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충동적으로 눈에 보이는 몇 개인지 모를 분무기들의 향을, 바닥이 난 용기들이 일제히 바람 새는 소리를 낼 때까지 뿌렸다. 라일락과 장미와 라벤더 향을 머금은 작은 입자들이 여자의 얼굴에, 어깨에 천천히 내려앉아 스며들었다. 여자는 가만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여자의 잠옷 자락에 쓸려 그네가 흔들리고, 새가 어여쁜 소리로 울었다. 여자는 벤자민 잎을 마른 손으로 훑어 내렸다. 사라지지 않는 플라스틱 물방울이 여자의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미지근한 물방울을 움켜쥐고 여자는 아침이 올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흰 레이스 잠옷을 입은 여자의 눈꺼풀 위에 깨끗한 햇살이 내려앉아도 여자는 눈을 뜨지 않았다. 유리 안쪽에 날아가지 못한 향기가 이슬처럼 맺혀 있었다. 이내가 낀 듯 부연 공기 속, 루픈 나무 사이에서 여자는 죽은 듯이 깊은 잠이 들었다. 여자를 잠재운 것은 엄청난 양의 다양한 향기, 이제는 악취로, 숨을 쉬기 어려운, 부글부글 무언가를 끓일 수조차 있을 듯한 가스로 변해버린 그 냄새였을 것이라고, 이 여자를 발견한 남편은 말했다.
--- p.32---pp.5-20
나는 그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나도 모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기다렸다. 그녀가 그를 다시 버리기를. 그저 스쳐가는 바람처럼 그의 곁을 지나가고 그가 다시 기진해 돌아오기를.
--- p.52
꽃은 아름다웠지만 꽃을 파는 일은 그렇지 않았다. 막 받아와 우아한 향기를 뿜는 꽃일수록 질 때의 냄새는 고약했다. 물이끼 낀 양동이 안에서 군내를 풍기며 썩는 꽃의 밑동을 씻어낼 때마다 내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보이지 않게 썩어들어가는 것. 삶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그때, 나는 스물한 살이었다. 손님이 뜸한 날이면 나는 '자기 앞의 생' '섬' '예언자' 같은 책들을 읽으며 지냈다. 죽은 할머니의 얼굴 가득 향수를 뿌리고 또 뿌리는 모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조금 울었던가.
--- p. 41
그쪽은 길이 없어요, 여보, 막혔다구요, 나무들 사이로 막 모습이 사라지는 남편을 향해 나는 소리를 질렀다. 부대 앞, 길 없음.비스듬히 박힌 나무 팻말을 남편은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흰 페인트가 벗겨진 나무 팻말이 가리키는 방향이 애매하긴 했다. 실은 우리가 지나온 것도 길이라 부르긴 어려웠으므로 다시 돌아갈 길도 막막하긴 마찬가지였다.
--- p.39
그 여자가 돌아왔어. 남편은 묻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말했다. 남편이 내게 한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 밤 그도 나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여자가 돌아왔다. 그로써 아무런 설명이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의 귀가가 늦어지기 시작했다. 취해 흔들리는 발걸음 같은 날들이 흘러가는 동안에도 나는 남편에게 이제 어쩔 생각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묻지 않아도 나는 알았다. 그가 떠나려 한다는 것. 떠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결코 먼저 그 말을 꺼내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문제는 나였다. 나는 그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나도 모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기다렸다. 그녀가 그를 다시 버리기를. 그저 스쳐가는 바람처럼 그의 곁을 지나가고 그가 다시 기진해 돌아오기를.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통장을 헐어 시누에게 건네던 날 그는 내게 말했다.
정말이지 미안해. 당신은 나와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어.
--- p.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