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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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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 예정일 미정
쪽수, 무게, 크기 204쪽 | 230g | 125*188*12mm
ISBN13 9791158791339
ISBN10 115879133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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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한 무렵에 너무 혼란스러워서 매일 집에 늦게 들어갔어. 할머니한테 맡겨뒀는데 그게 원인이라네. 아이는 내가 필요했던 거래. 정말이지 미안해서.”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인생의 일대사인데 미동조차 하지 말라는 건가. 십 년도 더 지난 일을 어떻게 만회하라는 건가. 누군들 좋아서 이혼을 할까.
--- p.30

“오늘 가정법원에 불려갔었어. 그애는 다른 애들이랑 완전히 다른 타입이래. 처분은 안 한다더라.” “무슨 일인데?” “그애가 그랬대. 자기는 오랫동안 어머니가 애지중지해온 아들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어머니는 자기랑 일밖에 없는 사람이라나. 삶의 보람이 자기랑 일뿐이어서는 곤란하다고 했대. 본인 인생을 살기 바란다고. 그래서 나와의 관계가 담백해지면 저절로 잠잠해질 거고, 그러면 아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거래. 훌륭한 어른이 되어 있을 거래.” “잘됐네.” “요즘 진정되기 시작했어. 그런데 자식한테 버림받은 기분이야. 왠지 쓸쓸해졌어.” “터무니없는 걱정을 했네. 야마모토 선생님 일 같은 거.” “진짜야. 그때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었어. 난 정말 고지식하다니까. 진짜로, 뭔가 삶의 보람을 찾아야겠어.”
--- pp.33-34

“흠, 근데 왜 결혼하고 싶은 거야? 종이 한 장이 뭐냐는 게 당신 생각이잖아. 형식은 쓸모없다고 했잖아.”
“그기야 글치만, 종이 한 장이지만, 서로 묶인다이가. 상대는 젊고, 도망가면 참을 수가 없다. 반대로 말하자면 말이다.”
나는 기가 막혀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동했다.
에고이즘이란 숨김없이 드러내버리면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종이 한 장의 기만성을 만 마디 말로 설명해도 상대는 납득하지 못했다. 한데 에고이즘이 알몸으로 굴러오니 부인은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제멋대로네, 인간은.”
--- p.63

“비가 오면 인스턴트 라면이 잘 팔린대요.”
“어째서일까요.” “나도 사니까요.” “아, 홀아비세요?” “여자 있어요. 그런데 그 여자는 아무것도 못 하거든. 내가 집에 갈 때까지 꼼짝도 안 하고 기다려요. 뭘 사러 갈 때도 있지만 비가 오면 절대로 안 나가거든요. 인스턴트 라면을 사가는 수밖에.” “사귄 지 얼마 안 됐구나.” “벌써 육 년짼데.” “어디가 아파요?” “아무 데도 안 아파요.” “일해요?” “안 해요.” “그럼 하루 종일 뭐 해요?” “아~무것도 안 해요. 결혼하고 싶은데 싫다네.” “아아.” “손님, 어떻게 생각해요. 연상이에요.” “괜찮잖아요.” “그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상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 했어요. 서른이라고 말했으니까. 그 정도로 보였거든.” “육 년 동안 같이 살았댔죠? 그럼 나이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잖아요.” “그게, 요전에 몰래 결혼하려고 알아봤더니 열여덟 살 속였더라고요.” “우와. 열여덟 살이나.” “결혼하기 싫다는 건 나이를 들키기 때문이 아닐까요?”
--- pp.69-70

나는 문득 선생님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고 내내 직업을 가지고 있었던 선생님에게, 나는 어딘가 나 자신을 겹쳐보며 ‘사’적인 삶의 일부를 공감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직업을 가지기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던 시대를 어떤 식으로 극복하셨을까.
하지만 나는 내 삶에 정신없이 쫓겼다. 그렇게 삼십 년이 흘렀다.
생각지도 못하게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미쓰에 선생님이 돌아가셨어. 얼마 전에 뵈러 갔었는데 말이야, 벌써 여든 가까이 되셨던 것 같은데 엄청 건강하셨거든. 으음, 그때도 여전히 공부하고 계시더라. 공부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나. 대단하시지. 무슨 얘기였더라, 나이 먹은 뒤로 뭐가 의지가 되느냐고, 가족인지 친구인지 여쭤봤지. 그랬더니 선생님은 지체 없이 ‘친구예요’라고 딱 잘라 말씀하시는 거 있지. 엄청 단호하게 말씀하셨다니까.”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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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특별한 유명인이나 위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 어째서 이토록 재미있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걸까, 저는 궁금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사노 씨와 어울림으로써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것을 드러내지 않고서는 못 견디게 되었던 게 아닐까요. 특별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재미나 유머는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사노 씨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믿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상대를 겉모습이나 배경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저 눈앞의 사람이 ‘사람이다’라는 것만 보며 사노 씨는 행동합니다. 그 신뢰가 상대에게 전해지기 때문에 마음에 불이 반짝 들어와서 재미있는 발언이나 행동을 꺼내놓는 게 아닐까요. 1억 엔의 저금보다 소중한 것은 친구의 한 마디였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었던 사노 씨의 말은 저에게는 역시 돈으로 바꾸기 힘든 것이며, 사노 씨의 책 또한 ‘책장에 있다고 생각하기만 해도 안심’되는 존재였습니다.
- 사카이 준코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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