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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아픈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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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아픈 밤

정인 | 호밀밭 | 2021년 03월 12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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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3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260쪽 | 270g | 125*188*17mm
ISBN13 979119097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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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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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둠 속에서 그가 코 고는 소리를 들었다. 한때는 나를 안심시켰던 그 소리가 오늘은 견디기 어려운 소음이었다. 어쩌면 그도 문밖에 앉은 내게 그런지 알 수 없었다. 어째서 우리는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 오래된 나무처럼 굳세어지지 못하고 바람에 자꾸 흔들리는가. --- p.29

가만히 들어보면 사람마다 발소리가 다 다르거든. 그걸 구분해보는 게 솔찮게 재밌어. 나중엔 그 사람이 보이는 거 같어. 그래서 저 손바닥만 한 창구멍이 나한테는 숨구멍이나 마찬가지야. --- p.41

소리는 미세하게 시작해서 한순간 폭포수처럼 쏟아집니다. 때로는 멀리서 자갈을 밟고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 같고, 어떨 때는 내 머리 위를 지나가는 수레의 바퀴 소리 같습니다. 지난 수개월 동안 거의 매일 그 소리를 견뎠습니다. 더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저도 살고 싶어 이럽니다. 제발 더는 이 괴로움 속에 살지 않게 해 주십시오. --- p.76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그녀는 혼자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수많은 기억들이 집의 마룻장에, 천장의 대들보에, 거실을 굽어보는 샹들리에에 촘촘하게 아로새겨져 걸핏하면 수런수런 걸어 나왔다. 때론 더없이 부드럽게, 때론 눈에 핏발이 선 채로 그녀를 따라다니며 말을 걸었다. 얘야, 고맙다. 얘야, 너무 아파. 얘야, 목숨이 와 이래 질기노? 얘야, 얘야…. 집은 그곳에 깃들었던 사람들의 생이 오롯이 새겨진 기억의 사원이었다. --- p.120

“난, 겐고. 한국 이름은 건오. 나, 땅에도 하늘에도 닿지 못하고 허공에 걸려 있는 사람이야. 벽에 걸린 옷 같다고나 할까?” --- p.160

내게는 필사적으로 닿고 싶었던 아버지의 나라가 그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는 그의 마음이 어디에 머물 것인지, 나로선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은 무엇보다 점점 굵어지는 눈 속을 어떻게 통과해 목적지에 무사히 이를 것인지 그것만이 중요했다. 그래선지 이 자리, 이 작은 공간에 둘이 함께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다. --- pp.180~181

나는 그날, 방안을 환히 비추는 햇살 아래서도 베일처럼 그녀를 감싸고 있는 어둠을 느꼈고, 그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 p.194

가능하면 친구들을 많이 불러서 두 사람의 얘기를 들려줄 생각이었다. 그것은 거의 한 세기를 살아낸 할머니의 슬픈 생을 위로하는 나만의 이별 방식이었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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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화마」에서 나는 남편의 사업이 어려운 것도 괴롭지만 자신을 의논과 배려의 상대로 보지 않는 남편의 태도로 인해 더 큰 고통을 느낀다. 요양 보호사와 수급자와의 관계를 그린 「누군가 아픈 밤」은 보호사인 나 역시 내일에는 자신이 돌보는 수급자처럼 될 것이라는 자각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소리의 함정」은 부재하는 아버지를 대신하던 오빠의 죽음과 소음 망상에 시달리는 이웃 남자를 포용하는 여성의 이야기다.
한 가족과 집이 어떻게 해체되는지를 보여주는 「아무 곳에도 없는」에서 큰딸은 직장까지 그만두고 부모를 간병하지만 집은 남동생 소유가 되고 의논 없이 팔린다. 「이식의 시간」은 혼혈여성의 이야기다. 십수 년 만에 만난 생부는 가부장적 권위로 오히려 딸을 가족으로 품지 못하고, 재일 동포 남자친구의 아버지는 혼혈이라는 이유로 아들과의 결혼을 반대하며, 남자친구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가족의 테두리에서 새롭게 바라보는 「꽃 중에 꽃」의 작은할머니는 친할머니와 어머니에게는 첩이자 아버지를 빼앗아 간 몹쓸 여자지만, 손녀인 내겐 사연을 들어주고 임종을 지켜줘야 할 살아 있는 역사이다.
정인의 새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 모두 여성들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공통되다. 소설은 대체로 화해와 연대로 끝맺지만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여성 인물들에게 우리 현실은 여전히 연대하고 모색해야 할 길이라는 작가의 메시지로 보인다. 이 작품들에서 우리는 작가가 살아온 시간의 흔적, 그리고 개인과 이웃의 갈등과 고통에 대한 통찰과 공감의 결과물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 조갑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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