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아주 많을 것이다. 고전에 도전하고 싶은데, 이해가 안 될까 봐 망설이는 이들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쓴 것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다. 저자의 의도를 모른다고, 책을 관통하는 주제를 파악하지 못한다고 고전 읽기를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국어시험을 볼 것도 아닌데, 그런 걸 꼭 알아야 할까? 책에서 자신이 관심 깊게 볼 만한 지점이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 p.9
네흘류도프와 달리 시모토아의 사과는 두 가지 면에서 성공적이다. 첫째, 물고기가 혀를 필요로 할 때 혀가 돼줬으니, 타이밍에서 합격이다. 둘째, 잠깐 하다 마는 게 아니라 물고기가 죽을 때까지 혀 역할을 대신해주니, ‘보상’ 측면에서 봐도 적절하다. 이것을 두고 ‘물고기가 죽으면 시모토아도 죽으니, 자기가 살려고 그런다’라고 폄하하는 이도 있겠지만, 모든 사과는 사실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기도 하다.
--- p.53
조카딸과 신부님, 이발사 등 돈키호테가 저지르는 기행이 책 때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돈키호테의 서가에 들어가 책을 다 버리기로 한다. 이때 조카딸이 하는 다음의 말에 귀 기울여보자. “한 권이라도 용서할 필요 없어요. (…) 모조리 다 저 창문을 통해 마당으로 내던져 쌓아둔 뒤 불을 지르는 것이 좋겠어요.”
하지만 일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책을 버리기로 한 사람들 중에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 pp.70~71
자신은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책만 읽어놓고선, 속세의 대중들이 타락했느니 어쩌니 일갈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는 얘기다. 파우스트를 보라. 막상 속세의 여인들을 만나고 나니 누구보다 더 맹렬하게 육체적인 욕망을 탐하지 않는가? 그러니 직접 경험하지도 않은 채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아는 것처럼 나대지 말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시험대에 올라 굴욕을 당할 수 있으니까.
--- p.90
비슷한 일을 두 번 겪으면 두 번째엔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마련이다. 책을 읽는 것은 우리가 언젠가 만날지 모르는 일을 간접으로 경험함으로써 실제 그 일을 겪을 때 도움을 준다. 고전은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그 답이라고 공인된 책이니, 《페스트》를 읽은 사람들은 지겹디 지겨운 코로나19를 조금은 더 잘 견뎠을 것 같다. 그래서 감히 말한다. 인생의 해답은 역시 고전에 있다고.
--- p.168
도대체 저 엽서 내용이 어디가 잘못됐기에 수용소로 보낸 것일까? 루드비크는 공산당원으로서의 엘리트 의식을 드러내려 한 게 그 첫 번째 잘못이다. (…) 두 번째 잘못은 낙관주의를 조롱했다는 점이다. 공산주의는 곧 ‘모든 나라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낙관주의에 기초한 사상이었다. 마지막 잘못은 트로츠키 만세에가 있다. 트로츠키는 레닌과 함께 러시아혁명의 지도자였지만, 진정한 공산주의의 실현을 주장하는 바람에 스탈린에 의해 공산당에서 쫓겨나고, 멕시코에 은둔하던 도중 암살당한다. 그 후에도 스탈린은 트로츠키 세력을 국가를 전복하는 위험한 세력을 규정하고, 자본주의보다 더 강력히 탄압했는데, 소련의 위성국이었던 체코에서 ‘트로츠키 만세’는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범죄행위였다.
--- pp.177~178
티토노스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남편으로, 원래 왕의 아들, 그러니까 왕자였다가 에오스에게 납치당해 강제로 남편이 됐다. 신이라고 막 나가네, 이런 생각을 하려는데 알고 보니 에오스는 제우스에게 부탁해 티토노스를 영원히 살게 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에오스도 티토노스를 진심으로 사랑한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려는데, 에오스는 영원한 젊음도 함께 달라는 걸 깜빡했고, 그 바람에 티토노스는 죽지도 못한 채 하염없이 늙어간다. 부부 중 한쪽만 늙는다니, 어쩌면 이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형벌일 수 있다.
--- p.215
완독한 이가 0.1퍼센트도 안 되는 책이라 읽었다는 자체가 권력이 된다. 거짓말을 하는 이에게 “신곡을 보면 너 같은 애가 지옥에서 어떤 형벌을 받고 있더”라고 얘기해보자. 사람의 격이 달라진다. (…) 또한, 신화에 대해 알고 싶어진다. 신화는 과거 사람들이 세상을 좀 더 재미있게 이해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다. 따라서 신화를 아는 것은 인류 문화의 기원을 아는 것이고, 현재를 이해하는 길이기도 하다.
--- pp.227~228
로런스의 부모님은 계급과 지적 수준 차이로 늘 불화했고, 모렐 부인이 그랬던 것처럼 로런스의 어머니도 아들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퍼부었다고 한다. 모렐 부인이 미리엄을 싫어했던 것도 혹시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래도 이 책에 교훈은 있다. ‘붉고 촉촉한 입술에 매혹되지 마라. 평생 배우자와 키스만 하며 살 게 아니라면.'
--- pp.249~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