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이동 증가는 써드 컬쳐 키드(TCK) 같은 지구인 속성의 미감과 영향력을 증대시키며 균열을 만들어 낸다. 여권 위에 적힌 국적과 무관하게 공유되는 기준은 케이팝 같은 혼합 문화와 언더그라운드 문화 속에서 영역을 키우고 있다. 마블 영화에서 배경이 된 서울과 릴 체리의 뮤직 비디오에 나오는 서울, 내 머릿속에 구성된 서울은 같지만 다르다. --- p.18, 박세진, 「모티브의 납작함, 고립의 세계화」
세계관: 싱가포르계 한국인 여배우 진 바바라는 팔로워 삼천만 명이 넘는 SNS 인플루언서다. 한때 서울에서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했지만, 불행히도 그녀가 데뷔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이 시작되었다. 진 바바라는 3일 뒤에 SNS로 송출될 동영상을 제작해야 한다. 4부 연작으로 송출될 콘텐츠의 주제는 〈진 바바라의 2000년대 빈티지 명품 소장품〉. 방송에서 소개해야 할 빈티지 명품 아이템을 찾아야 한다. --- p.32, 최예슬, 「정크 스페이스」
저는 그때 아마 어떤 기분을 간절하게 필요로 했던 것 같아요. ‘나’라는 존재가 모호하고 빈약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기분만큼 나를 선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어떤 감정은 패션처럼 나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가령 저는 멜랑콜리한 기분을 부드러운 울코트처럼 온몸에 두르기도 하고, 가끔은 작은 액세서리로 가볍게 착용합니다. 아주 잠깐씩 반짝이는 기분으로요. 그리고 다시 옷장 안에 넣어두는 거죠. 제 옷장 안에는 그런 옷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 p.38, 오은지, 「무드 바이어」
진짜보다 가짜가, 가짜가 더 진짜 같은 이미지의 세상에서 릴 미켈라가 불러일으키는 현상들은 스펙터클하다. 미켈라에게 구체적인 실체는 없지만 그의 팔로워들은 그에게서 흥미로운 무언가를 얻는다. 그러므로 이 인간적인 가상 인물은 상업적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슈퍼모델 슈두(@shudu.gram), 일본 모델 이마(@imma.gram)에서부터 지난 7월 데뷔곡을 공개한 뮤지션 래아(@reahkeem)까지 가상 인물들의 서사는 다채롭고 방대해지고 있다. --- p.63, 김다울, 「미래적이고 인위적인 ‘릴 미켈라’의 성공 모듈」
오곡이 익고 크고 단 과일이 출하되는 가을. 코로나19 확산으로 야외 나들이를 통한 계절의 변화나 박물관의 가을을 구경하기 힘든 지금 박물관 유물 가운데 가을에 어울릴 만한 아이템을 골라 소개한다. 서늘해진 바람과 어울리는 음악과 향을 고르고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그럴듯한 가을 무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p.93, 김서울, 「가을 유물 모음」
여기 체중 오 킬로그램 체고 사십 센티미터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고 나약한 종족이 참으로 위풍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그들로 말할 것 같으면 동행자에 대한 배려라곤 눈 씻고 찾아도 없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태풍이 불던 장대비가 쏟아지던 간에 제 알 바 아니라는 듯 무조건 저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갈 것을 명령하고, 명령이 통하지 않으면 읍소하고, 읍소가 통하지 않으면 여섯 시까지 꼭 돌아올 테니 문이라도 열어 달라 협상하는 막무가내들이라 하겠다.
--- p.104, 유계영, 「너 자신을 잡아당겨 보라, 끊어지기 직전의 고무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