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산책을 마치며
경이와 신비로 가득한 아름다운 산세가 눈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자연의 생존질서에 순응하며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숨결과 호흡이 귓가에서 맴도는 듯싶습니다. 도로가에서 머리를 끄떡이며 풀을 뜯던 곰이며 아무런 두려움 없이 차도를 건너던 데날리의 새끼 곰 가족이 보고 싶습니다. 따뜻한 온천수를 마시려고 옹달샘을 서성이던 체나의 무스 부부가 그리워집니다. 자기 구역을 침입한 인간들을 향해 왜 허가도 없이 침입했느냐고 항의라도 하듯이 길을 가로막고 버티고 서있던 카리부며, 목을 곧추 세우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땅다람쥐 소식이 궁금합니다.
이 평화로운 원시자연의 땅을 떠나기가 수월치 않은가 봅니다. 자꾸만 멀어져가는 알라스카의 빙산을 향하여 뒤를 돌아봅니다. 그 신비로운 자연 속에 나의 영혼을 묻어두고 나온 것은 아닌가 두리번거리기도 합니다.
이제 알래스카 여행을 마감해야겠습니다. 오십 일 간 길지만 짧았던 일정이었습니다. 처음에 떠날 때는 알래스카를 동서남북으로 일주하며 이 대륙 전체를 구석구석 탐사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뚜껑을 열고 때 묻지 않은 하얀 속살을 본 느낌을 정리한다면 알래스카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광대하며, 우리 눈에 익숙한 자연과는 너무도 다른 신비로운 매력으로 가득 찬 세상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나는 세계 곳곳에 감추어진 보물을 찾아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시야의 폭을 넓혀 보다 넓은 세계를 바라보고 넓은 무대로 나갈 것을 권유했습니다. “세계 무대는 넓으니 좁은 땅에 안주하지 말고 넓은 땅, 넓은 세계를 바라보고 큰 꿈을 꾸어라!” 그리고 “세상에 산이 높으면 얼마나 높은지, 골이 깊으면 얼마나 깊은지 몸으로 부딪치며 시야를 넓히고 체험의 폭을 다양하게 하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 알래스카는 눈과 얼음이 가득 덮이고 사람이 살기 어려운 원시의 미개 동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알래스카에 와보니 이곳에서도 사람들은 잘 살아 왔으며, 결코 척박하지 않고, 다소 춥긴 하지만 결코 춥지만은 않은, 하늘과 땅과 바다에 풍요가 넘치는 천국 같은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대자연의 경이로움과 신비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이 땅에 점차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천국이 어디 있으리요만, 천국이라고 생각하고 천국처럼 느끼고 생활하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라고 생각됩니다.
알래스카 반도 전체를 조망하는 북미 최고봉 데날리의 웅장하고도 위엄 있는 자태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눈 덮인 설산 곳곳에는 태고의 자연이 거친 숨결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아직도 진입할 도로조차 없는 미개발 지역이 알래스카 전체 면적의 80% 이상이나 됩니다. 땅 속에는 규모를 예측하기 어려운 석유, 석탄, 구리, 금 등 천연광물이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고, 원시 산림에는 곰, 무스, 들소, 사슴, 순록, 산양 등 야생동물들이 그들의 방식대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대한 빙하덩어리가 쉴 새 없이 분열되어 바닷속으로 떨어지고, 바다를 떠도는 유빙流氷은 물개와 해달의 놀이터가 됩니다. 바다 속을 헤엄치는 고래는 자맥질 할 때마다 물을 뿜어내고, 넙치, 연어, 도미, 흑대구가 전 세계의 바다 낚시꾼들을 유혹합니다.
아! 누가 이 보물이 가득한 원시의 땅을 “얼음만이 가득 덮이고 춥고 관리하기 귀찮은 쓸모없는 땅”이라고 했던가요! 누가 이 아름다운 땅을 에이커당 $2도 안 되는 헐값에 처분토록 결정했던가요! 그 결정의 어리석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땅은 값지고 귀한 재화를 끊임없이 쏟아 내고 있습니다.
아직도 이 땅의 많은 부분은 인류의 문명과 현대적 교통수단의 접근을 불허하고 있습니다. 동토 속에는 값을 측정할 수 없는 재화가 묻히고 가려져있습니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처녀림 같은 그 땅에는 우리가 아직까지 보지 못했고, 들어보지 못했으며, 우리의 현대적 지식으로 판단할 수 없는 값지고 귀한 자연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매력이 넘치는 이 땅에서 발걸음을 떼는 것이 망설여집니다. 이제 오십 일 간의 경험을 기억의 저장고 속에 담아두어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불원간 미래에, 그러나 멀지 않은 훗날 다시 찾아와 양파 껍질을 벗기는 기분으로 한 부분씩 구석구석 탐사해야겠다는 숙제를 남겨놓으면서, 알래스카를 향한 기회의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편지의 뚜껑을 덮습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