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까짓 과일과 꿀, 먹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꿀벌이 수정에 기여하는 것은 과일뿐이 아니다. 오이, 파프리카, 호박, 해바라기, 참깨, 들깨, 고추, 당근, 파, 완두콩, 목화, 양파, 가지 등 우리가 아는 대부분 식물이 꿀벌의 수정으로 열매를 맺는다. 꿀벌이 인간에게 꿀만 주는 게 아니라 식량의 대부분을 주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지구 위 모든 식물의 생사가, 나아가 식물에 기대어 사는 모든 생물의 생사가 꿀벌에 달려 있지는 않을까. ---「꿀벌」중에서
“우리도 좀 살자. 산양 때문에 사람 죽겠다.” 산양 죽이고, 본인들 살겠다니…. 이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림 속 산양이 너무 슬퍼보였다. 그때마다 더 씩씩하게 힘주어 색칠을 했다. 산양이 있어, 그리고 함께하는 뭇 생명들이 있어 설악산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고, 그들이 말하는 ‘사는 것’,말 그대로의 밥벌이도 가능했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산양은 케이블카를 타지 않는다. 우리도 케이블카를 타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산양과 같은 속도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느린 걸음으로 산에 올라야, 그 아름다움을 즐길 권리가 우리에게 있으니…. ---「산양」중에서
갯벌에는 이러한 뭇 생명들뿐 아니라 수많은 주민들이 함께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주민들에게 갯벌은 매립해도 되는 쓸모없는 땅이 아니라 서울로 대학 간 딸의 대학등록금을 벌어다 주는 일터이자 손녀손자들에게 줄 꼬깃한 용돈을 벌어다 주는 은행이다. 갯벌은 돈이 없어도 맛있고 영양가 높은 식탁을 차려주는 부엌이며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나 다른 모습으로 반겨주는 아이들의 자연 놀이터이다. ---「저어새」중에서
가슴 한 곳이 뻥 뚫리는 것 같다. 같은 생명으로서, 처참하게 삶을 짓밟힌 다른 생명을 응시하는 건 쉽지 않다. 생명의 존엄성을 잃어버린 기분이다. 로드킬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조사와 대책들이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무뎌지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도로에서 만난 죽음은 ‘생명’이었다. ---「삵」중에서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가 불필요한 물건을 사고 쓰는 것을 줄인다면, 쓰레기매립장을 더 이상 만들지 않아도 된다. 그러면 쓰레기매립장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소음과 악취로 고생하는 것도 막을 수 있고, 쓰레기를 태울 때 발생하는 오염물질도 줄일 수 있다. 우리가 에너지를 절약하면 원자력발전소를 더 이상 만들지 않아도 되고, 그러면 전기를 송전하기 위해 송전탑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된 폐기물을 묻기 위해 누군가의 고향을 위험하게 만드는 일도 없을 것이다. 절약은 누군가를 아프지 않게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절약≠가시밭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