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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484g | 137*197*30mm
ISBN13 9788984374607
ISBN10 8984374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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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은 내 얼굴을 못 알아본다. 조수석에 앉은 남편의 시선이 와 닿는 게 느껴진다. 그의 눈에 내 얼굴이 어떻게 비칠지 자못 궁금하다. 애덤의 눈에는 누구나 똑같이 낯설게 보이겠지만 내 배우자가 범인 식별 절차에서조차 내 얼굴을 가려낼 수 없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하다.

애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보지 않아도 안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라는 듯이 부루퉁하고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고 있겠지. 그래서 나는 차라리 운전에 집중한다. 아니,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눈발이 점점 심해지면서 이제 거의 화이트아웃 상태다. 내 모리스 마이너 트래블러의 와이퍼가 지독한 악천후에 고전하고 있다. 내 차는 1978년 식으로 나랑 동갑이다. 관리만 잘하면 몇 년 더 가겠지만 애덤은 아내와 차를 좀 더 어린 모델로 바꾸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애덤은 집에서 떠날 때부터 수백 번쯤 안전벨트를 확인했고, 그래도 안심할 수 없는지 무릎 위에 올려놓은 두 손을 꽉 쥐고 있다. 런던에서 스코틀랜드까지 장장 여덟 시간 걸리는데 눈보라가 극심해 속도를 올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어 우린 곧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 pp.5~6

모든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면 우리는 이야기를 다시 시작할 이유가 없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쓰러졌을 때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이다. 누구나 그렇다. 아닌 척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내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건 아니다.
“아까는 분명 잠겨 있었는데 이상하네.” 내 말에 어밀리아는 대꾸가 없다. 우리는 예배당 밖에 서서 사방에서 몰아치는 눈보라를 맞으며 떨고 있다. 심지어 언제나 해맑은 밥도 오늘따라 몹시 처량해 보인다. 길고 지루한 여행길은 두개골을 진득하게 두드리는 두통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어젯밤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나 자신을 변호하자면 나는 술을 마시지 않고도 얼마든지 어리석은 짓을 저지를 수 있다.
“아닐 수도 있어.” 어밀리아가 자신 없게 말하지만 우리 둘 다 분명하게 확인한 사실이다.
“문이 저절로 열릴 리 없잖아.”
“하우스키퍼가 노크 소리를 듣고 열어준 게 아닐까?”
“하우스키퍼? 어느 웹사이트로 예약했는데?”
“웹사이트에서 예약한 게 아니야. 크리스마스에 직원 대상으로 주말여행권 추첨 행사를 했는데 그때 당첨되었어.”
--- pp.19~20

어떤 괴물이 이토록 예쁜 강아지를 구두 상자에 넣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을까? 수의사 말로는 태어난 지 6주가 미처 안 되었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나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어. 버림받는 기분이 어떤지 잘 아니까. 이 세상에서 그보다 나쁜 일은 없어. 다음 날 강아지를 집에 데려오고 싶었지만 당신은 반대했고, 나는 우리가 만난 이후 처음으로 마음이 아팠어. 아직 당신을 설득할 시간이 남아있다고 생각했는데 이튿날 오후 누군가 녀석을 입양하려고 배터시 유기견 보호소에 온 거야. 예비 견주 평가가 내게 주어진 일이기에 복도를 걸으면서 내심 부적격자들이길 바랐어. 강아지를 사랑해주지 않을 것 같은 집에는 절대로 입양을 보내지 않을 생각이니까.

대기실에 들어서자마자 그 강아지가 눈에 들어왔어. 녀석은 차가운 돌바닥 한가운데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었지. 다음 순간 녀석이 찬 빨간 개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어. 은색 뼈 모양 이름표가 달린 목걸이였지. 난 몹시 황당했어. 아직 나랑 대면하지도 않았는데 감히 견주 행세를 하다니? 나는 강아지를 안아 들고 반짝이는 이름표에 새겨진 글자를 확인했어.

나랑 결혼해줄래?
--- pp.32~33

“학이야.”
내가 준 선물을 밝은 불빛 아래에서 비춰보고도 당신은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어. “결혼기념일 선물의 소재는 정해져 있어. 첫해는 종이로 된 것이어야 해. 지난주에 누가 유기견 보호소 앞에 푸들을 버리고 갔는데 이름이 오리가미였어.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아이디어가 번쩍 떠올랐지. 유튜브 영상을 참고해서 난생처음 학을 접어 봤어. 학은 행복과 행운의 상징이래.”
“감동이야.” 당신이 말했어.
“학이 행운을 가져다줄 거야.”
내가 종이학을 선물한 뜻을 알게 되면 당신이 더 좋아하리라 생각했어. 당신이 미신을 믿는다는 걸 아니까. 사실 난 당신이 까치에게 경례하거나 사다리 밑을 애써 피해 걷거나 실내에서 우산을 펴는 사람을 보고 기겁할 때마다 애틋한 마음이 들어. 당신은 운세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지. 당신이 종이학을 지갑에 고이 넣는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어. 당신이 그걸 늘 간직하고 다닐 거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 학보다 더 강력한 부적이 생기면 어쩔 수 없겠지만.
--- pp.55~56

나는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지 않다. 어밀리아가 아무리 그렇게 몰아가도 아닌 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시기에 이르러 인생에서 무엇을 성취했는지, 이제껏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나는 지금도 내 일, 그러니까 시나리오를 쓰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야기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고 미래를 그릴 수 있게 해준다. 어쩌면 그렇게 포장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면 내가 쓴 글들만 남을 테니까.

비록 다른 작가가 쓴 소설을 각색한 게 내 경력의 대부분이고, 영광은 배우와 감독이 다 가져가지만 내가 작업한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는 대부분 내 머릿속에서 나왔다. 작년에 각색 의뢰를 받은 소설은 심지어 읽지도 않았다. 어떡하든 그 이야기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제작자는 원작보다 각색이 훨씬 마음에 든다며 나를 추켜세웠다. 그러더니 며칠 후 수정을 요구했다. 제작자에게 수정안을 제출하자 이번에는 감독이 수정을 요청했다. 몇 달 뒤에는 배우가 수정을 요청했다. 내가 이제 완벽하다고 장담해도 계속 고칠 수밖에 없다. 만약 거부했다가는 당장 해고당해 다른 얼간이들이 내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될 테니까. 이 업계에서 살아남으려면 계속 고칠 수밖에 없다.
--- pp.126~127

애덤이 오래전부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꾸는 악몽은 매번 똑같다. 애덤은 꿈속에서 차 안에 있거나 길을 걷거나 13층 아파트 창문에서 밖을 내다보며 주먹으로 유리창을 치기도 한다. 꿈에서 깨어난 직후 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기도 하고, 아예 날 다른 사람으로 착각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애덤을 설득하고 진정시키느라 몇 분이 걸린다. 꿈은 자나 깨나 애덤을 괴롭힌다. 애덤이 꿈에서 건져 올리려고 애쓰는 건 아주 어두운 무언가다. 가끔 수면 위로 떠오르는 후회의 조각들과 달리 어떤 기억들은 바위처럼 아래로 가라앉는다.

애덤이 다시는 악몽을 꾸지 않게 할 방법을 알아내고 싶다. 예전처럼 주근깨 난 어깨를 어루만지거나 희끗희끗한 머리를 쓸어 넘겨볼까 하다가 단념한다.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려온다. 침실 구석의 괘종시계가 소름 끼치는 멜로디를 연주한 뒤 뎅그렁뎅그렁 울리며 자정을 알린다. 비몽사몽이던 우리는 그제야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다.
“잠 깨워서 미안.” 애덤이 숨을 몰아쉬며 말한다.
“괜찮아. 어차피 시계 소리를 듣고 깼을 테니까.” 나는 언제나처럼 수첩과 연필을 꺼내 좀 전에 벌어진 모든 사항을 적는다. 이건 단순한 악몽이 아니라 기억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 pp.139~140

나 혼자 뉴욕 거리를 배회하는 동안 당신은 헨리 윈터의 손을 잡고 시사회장을 돌아다녔지. 당신에게는 노작가가 아주 매력적으로 보였을 거야. 하지만 실제로는 은둔자처럼 살고, 고래처럼 술을 마시고, 비위를 맞추기가 정말 힘든 사람이지. 당신에게 그런 사실들을 말해 줄 수는 없었어. 당신 입장에서 보자면 나는 헨리 윈터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야 정상이니까. 나도 당신처럼 그의 소설을 다 읽었어. 최근에 출간한 소설은 범작 수준이었지만 당신은 여전히 그를 셰익스피어의 현신처럼 떠받들지.

나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섬을 찾아 복잡해진 머리를 비우려고 애썼어. 섬으로 향하는 페리는 관광객들로 가득 찼지만 나는 몹시 외로웠지. 사람들 틈에 끼어 자유의 여신상 계단을 오르면서 보니 다들 가족, 커플, 친구와 함께였어. 나만 혼자였지. 직장 동료가 문자로 뉴욕 여행은 어떠냐고 묻길래 더욱 속이 상했어. 답변해 줄 말이 궁색했으니까.

자유의 여신상 왕관에 이르는 계단은 총 354칸이야. 나는 계단을 오르며 우리가 아직 함께하는 이유를 헤아려 봤어. 당신과 함께여서 좋은 점이 많긴 하지만 우리 사이를 방해하는 요소들이 갈수록 부피를 늘려가는 것 같아 서글펐지. 우리 주변에도 긴밀한 교감 없이 살아가는 부부들이 많지만 대부분 아이라는 교집합이 있지. 우리 가족이라고는 당신과 내가 전부야. 나는 전망대에 올라 나답지 않게 셀카를 찍었어.
--- p.237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애덤과 어밀리아 부부는 주말을 맞아 스코틀랜드 하일랜드로 여행을 떠난다. 모처럼 함께 떠나는 여행인데 폭풍이 불고 눈보라가 심해 직접 차를 몰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동안 시종 마음이 어수선하다. 애덤은 오랫동안 스코틀랜드 하일랜드로 여행을 떠나길 바랐지만 워커 홀릭이라 매일 일에 빠져 살다 보니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근래 들어 사이가 소원해진 애덤 부부에게 이번 스코틀랜드 여행은 결혼 생활에 꼭 필요한 변화를 가져다줄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안면실인증인 애덤은 평생 친구, 가족, 심지어 아내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살아왔다. 아내의 체형, 샴푸 냄새, 크림 향, 향수 냄새, 특유의 목소리와 말투, 오래된 습관으로 알아보긴 하지만 얼굴은 언제나 낯설다.

애덤의 아내는 매년 결혼기념일을 맞아 비밀 편지를 쓴다. 올해의 단어,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소재가 달라야 했던 전통 선물에 대한 정감 넘치는 이야기를 편지에 담고 있다. 비밀 편지를 통해 그들 부부가 어떻게 결혼 생활을 영위해왔는지 엿볼 수 있다.

권태기에 접어든 애덤과 어밀리아는 요즘 서로를 신뢰하지 못해 삐걱거리는 결혼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주말여행은 유기견 보호소에 다니는 어밀리아가 연말을 맞아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여행권 추첨에 당첨되어 떠나게 되었다. 아무리 무료로 얻은 여행권이라고는 하지만 목적지가 다가올수록 의구심은 점점 커져간다. 그들 부부가 주말에 머물기로 한 곳은 오래된 예배당을 숙소로 개조한 건물이다. 예배당 건물 인근에 자그마한 오두막과 양을 방목해 키우는 목장이 있을 뿐 사람들이 사는 마을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도 없고, 눈보라가 심하게 치는 악천후라 차를 운전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에도 용이하지 않다. 애덤과 어밀리아는 어쩔 수 없이 음산한 느낌이 드는 예배당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박쥐들이 득시글거리는 블랙워터 호수가 지척에 있을 뿐 눈 덮인 산과 황량한 벌판뿐인 곳에 갇혀버린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예배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애덤과 어밀리아는 숙소가 오랫동안 불을 피운 적이 없고, 청소를 하지 않은 상태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나마 누군가가 적어놓은 쪽지가 있다. 먹을거리가 냉동고에 있고, 지하실에 와인과 샴페인이 있고, 벽난로에 불을 지피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애덤과 어밀리아는 쪽지에 적힌 대로 먹을거리와 와인을 찾아 헤맨 끝에 겨우 찾아내지만 누군가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건물 안을 계속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평소에도 동상이몽인 애덤과 어밀리아는 스코틀랜드 여행을 통해 얻어내고자 하는 목표가 각기 다르다. 눈으로 뒤덮인 산간벽지, 사람들이 아무도 살지 않는 곳, 폭풍이 심하고 눈보라가 치는 악천후가 지속되는 가운데 계속 정전이 되고, 그들 부부와 함께 떠나온 반려견 밥이 어디론가 사라진다. 밤새도록 머리를 쭈뼛 서게 만드는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그들 부부는 심상치 않은 운명의 장난에 휩쓸려 들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애덤과 어밀리아는 다음날 날이 새는 즉시 예배당을 떠나기로 약속한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떠나려던 그들은 차바퀴가 모두 펑크가 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아연실색한다. 이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다. 전화도 없고, 휴대폰 터지지 않는다. 극심한 낭패감을 느끼며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방법을 모색하지만 좋은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들 부부를 예배당으로 오게 만든 인물 로빈이 등장하면서 서서히 꼬인 실타래가 풀려간다. 예배당 근처 오두막에 사는 로빈은 그들 부부 중 한 사람은 런던의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애덤과 어밀리아 부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로빈은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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