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행 이야기를 굳이 꺼낸 이유는, 지금의 상황이 이때의 기억과 참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속수무책으로 틀어진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오늘을 살아간다. 살아간 오늘로 내일을 그려간다. 어떤 내일이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모르기에 걷는다. 망했음에도 걸어야만 했던 나의 지난 여행처럼.
--- p.13-14, 「이토록 무력한 계획이라니」 중에서
때로는 확신이 없더라도, 이성적인 판단이 서지 않더라도 밑도 끝도 없는 달콤한 응원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괜히 현실적인 조언이랍시고 그렇지 않아도 암담한 미래에 재 뿌리지 말고 차라리 입에 발린 달콤한 응원을 해줬으면 좋겠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정말 절박한 사람에겐 속이 텅 빈 응원이더라도 큰 위로가 될 수 있으니.
--- p.80, 「입에 발린 달콤한 위로라도 괜찮아」 중에서
여행자다움. 낯선 세상을 향한 호기심 가득 찬 눈빛, 탐험하는 열린 마음, 그 안에서도 합리적인 의심과 적당히 경계하는 자세를 뜻한다. 이런 태도의 여행이라면 어떤 행색을 하든 원하는 것을 얻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움츠리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그렇다고 도전이란 허울 좋은 타이틀만 믿고 섣부르게 움직였다가는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무슨 일이든 균형이 중요하다. 아, 마지막으로 짐을 꾸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처음 만나는 이 도시, 파리는 어떤 곳일까 하는 설렘 또한 잊지 말고 챙길 것!
--- p.113-114, 「여행하는 마음으로」 중에서
우연한 순간들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그때 먹었던 파니니를 오늘의 나는 서울의 브런치 카페에서 찾는다. 마야와 와인 한 병을 나눠 마셨던 그날 파리의 풍경은 나의 침실 머리맡 액자가 되어 걸렸다. 지베르니에서 우연히 마주했던 모네의 그림 같은 풍경은 지금도 틈만 나면 낯선 길을 걷게 만든다. 파리에서의 우연한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 결국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여행은 몰랐던 나를 발견하고 그 세계를 확장시키는 일이었다.
--- p.142-143, 「파니니를 좋아하게 된 이유」 중에서
준비를 해도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 하는데, 하물며 여행이라고 다르겠는가. 이곳에 와서 가장 후회하는 것을 하나 꼽으라면, ‘너무 많이 준비하고 왔다’는 것이다. 내가 준비했어야 하는 것은 딱 한 가지였다. ‘다 된다’는 마음 하나.
--- p.200-201, 「이제야 깨닫는 여행하는 법」 중에서
“고흐는 움직이지 않아. 아를도 움직이지 않아. 언제든 네가 찾아갈 수 있어. 지금 네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
인지 잘 파악해봐.”
과연 여행이란 그런 것이었다. 내가 향하는 어디든 결코 움직이지 않고, 움직일 리 없었다. 움직이는 것은 오로지 하나, 내 마음뿐이었다.
내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가자. 그곳이 어디든 사라지지 않고, 사라질 리 없는 곳이다.
--- p.242, 「고흐는 움직이지 않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