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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원귀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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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5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68쪽 | 310g | 130*200*12mm
ISBN13 9791163168669
ISBN10 1163168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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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말아야 할 네가 157년 전 이곳에 묻혔다. 그런 너를 구명하고자 내가 웃전에 진정을 올렸다. 웃전에서 네 처분을 고심할 동안 너는 이승과 저승,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로 잠들어 있었지. 허나 이제 조금은 기뻐해도 좋다. 드디어 처분이 내려졌다.”
“기뻐해도 좋다 함은…… 다시 살 수 있다는 것입니까?”
저승사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번 죽은 자는 절대로 다시 살아날 수 없다. 완전한 죽음을 잠시 보류할 뿐.”
현이 고개를 떨구었다. 삶에 대한 미련조차 어렴풋한 처지였으나 어쩐지 심장이 조여드는 것만 같은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깨우는 날로부터 너는 백 일의 시간을 얻을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스스로 너의 생을 기억해 내어라. 그리고 그 기억으로 그림을 완성해라. 그리하면 모든 한이 풀릴 것이다. 이것이 보류자의 숙명이니.”
--- pp.10~11

갑자기 스티커가 공중에 붕 뜨더니 스티커 조각이 하나씩 떨어져 여기저기 철썩 붙기 시작했다. 단비는 놀라서 다시 화면을 돌려보았다. 다시 보아도 똑같은 장면이었다. 계속 이어서 보았더니 이번에는 실내화가 저절로 몇 발자국 움직였고, 필통이 열렸고, 색연필이 저절로 움직이며 그림이 그려졌다. 얼음 조각이 주르륵 미끄러져 내리는 것처럼 단비의 등줄기에 차가운 소름이 돋았다. 투명 인간이라도 다녀간 걸까? 아니면 귀신?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단비는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다.
“버린 것이 아니오. 천 년 전은 더욱 아니고.”
단비가 소리 나는 쪽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몸은 고정한 채 고개만 아주 천천히. 그러고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버렸다. 희한한 옷을 입은 어떤 남자가 화구통을 들고 창고에서 나오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단비에게 물었다.
“그런데 초딩이 무엇이오?”
--- pp.61~62

현이 스케치북의 맨 마지막 장을 펴서 그때 기억을 그린 그림을 다시 바라보았다. 두 남자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둘 중 한 남자의 오른손에서 피가 뚝뚝 흘렀고, 다른 손으로는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찌르고 있었다. 너무나 끔찍한 장면이었다. 기억이 떠오를 때 들었던 처절한 비명이 다시 그림에서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이 사내가 나일까? 아니라면 누구일까. 도대체 그 옛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현은 자신의 과거가 두려워졌다.
--- pp.112~113

“네 인생도 참. 나만큼이나 기구하구나.”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단비가 두려워하는 것이 있었다. 그건 이별이었다. 엄마와의 이별로 단비는 알아버렸다. 이별은 세상이 통째로 뒤집히는 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던 세상이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진 세상으로 바뀌는 건 겪어보기 전엔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엄마와의 이별은 진도 10.0의 대지진처럼 단비의 세상을 뒤흔들었다. 강진과 여진이 반복되는 삶은 아프고 고달팠다. 단비는 밤이 무서웠다. 자다가 눈을 뜨면 코앞에서 마주 보이는 어둠이 무서웠다. 어둠은 네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졌다고 쉬지 않고 속삭여댔다. 뼛속까지 차갑게. 그 무서움을 알아버렸기에 단비는 이별의 횟수를 최대한 줄이기로 마음먹었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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