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이 저마다 야심을 드러내며 무언가가 되고 싶어 할 때 그녀는 그 무엇도 되지 않고 이름 없이 죽겠다는 당당한 꿈을 꾼다. 겸손이 그녀의 오만이며, 소멸이 그녀의 승리이다.
--- p.33
무無와 사랑은 끔찍한 한 족속이다. 우리의 영혼은 그 둘이 오리무중의 드잡이를 벌이는 장소다..
--- p.47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의 목록을 남몰래 만든다. 시, 태양, 여름, 천국. 그게 전부다. 목록은 완성되었다, 라고 그녀는 기록한다. 하지만 첫 번째 단어로 족하다. 시인은 태양보다 더 순전한 태양을 낳으며, 그들의 여름은 영원히 기울지 않고, 천국은 그들에 의해 그려질 때만 아름다우니까.
--- p.56
시는 글쓰기의 한 양식이기 이전에 그녀의 삶에 방향을 제시하며 그녀를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일출을 향해 돌려세우는 방법이다. 자신이 구운 생강 빵을 바구니에 담아 줄 끝에 매달아서는 방에서 거리로 내려뜨려 아이들이 먹게 한다든지, 정원의 장미꽃을 극진히 돌본다든지, 어머니의 폭력적인 우울증 앞에서 그렇게나 경쾌한 인내심을 발휘한다는 것. 이 모두가 에밀리에겐 천재성의 명백한 원천인 ‘공감’을 펼쳐 보일 기회가 되어 준다.
--- p.68
에밀리는 다른 이들은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안다. 우린 한 줌의 사람들밖에 사랑할 수 없으리라는 것. 이 한 줌의 사람들 역시, 죽음의 무구한 숨결이 불어오면 민들레 갓털처럼 흩어지리라는 것. 그것 말고도, 글은 부활의 천사임을 안다.
--- p.86
어떤 이들은 너무도 열렬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해, 가혹하게도 그들 앞에선 우리 역시 스스로의 영혼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 p.101
결핍은 세상의 벽에 뚫린 구멍 ─ 공기의 부름 ─ 이며, 글쓰기는 그에 대한 응답이다.
--- p.104
새뮤얼 보울스는, 이 바깥 세계의 남자는 무얼 원하는 걸까? 그는 강렬한 삶을 원하는 현대인이다. 소위 말하는 ‘사건’보다 더 강렬한 건 없다고 그는 믿는다. 시끌벅적하고 속도감 있는 무엇,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것. 하지만 사건이라는 건 대개 ‘무無’의 현현이며, 세상이라는 광활한 묘지 위를 달리는 도깨비불이다. 그렇다면 에밀리 디킨슨은, 이 내면의 여인은 무얼 원하는가? 그녀 또한 더없이 강렬한 삶을 원한다. 그러나 그녀는 느리고 조심스러우며 고요한 삶 쪽에서, 하루하루의 그늘진 사면에서 그걸 찾는다. 데이지꽃들이 이슬에 무거워진 머리를 흔드는 곳, 임종을 맞은 이가 최후의 공기 한 모금을 삼키려 하는 곳에서.
새뮤얼 보울스 만큼이나 에밀리와 상이한 인물도 없을 터, 그녀에겐 행운인 셈이다. 사랑을 통해 삶의 반짝이는 고통을 확대해 나갈 예기치 못한 기회였으니까.
--- p.115
때로 누군가가 돌연 나타나, 우리가 자기 자신이라 여기게 된 모종의 역할로부터 우리를 구해 준다. 그런 부활에는 두 가지가 요구된다. 용기와 사랑. 용기는 여하한 나뭇결에도 당황하지 않는 불과 같다. 사랑은 지칠 줄 모르고 유지되는 온정이다.
--- p.121
에밀리의 삶은 눈에 띌 만큼 우리의 시야를 벗어난다. 모든 구경거리는 스스로 권태를 몰아낸다고 믿지만 실은 그 권태 속에서 죽어 간다. 싫증이 나지 않는 유일한 광경은 어떤 마음의 풍경이다. 너무도 순결해 한 마리 꿀벌이 총알처럼 가로지르는, 세상 무엇도 침투할 수 없는 마음.
--- p.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