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주먹이 따로 없었다. 불의를 보면 냅다 달려들었다. 코피가 터진 아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자전거 체인을 들고 다니며 싸움을 벌였고, 껄렁한 전학생의 팔을 부러뜨려 치료비를 변상하기도 했다. 국기에 대한 맹세와 충효 교육이 강조되던 70년대 중반, 소년 안희정은 국가와 민족에 충성을 다짐했다.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해 ‘포 스타’가 되기를 꿈꾸었다. 이름부터가 박정희 대통령의 ‘정’ 자와 ‘희’ 자의 순서를 바꾼 것이었다. --- p.44
1980년 2월 고향 논산을 떠나 남대전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해 5월 광주 소식을 들었다. 무력감에 한동안 몸살을 앓았다. 교과서를 팽개치고 이념 서적을 붙들었다. 《러시아 혁명사》, 《노동의 역사》 같은 책을 탐독하며 레닌이 열여섯, 트로츠키가 열넷에 혁명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열여섯 안희정은 혁명을 꿈꾸었다. 그해 여름 교과서를 모두 내다 팔고, 대전역 광장에서 방학을 보냈다. 민중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역전에 신문지를 깔고 잤다. 포주, 지게꾼과 어울리며 먹지도 못하는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태웠다. 소외받는 자들에 대한 동정과 약자에 대한 정의감으로 충만했다. --- p.46
대학 4학년이던 1987년 안희정은 반미청년회 결성을 주도했다. 반미청년회는 전대협(전국대학총학생회협의회)을 만들고 막후에서 지도한 지하 조직이었다. 1988년 3월 안희정은 국가보안법상 이적 단체를 구성한 혐의로 검거되었다. 남산 안기부에 끌려가 한 달간 조사를 받았다. 매일 아침 각목으로 맞았다. 그런 뒤 다른 요원들이 들어와 혁명 논리에 대한 토론과 조소, 희롱을 이어 갔다. 끝까지 버티겠다는 결의가 서서히 무너졌다. 반대 논리만 있었지 대안은 없었음을 깨달았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동지 두어 명의 이름을 자백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 수치스러워 밤마다 울었다. 학생 운동 지도부라는 레테르를 달고 혁명을 논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웠다. --- p.47
안희정과 이광재는 서울 연신내의 고깃집에서 밤늦도록 술을 마셨다. 이광재는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계획까지 술술 읊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둘은 끝까지 한번 가 보자고 맹세했다. 이광재는 노무현에게 안희정의 합류 결심을 알렸다. 직접 전화를 한번 하시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노무현은 곧바로 전화했다. 20년이 넘은 일이지만 안희정은 그때 노무현의 음성과 억양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나 노변인데요. 희정 씨가 나 좀 도와주면 좋겠어요. 우리 연구소에서 같이 일 좀 합시다.” --- p.52
토양과 절기에 맞추어 꽃이 피어나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또 아무리 화려한 꽃이라 해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한계는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원하는 꽃이 아직 피어나지 않았다 해서 다른 꽃을 시기할 일은 아니다. 제철이 되면 꽃은 피어나게 되어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꽃을 피워 낼 계절을 파악하고 준비하면 되는 것이다. --- p.76
2004년 2월 10일 17세 어린 나이에 혁명을 하겠다며 피 끓던 아이가 24년 뒤에 감옥에 앉아 생각한다. 이제 내 나이 41세. 60세까지 딱 20년 남았다. 이 20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만인으로부터의 동의, 칭송, 지지를 받는 권력이란 존재할 수 없다. 권력은 늘 부패한다. 그래서 모든 권력은 불신의 대상일 뿐이었다. 이 때문에 지도자는 늘 위태로운 외줄을 탄다. 대통령 말씀처럼 시대와 역사에 대한 소명의식, 신내림이라도 얻지 않고선 솔직히 못해먹을 노릇이다, 내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이제 더 이상 없다. 내 인생의 방편으로서의 정치도 이제 더 이상 아니다. 시대와 역사, 국민 앞에 모든 것을 던질 거냐 말 거냐를 시험받고 있다. 선택의 기로다. --- p.89
2004년 7월 2일 지난 1년여의 시간을 잊지 말라. 그 공포를 잊지 말라. 수치심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었던 많은 날들을 기억하라. 편법, 타협의 결과를 잊지 말라. 돈, 권력 그 무엇도 인간을 도울 수 없다. 진정한 유산, 평생 써도 없어지지 않는 재산, 그래서 꼭 물려줘야 할 것은 근검이라 했던 다산茶山의 언명. 모든 불행은 변화와 진보의 동력이다. --- p.92
(진보주의자) “한번은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어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개체로서의 인간은 변하지 않지만, 류적類的 존재로서의 인류 역사는 늘 진보해 왔다고. 그러면서 역사의 전진을 믿는 자, 인류의 역사가 진보한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자가 진보주의자라고. 그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마음의 힘에 가장 결정적 요소는 사람이 모여서 살아가는 세상살이에 대한 낙관이에요. 사람을 깊이 이해해서 모든 것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때 평화와 낙관이 생겨요.” --- p.98
(민주주의) “민주주의가 단지 독재자를 무찌르고 직접 투표를 하는 제도만은 아니에요. 민주주의란 탐욕과 이기심으로 표현되곤 하는, 개인의 정당한 헌법적 권리인 행복을 추구하는 거예요. 내 새끼와 내 마누라와 내 남편과 행복하게 살고 싶은 거예요. 모든 사람은 자기 이익에 부합하도록 움직여요. 각자 알아서 차마 넘지 못하는 선까지는 넘지 않으면 법과 제도가 필요 없겠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거든요. 차마 넘지 못하는 어떤 선에 도로를 내주고 신호등을 놓는 게 정치예요. 그러니까 인간과 인간이 어떤 상황에서 유혹을 받는지에 대해 정확히 이해해야 돼요.” --- p.101
(검찰 수사) “모든 운명은 주동적으로 맞는 게 좋아요. 설령 수동적으로 맞았다 할지라도 절대로 나 당했다고 얘기하면 안 돼요. 그러면 자기 힘이 떨어져서 더 살기 힘들어요. 물론 마음에 아픔이 있겠죠. 나중에 적절한 시기에 펑펑 울더라도 모든 걸 주동적으로 하는 게 좋아요. 학교 다닐 때 몽둥이 안 맞아 봤어요? 이왕 맞을 거면 자진해서 앞에서 맞는 게 제일 편해요. 안 맞으려고 괜히 도망 다니다가 허리 맞아서 더 아파요. 피할 수 없으면 적극적으로 임하는 게 제일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그게 내 스타일이었고. (…) 충분히 서운할 수 있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도 나를 그만큼 믿었고 좋아해 주었으니까. 서로 눈빛으로 느끼는 거예요. ‘저 사람이 정말로 나를 좋아해 주는구나’라는 걸. 나는 그런 눈빛을 많이 받았던 사람이에요. 나도 그 사람이 좋았고. 그러면 됐지, 뭐. 그러면 끝이지.”
--- p.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