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바로 이 문제를 1부에서 다루려고 한다. 1부는 오송역을 직접 이용하는 사람의 시점에서 오송역이 가진 기묘한 측면을 보여 주고, 오송역이 세종시 관문역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이유를 확인하면서 1부를 시작할 것이다. 이 이유를 나는 두 단어로 요약하고 싶다. ‘불만’의 ‘여행’. 이 불만의 여행은 오송역에서 분기하는 호남고속선을 따라 호남 방면으로도 번져 나간다. 호남은 서울 방향 거리가 짧은 천안 노선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충북은 이 역과 오송 분기를 매우 자랑스러워하며 오송역 동광장에 비석까지 세워 놓았다. 이 비석과 함께 호남고속선 분기 결정 당시 오송역의 점수를 압도적으로 높게 매긴 점수표, 그리고 지도 위에 기묘하게 휘어 있는 선형을 확인해 보면, 이 의사결정에 무언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배경이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오송 분기 이후, 충청권에서는 공주역 문제, 세종역 문제, 서대전역 문제, 논산지역 추가 정차역 문제, 광역전철 등 교통망의 지각 변동이 계속되고 있다. 불만의 여행, 이상한 분기, 그리고 충청권 교통망의 지각 변동이라는 세 가지 문제는 오송역을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출입문이다. 1부에서는 이 출입문을 열고 실제 오송 분기의 역사를 이해하고, 서술하는 데 필요한 여러 배경 정보까지 함께 확인한다.
2부에서는 오송 분기 이전의 충북, 그리고 충남과 대전을 포함하는 충청남북도 간 접경 지역의 상황을 다룬다. 경부선, 경부고속도로같이 발전 또는 저발전 설화 그 자체를 이루는 핵심 시설물이 어떤 식으로 충청 지역의 현재 구조를 형성했는지 서술하는 한편, 오송이 호남고속철도 분기역으로 결정되기 직전 그 배경이 된 경부고속철도 오송역의 건설 역시 검토하려 한다. 3부는 오송 분기 결정 그 자체, 그리고 이로 인한 여진과 논란을 다룬다. 이를 위해 오송 분기 대안이 충북의 공식 입장이 되고 호남고속철도 오송유치위원회(이하 오송유치위)가 활동을 시작한 1995년부터 분기역이 확정된 2005년 6월 30일까지의 연대기를 우선 확인한다. 연대기 속에는 세종시의 관문역으로 오송역이 설정된 경위, 즉 세종시-오송역 복합체가 형성된 경위 또한 제시될 것이다. 이러한 연대기적 사실을 검토한 다음에는 이 연대기 속에서 진행된 논쟁을 논점별로 논평과 함께 제시하고, 더불어 상황 전체를 조망할 수 있도록 ‘정책 흐름 모형’, 즉 어떤 정책의 결정 배경에는 그 정책을 결정짓는 데 영향을 주는 다중의 흐름이 존재하며 이들 흐름이 하나로 모여야 열리는 ‘정책의 창’이 어떤 구조인지를 확인할 수 없다면 특정 정책 결정을 설명할 수 없다고 보는 모형을 활용하여, 오송 분기가 왜 승리할 수 있었는지를 서술한다.
4부는 이러한 과정 전체에 관한 평가가 일종의 신화 속에 잠겨 있다는 데서 시작한다. 이 ‘성패의 신화’에 따르면, 정책은 성공과 실패가 명확하게 나뉘는 대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과 실패는 어떠한 경우에도 관점 의존적일 수밖에 없고, 더불어 이 관점은 정책 계획가의 인지적 한계 덕에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관점 의존성 그리고 인지적 불완전성의 결과는 오류와 오차다. 이 오차를 수정하는 것이 어쩌면 정책 결정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오송 분기 이후 주변 교통망에서 볼 수 있는 여진은 오차 수정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다. 더불어 지역균형발전이나 강호축(국토 X축)을 둘러싼 논란 역시 오차 수정을 위한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과제는, 지금 우리 앞에 주어진 현실이라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오차 수정 과정을 더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는 데 있다.
---「13~15쪽, 들어가며」중에서
자못 진지한 분위기가 담긴 비문이다. 수많은 인명과 지명이 등장하고 시간적으로 26년(1989~2015)이라는 긴 시간을 포괄하고 있는 만큼, 일종의 대하사극 같은 분위기까지 풍긴다. 조선 개국 초의 상황을 다룬 사극 《용의 눈물》이 약 34년(1388~1422)의 시간을 다룬 것을 감안하면, 정말로 대하사극과 비슷한 규모의 드라마가 이 역의 배경에 있는 셈이다. 충북이 이 대하사극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보여 주는 표현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충북도민들의 숭고한 애향정신과 승리의 영광”, 그리고 “전설적 영웅담”이라는 것이 이 비문의 주장이다. 잠깐, 그렇다면 이 비문은 당신이 방금 목도한 불만의 여행이 이러한 영웅담의 후일담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논거들이 무엇인지 비문에서 찾아 보자.
---「34쪽, 1장 2절. 전설적 영웅담 vs. 불만의 여행」중에서
충북과 청주 이외의 많은 지역에서 확인할 수 있듯, 2023년 현재 철도는 이 저발전 신화의 핵이다. 특히 농경 사회의 보수 집단이 철도 부설을 반대하여 지금의 저발전 상황이 나타났다는 설화는 전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설화는 아마도 오늘의 지역사회 여론 주도층이 설화 속의 보수 집단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야 한다는 논거처럼 활용되는 것 같다. 가령 빨대 효과, 즉 빠른 교통망에 의해 소규모 중심지 기능이 주변 대도시로 빨려들어가고 이로 인해 주변이 도시에 종속될 수 있다는 추론에 따라 철도망 확충에 반대하는 여론이 있을 수 있다. 여기에 대응해, 과거처럼 보수적 판단을 내리지 말고 철도를 도시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추론의 근거로 바로 농경 사회의 보수 집단이 내렸던 판단이 활용되는 것 같다.
이런 설화가 있는 곳 가운데, 충북 청주는 다른 많은 지역과는 달리 고속철도를 유치해 내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중앙 정부의 기술관료들이 10년 넘게 거부해 온 대안, 즉 오송역과 오송 분기를 기나긴 투쟁 끝에 쟁취해 냈다. 이후의 여러 현상 변경, 또는 오차 수정 시도에도 불구하고, 오송역은 지금까지는 그 독보적 지위를 지켜 왔다. 이것은 충북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쾌거가 맞는다. 아마도 중앙 기술관료들의 철옹성을 무너뜨렸다는 점만 본다면 지방의 독자적 발전 역량이 필요하다고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송 분기는 하나의 이정표일지 모른다.
---「72~73쪽, 2부. 저발전 설화부터 경부고속철도 오송역까지」중에서
오송을 둘러싼 경험적 데이터든 연대기를 가지런히 제시하는 작업이든, 이 잡동사니에 무언가를 더하는 것 자체는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렇게 뒤섞인 잡동사니를 이해하고 설명할 틀이다. 나는 이 필요를 채울 틀을 행정학의 논의에서 발견했다. 이른바 ‘정책 흐름 모형’(the policy streams model)이다. 이 모형은 어떤 정책이 실제로 현실에 구현되려면 서로 독립적으로 흘러가는 세 가지 흐름이 필요 조건이라고 말한다.
---「222쪽, 7장 1절. 역사를 정리하는 모형의 힘: 정책 흐름 모형」중에서
상황이 이렇다면, 어떤 정책이 단정적으로 실패 또는 성공했다고 말하는 것은 정책이 놓인 조건을 너무 단순하게 축소하는 관점을 전제로 한다. 이 관점을 ‘성패의 신화’라고 해 두자. 성패의 신화를 피하 려면 이런 사실에 주목해 보라. 정부는 불완전한 정책을 내놓는다. 예측할 수 없는 문제의, 정책의, 정치의 흐름 속에서 좌우되는 것이 정책인 이상 그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책을 위해 만들어 낸 사물들을 둘러싼 흐름도 계속해서 변화한다. 처음 집행된 이 불완전한 정책은, 정책 설계자들의 오산과 이후의 변화 속에서 갈팡질팡한다.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정책이 엉뚱한 방향으로 튕겨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정책이 시작된 이후에 진행되는 오차 수정의 과정이 필요하다. 여러 정책 중개자들이 설정한 목표라는 과녁에서 어긋난 부분을 지속적으로 체크하고,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정책이든 이런 관리 노력이 필요하다는 관점을 ‘오차 수정 관점’이라고 해 두자.
---「239~240쪽, 8장 1절. ‘성패의 신화’를 넘어 ‘오차 수정 관점’으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