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원은 하는 수 없이 칼을 바라보고 섰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 집안이 난리가 아닌 난리가 나겠지만 어쩌겠는가. 쓰고 있는 선글라스를 벗으려는 비원의 손이 그렇게 들어 올려졌다.
“오스칼 씨.”
“네.”
“그럼 심호흡을 하고 마음에 준비를 하세요. 공개하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칼의 고개는 숙여지고 있었다. 그렇게 이해한다고 속으로 외쳤음에도 어떻게 된 일인지 차마 시뻘건 눈병이 옮을까 봐 똑바로 남자를 쳐다볼 자신이 없었다.
비원은 자신을 보고 감탄의 감탄을 금치 못할 1초 후의 상황을 생각하며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시원하게 벗어던지고 고개를 빳빳이 들어 올렸다. 그러나 생각과 다르게 조용하기만 한 거실은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이 반응은 뭐야?’
비원이 빳빳이 든 고개를 내리고 칼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여자의 모습에 비원은 또다시 우쭐거렸다.
“보세요. 특별히 맘껏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드리는 거니까.”
“네. 그 마음은 이해를 하는데요. 그런 선심은 안 쓰셔도 괜찮은데.”
“괜찮다니깐요. 절 똑바로 쳐다보세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똑바로 쳐다볼 자신이 없어서요.”
칼의 고집에 비원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미 알아 봤으면서 뭘 저렇게까지 행동하는지. 하긴,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여자가 세상에 얼마나 있겠는가.
“충분히 이해가 가는데요. 이미 눈치 채신 것도 아는데요. 전 괜찮습니다. 고개를 드세요.”
“꼭 그래야만 하나요? 차마 용기가.”
“다들 처음엔 그렇게 말씀하지요.”
“바로 전염되는 건 아니지요?”
“네?”
“그 눈병 말이에요. 바로 전염되는 거라면 곤란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