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내가 아빠에게 이 말만큼은 꼭 해야 되겠다’는 각오로, 큰마음 먹고 몸을 떨어가며 더듬거리면서 뭔가를 주장하고자 할 때가 있다. 그때 부모는 자녀의 미숙한 주장이 끝까지 전개될 수 있도록 맞서주면서 자녀가 걸어온 싸움을 완성시켜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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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0세일 때, 엄마도 엄마로서 0세이다. 아기가 한 살이면, 엄마도 한 살짜리 엄마가 되는 것이다. 아기가 갓 태어났을 때, 엄마는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탄생 시점의 자신을 본다. 아기가 엄마를 볼 때, 아기는 엄마를 엄마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으로 인식한다. 결핍으로 가득 차 엄마의 손길을 기다리는 아기를 볼 때, 엄마 자신의 아기 때의 결핍을 본다. 그리하여 엄마는 아기에게 공감적인 품을 제공함으로써 엄마 자신의 결핍을 메울 기회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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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1년의 양육이 아이의 평생을 좌우한다. 그렇다고 완벽한 양육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엄마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많은 엄마가 자신의 자녀에 대해 죄책감을 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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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엄마가 아이와 눈을 맞춰주지 않으면 아이가 장차 사회적 관계 능력을 형성해 가는 데 심한 손상을 겪는다. 엄마와의 눈 맞춤 경험이 적은 아이는 자존감이 낮고 매사에 자신감을 가지기가 힘들다. 이런 아이들이 느끼는 기본적인 감정은 ‘수치심’이다. 수치심은 엄마와의 애착 관계 부재로 인한 존중받지 못함에서 오는 정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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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살아가야 하는 현실은 바로 몸이 맞닿는 곳에 있지 우주 끝에 있지 않다. 우주 끝을 찾기 위해 우주 상공에는 허블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다. 내가 천체물리학자가 아닌 한,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먼 우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내 삶으로 가져올 필요는 없다. 그런 삶은 특이하고 탁월하기는 하겠지만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일인가! 내 아이는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비명을 지르며 뛰어놀면서 희열을 느끼는 존재이지, 우주의 신비를 찾는 허블 망원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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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현대인은 몸으로 살지 못하고 신체로 사는 현상이 뚜렷이 드러난다. 그러한 현상은 우울증, 공황장애, 이인증, 인터넷 중독, 게임 중독 등의 불행한 형태로 개인에게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 p.175
세상에 수많은 자격증이 있지만, 부모 자격증은 없다. 아버지 자격증, 어머니 자격증을 위한 교육 기관이나 그런 자격증을 발급하는 곳을 발견한 적이 있는가? 세상에 수많은 부모가 있지만, 자녀 양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공부하고 자녀를 낳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자녀 양육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자녀를 낳겠다는 것은 너무 용감한 일 아닌가? 다행히도 사람은 자기 복제 능력 정도는 다 가지고 있다. 그 말은 최소한 자신이 양육받은 만큼은 자녀를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은 다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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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자녀가 성인이 되기까지 부모로서의 권위를 건강하게 세우되 권위주의로 억압하지 말아야 한다. 자녀의 공격성은 세련되지 못하여 거칠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자녀가 공격성을 발휘하고자 할 때, 부모는 자녀 수준으로 내려와 맞서주고, 압도하지 않으면서 더불어 싸워주고, 함께 흔들려 주고, 같이 놀아줄 수 있어야 한다. 자녀가 부모와의 관계 안에서 미성숙한 공격성을 발휘할 충분한 기회를 만나면 자녀의 공격성은 발달해 간다. 자녀의 거친 공격성을 부모가 감당해 주면, 자녀가 성인이 될 즈음에는 그동안 세련되지 못하고 미성숙하던 공격성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으로 그리고 건강한 자기 주장성으로 바뀐다. 이때 비로소 자녀는 진정성을 가지고 부모를 공경하게 된다.
--- p.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