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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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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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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5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25쪽 | 186g | 124*194*20mm
ISBN13 9791192986043
ISBN10 119298604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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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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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지중학교 2학년 3반 교실 문 앞에서
람풍이 고개를 돌린다
졸업조차 하지 못한 그 학교,
선생님과 부둥켜안고 울다
책 보따리 챙겨 나오던
그날이 떠올라서였을까?
스무 살, 물설고 낯선 ‘한꿔’로 시집온
람풍의 기억 속 그 학교는
영원히 그리운 나라
십육 년 만에 찾아가서도 여전히
아련하게 살아오는 그날
교실 명패를 바라보는 람풍의 눈은 젖어 있다
아이들 재잘거리며 매점으로 달려가는
롱지중학교 왁자한 복도 어디쯤
람풍은 지금도 서 있는 것일까?

살아가는 일이란 늘 자욱한 먼지,
송까이런 위를 떠다니는 부레옥잠 같은 것

휘청, 계단을 내려오던 그녀의 시선 끝
야자나무 잎을 흔들며
그날이 스쳐 흐른다
---「롱지중학교」중에서

투하, 저것 좀 봐
고추 지지대 위 손톱만 한 흙도 땅이라고
비집고 뿌리내린
풀이 불쌍하지 않아?
너나 나 닮지 않았어?
물설고 낯설은
한국하고도 강원도 이 산골이
어쩌면 우리에겐 저 고추 지지대 끝
흙 한 줌 같은 곳 아닐까?

람풍이 고춧대 끝에 매달린
풀을 쓰다듬는다
고추 따다 흙 묻은 손 털지도 않은 채
투하도 아련한 눈길을 얹는다
두 베트남댁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바람 한 점 없는
첩첩 산골 하늘만 눈부시다
---「두 여인」중에서

깨를 털고 빈 들을 바라보던 람풍이
주섬주섬 깔개를 걷고 돌아서며
저녁노을같이 속삭인다
“논아, 깨야, 고마워.
깔개야 너도 하루 동안 수고 많았어.
내년에도 부탁할게.”

국도 확장에 편입돼 없어질 배추밭에서
쌈배추를 따고 일어서던 람풍이
배춧잎 수북한 밭을 무연히 바라보다
해 뜰 무렵 이슬 같은 말을 건넨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배추밭아.
이젠 편히 쉬어. 땀비엣”

그녀의 신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한다
밥 주는 소도, 여무는 고추도, 옥수수꽃을 흐르는 바람도
다 그녀의 신이다
신은 친구다, 그 자신이다

볏짚을 실은 트럭 창 너머로 오늘은
대설의 신이 손을 내밀었다

람풍의 하루가 또 신성으로
가득 차오른다
---「람풍의 샤머니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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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의 중심인물인 람풍은 스무 살에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댁이다. 나는 람풍이 16년 만에 고향인 메콩 하류 롱지에 갈 때 동행했던 인연이 있다. 람풍은 베트남과 한국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다리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베트남 전쟁과 연관된 부끄러운 과거를 갖고 있다. 람풍은 부끄러운 우리의 과거를 건너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람풍은 우리에게 부끄러움과 기쁨을 동시에 갖게 해준다. 과거를 넘어 나라의 구별이 없는 열린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길을 우리는 람풍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웃으면 두드러져 보이는 귀여운 송곳니의 람풍은 오늘도 맛난 베트남 음식으로 최성수 선생 부부를 기쁘게 만들고 있을 것이다. 음식 사진을 볼 때마다 같이 먹고 싶다. 람풍의 나라 베트남을 더 사랑하게 만들어준 사람, 최성수 시인의 시들은 이 시집 속에서 람풍의 꿈이 되어 깃발처럼 푸르게, 희망으로 휘날린다.
- 조영옥 (시인)
시인은 돌아왔다. 앞뜰엔 팥배나무 이파리가 눈 시리게 뒤척이고, 뒤란엔 송진 냄새 가득한 고향집으로. 아버지와 같이 심었다는 낙엽송이 긴 산그늘을 이루는 산골 집으로. ‘아픈 몸’으로 돌아왔으나 누군가의 든든한 곁이 되었다. 시인은 산밭에 손가락을 그어 걸리는 것들을 쓴다. 멀리 베트남에서 스무 살에 시집온 람풍과 어느새 소녀가 된 민정이의 명랑함을 쓴다. 멀리 시집보낸 아버지의 눈빛으로 쓴다. ‘논아, 깨야, 고마워. 배추밭아, 고마워’ 모든 자연 사물에게 신성이 있으리라 믿는, 아니 신성 자체일 람풍의 읊조림은 문명의 홀씨가 되어야 마땅할 터. 단정한 시편들은 이 나라 곳곳에 사는 어엿한 한국인일 람풍들에게 건네는 무명 손수건이다. 시인은 이렇게 걸리는 게 많아서 앓는 사람이었다.
- 문동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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