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패를 갖고 태어나지 못한 (인생에 유리할 것이 없는) 한 귀여운 어린 소년이, 플라자 호텔의 로비에서 옆을 스친 화려한 미인을 뒤돌아보던 소년이, 풍요롭고 낭만적인 예일대학의 멋쟁이 젊은이들에게 길을 알려 주던 소년이, 전쟁과 자본이 가져다 준 천박한 쾌락의 물결을 지켜보던 소년이 어느 날 근면, 성실, 정직으로는 이 모든 것을 얻는다는 것이 도저히 어림없음을 분명하게 느끼고, 돌멩이에 발길질을 한 다음 고향을 떠나 버리는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는 그가 걸린 덫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혹시 우리는 꿈에 취해 길을 잃는 것이 아니라 꿈이 놓은 덫에 걸려 길을 잃는 건 아닐까? --- p.29(『위대한 개츠비』 편)
베르테르의 경험은 해석을 요하는 젊음의 암호, 젊음의 수수께끼이다. 이 암호는 ‘순결한 자의식을 가진, 여러모로 아직도 젊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무기력과 권태에 빠져들지 않으면서 (나는 권태의 본질은 행복 못지않게 고통에도 무감각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의 고유성을 이 세상에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괴테는 이것을 완전히 개인적으로 증명하길 권했다. 짐멜식으로 표현하면 우리는 모두 불멸의 존재이긴 하지만 모두 똑같은 방법으로 불멸의 존재인 건 아니니까. --- p.8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편)
이 장면이 슬픈 이유는 노동자 아낙네가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빨래를 너는 동안 누군가는 감시당하고 끌려가고 고문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잠시 후 비상사태가 선포될 도시의 나이트클럽에 오토바이를 타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들어가는 젊은 아가씨, 옆 도시의 대학생들이 신나게 맞아 죽어 가는 것을 모르고 풍작을 비는 축제를 벌이는 농민들, 슈퍼마켓과 헬스장과 영화관이 구비된 최첨단 미군 기지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플레이스테이션을 즐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앳된 미군 병사를 보는 것만큼이나 막막하다. 하이테크하게 살아가는 21세기의 우리들도 그 옛날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우리가 어떤 거대 프로젝트 하에 있는지 알기 어렵다. 그 점에서 이미 우리 세상은 디스토피아 판타지 소설의 무대다. --- p.171(『1984』 편)
나는 좌표를 그리는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명랑하고 진지한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경계에 선 사람, 경계를 침범한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목적지에 제때 도착하지 못하는 여행자를 사랑한다. 나는 침투하는 정신을 사랑하고 깊은 밤의 죄의식을 사랑한다. 나는 큐피드의 충고를 무시하고 눈을 떠 버린 프시케를 좋아한다. 어느 밤 큐피드가 프시케에게 말한 것은 딱 하나, “눈을 뜨지 마세요. 눈을 뜨면 나를 잃어버리게 돼요.” 난 어려서 이 이야기를 듣고 기겁을 했다. 어떻게 눈을 뜨지 않을 수 있지요? 보고 싶은걸요. 이 모든 사랑 말고도 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을 평생 동경하고 사랑해야 하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 p.214(『순수의 시대』 편)
우리 앞에도 새로운 해석을 기다리는 많은 문자들이 있다. 노가다, 빨갱이, 니그로, 좌파, 호모. 문자의 해석이 다양해질수록 그 사회는 더 나아지고 있는 중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 삶의 지평선을 더 멀리 밀어 보내 줬다는 점에서, 우리만이 진리를 알고 현명하게 살고 있다는 오만을 깨트려 준다는 점에서, 자기가 처한 조건에서 어떻게든 강해지려고 하는, 그런 삶의 참여 방식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그것이야말로 ‘위대함’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란 걸 깨우쳐 준다는 점에서, 더 큰 진실은 이방인들이 말해 준다는 걸 알려 준다는 점에서, 우리는 소수자들에게 빚지고 있다. 우리는 사랑하지도,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던 사람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너무나 많은 빚을 지고 있다.
--- pp.240-241(『주홍 글자』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