었고, 또 다른 종류는 머리를 물들이고 화장을 진하게 하고 밤마다 나방 떼처럼 클럽에 몰려다니는, 그전까지는 감히 꿈꿔보지도 못했던, 아니 꿈만 꿔왔었던 날라리가 되었다. 어차피 둘 중 하나였다. 버티거나, 그만두거나.
--- 「블루블랙」 중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점점 멀어졌어. 의식적으로 서로를 멀리하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그저 시간이 흐르는 속도 딱 그만큼, 키와 몸이 커지는 만큼, 내가 다니던 중학교와 우리가 살던 동네의 거리만큼.
--- 「모자라거나 넘치거나」 중에서
치열하고 고단한 삶 속에서 나무 같은 평화를 꿈꾸는 사람들. 그런 사람 중에는 내 몸뚱어리에 둘러친 도넛 모양의 둥그런 의자에 우두커니 않아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가는 사람도 있어. 저기 저 청년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지.
--- 「이팝나무 가로수 길에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