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않은가, 자네? 아름답고 젊은 신관이 냉소적인 속을 감추고 겉으로 평화로운 미소를 짓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 하지만 자넨 재미있는 구석이 있군. 인간을 경멸하면서도 스스로 인간성을 잃을까 겁내고 있다니 아주 흥미로워. 더구나 자네의 그 맹목적인 태도는 너무 단순한 이유 같아 보이는군. 위험하다고 생각지 않나?'

케이론은 메디아를 향한 카란의 맹목적인 감정을 꿰뚫어 보듯 말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카란은 케이론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인간의 마음을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저 스스로 인간의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을 선택한 것이니까요. 당신 말씀이 옳습니다. 저는 인간을 혐오하지만 동시에 제가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벗어날까 두렵습니다. 하지만 당신께서는 저에 대해 말씀하시지만 진실로 인간을 이해하지는 못하시겠지요? 인간을 아는 자만이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겁니다. 맹목적인 태도라 말씀 하셨습니까? 그것이 제가 발견한 유일한 삶의 빛이라고 한다면 이해하실 수 있겠는지요, 대신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