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이 직접 남긴 기록과 그림, 스페인 사람들의 기록은 ‘정복’이라는 사실이 투영된 역사의 거울에 두 개의 다른 얼굴을 구성할 것이다. 중미인들과 스페인 사람들이 상대방에 대해 지녔던 이미지는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다. 양측이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저주를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두 개의 이미지는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라는 지점으로 귀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주제는 편견 없이 연구되어야 한다. 호불호를 떠나 당시의 상황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가지고 연구한다면, 현재의 멕시코 뿌리를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결국 이 뿌리는 두 세계의 급작스런 만남으로 인해 빚어진 결과이기 때문이다._11~12쪽
이 기록들은 그림으로 표현했고, 그림이 없으면 글자로 기록했다. 이렇게 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표현한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것을 기억하려고 원을 여러 개 그렸으며, 각각의 원은 1세기, 즉 52년에 해당했다. 원 옆에는 각 연도에 따라 그 해에 일어난 기억해야만 하는 사건을 그림으로 그린다거나 앞에서 언급한 글자로 표현했다. 일례로 모자 하나를 쓴 남자도 있고, 사탕수수 표시에는 붉은 얼굴의 현인도 있었다. 그 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스페인 사람들이 자신들의 땅에 들어왔다는 표시였다.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한 것이다._13~14쪽
앞에서 언급한 원주민의 텍스트와 그림을 비교 연구한다면, 정복에 대해 스페인 사람들이 기록한 연대기나 역사와는 상당히 많은 부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주민의 자료와 스페인 사람의 자료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상호 모순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그러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체험한 원주민들이 제시하는 텍스트들은 심오한 인간적 증언을 담고 있으며, 문학적 가치도 높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이 증언이 자신들의 도시와 민족이 멸망하는 것을 목도했을 뿐만 아니라 유구한 문화의 뿌리마저 뽑히는 것을 몸소 체험한 자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_28쪽
스페인 사람들이 멕시코에 도착하기 10년 전에 하늘에서 불길한 징조가 보였다. 날카로운 불길, 불꽃, 혹은 여명 같은 것이 마치 하늘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하늘을 찌를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불길의 모양은 하단은 넓고 끝으로 갈수록 좁아졌으며, 하늘에 떠 있거나, 하늘 가운데를 지나가거나, 하늘을 향해 나아가기도 했다. 불길은 동쪽에서 보이다가 한밤중에도 보였다. 또한 새벽에도 나타났으며, 태양이 떠오르면 비로소 자취를 감췄다._39쪽
또한 사신들이 기절하게 된 이유와 귀가 얼얼할 정도의 굉음이 어떤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자 깜짝 놀랐다. 사신들은 그 소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일단 쏘기만 하면 몸 안에서 돌로 만든 공 같은 것이 튀어나옵니다. 그러면 비 오듯 불꽃이 튀기면서, 여기저기 불꽃을 뿌리고, 연기가 나옵니다. 썩은 진흙과 같은 지독한 냄새가 머리끝까지 올라오는데 굉장히 역겹습니다.” “만일 산에 떨어진다면 산을 가르고, 부술 것입니다. 나무에 떨어진다면 아마 나무는 장작개비처럼 산산조각이 날 것입니다. 마치 사람 하나가 나무 속에서부터 바람을 일으켜 날려 보내는 듯한 겁니다.”_79쪽
일설에 따르면 사절단을 보낸 또 다른 목적은 외지인들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알아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즉, 자신들이 그들에게 어떤 저주나 주문을 걸 수 있는가를 알고 싶었다. 바람을 일으켜 날려보낼 수 있는지 상처를 입힐 수 있는지 등 그들에게 해악을 끼칠 수 있는가를 보려고 한 것이다. 혹은 어떤 주문을 자꾸 반복함으로써 병들게 한다거나, 죽게 만든다거나, 아니면 되돌아가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절단은 온갖 방법과 수단을 다 동원해보았으나,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들은 아무런 힘도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_84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