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드-마른의 저 구석에 있는 학교까지 간다는 것이 좀 귀찮기는 했으나.... 사실 속으로는 교사들과 학생들은 들떠 있고, 교장 선생님은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교외의 한 고등학교에 서 특별히 시간을 내어 그들과 함께한 겸손한 연예인 역할을 한다는 것, 형편 없었던 나의 학창 시절에 대해 이런 식으로 관대하게 복수를 한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그리 싫지 않 았다는 점은 인정해야 겠다 --- p.17
부탁할 게 있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라도 형제간에는, 비록 이복 형제라 하더라도 서로에 게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게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번 나를 가장 슬프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내 형제들의 이런 품위와 가슴을 에는 듯한 지나친 조심성인지 아니면 그들이 그런 식으로 나와 그들 사이에 두고 있는 거리감인지 --- p.21
저는 제 자신을 보통 프랑스 영화에 나오는 보통 프랑스 배우라고 생각해요. 세계적 스타 로 인정 받는 곳이지만 저로서는 닿을 수 없는 무대로 할리우드를 꿈꾸는 그런 보통 배우 요. 배역이란 게 그래요. 전혀 세계적인 배우는 아니지만, 스스로를 내 안에 가둬두지 않는 다는 느낌, 자유롭다는 느낌, 그리고 결과적으로 인생이 살 만하다는 그런 느낌이 들기에는 충분하거든요 --- pp.71~73
그 사람은 “지단은 자존심도 강하고 과격한 게 진짜 알제리 사람이죠”라고 말하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리고 나는 속으로 ‘그래, 알제리 사람들이 폭력을 참 좋아하지, 그것보다 더 한 말이 뭐가 있겠어? 그들끼리 그렇게 이야기할 때나 혹은 흑인들이 자기들끼리 그렇게 이야기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지. 그런데 백인이 감히 그런 말을 하면 그때는 왜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는 걸까? 왜 흑인이나 아랍인이 ‘치사한 백인’이라고 하는 것과 아랍인이 ‘치 사한 흑인’이라고 하는 것은 백인이 ‘치사한 흑인’ 혹은 ‘치사한 아랍인’이라고 하는 것만큼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는 걸까? 자기들이 하는 말보다 백인이 하는 말이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흑인과 아랍인들이 은연중에 인정한다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 pp.99~100
“아저씨, 제 입장 아시잖아요. 카나리아 군도랑 같이 세네갈인과 말리인 청소년 범죄자들에 대해 이미 이런 토론을 했었잖아요. 그쪽의 모든 젊은이들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유럽을 꿈 꾸고, 한 장의 비행기 표나 밀입국 서류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탕진하는 그 사람들의 선택이, 그러니까 그게 옳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그 곳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보다 비참한 생활을 해도 여기서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또 자신의 운을 시 험해보는 걸 천 배는 더 좋아한다는 건 알죠. 하지만 그건 해결책이 아니잖아요. 더 모욕적 인 상황이 발생하게 되고, 서구의 온정적 간섭주의가 계속 유지될 테고, 변두리에서는 시한 폭탄이 터지게 된다는 그런 말이에요.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전 개인적으로 그 게 더 큰 재앙을 초래한다고 봐요.” --- pp.146~147
어머니가 나에게 한 나라의 가치란 그 나라가 얼마나 부자인지 혹은 얼마나 현대적인지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어머니는 원래부터 유리한 쪽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아주 많이 너그러워질 수 있는 사람이라 그렇게 말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이 고운 밝은색의 긴 머리카락을 가진 어머니가 내 머리카락이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때처럼 말이다. 어머니의 그런 말이 내 입에서 나도 엄마 같은 그런 머리카락을 갖고 싶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내가 뻔히 알고 있음을 어머니는 단 한순간도 짐작조차 하지 못했지만. 샤워를 하면서 온몸에 비누칠을 하고는 “엄마, 봐요. 나 백인 같죠.”라고 말했을 때, 어머니가 난처해하면서도 순진한 척 “왜 그런 말을 하니?”라고 묻는 것처럼 말이다 --- p.161
밝은 노란색으로 칠해진 집의 커다란 남쪽 벽이 길가 저 멀리에서부터 눈에 들어왔고 그 위에 토마 막 폴라의 이니셜인 TMP가 각각 1미터 50센티미터 정도 크기의 네온관으로 새겨져 있었다. 나는 ‘그런데 형은 저게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형 이미지에 해가 된다는 걸 모르는 걸까?’라고 생각하는 내 자신이 몹시 원망스럽기도 했다. 특히 나 자신이 이 이니셜을 우스꽝스럽게 생각했다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본능적으로 백인들처럼 생각한다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형과 비슷하기 때문에 형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암시라는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원망스러웠다 --- pp.164~165
사실 내가 더 이상 그렇게까지 엘비라를 사랑하지 않는지도 모른다고, 그꺸고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그녀를 사랑한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는 말로 내 얘기를 마무리지었다. 그녀로 인해 내 안의 감정이 여전히 동요되는 것은 지나치게 예민한 나의 감수성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과 비슷했는데, 벤과 형은 이런 나의 생각하는 방식, 표현하는 방식(“넌 너무 생각이 많아, 앙투안”)과 마찬가지로 나의 이런 감상주의에 대해 기회만 있으면 그건 백인들의 속성이라고 지적하곤 했었다(“겉은 흑인인데, 속은 백인이라. 앙투안, 넌 정말이지 현상금감이야”) --- pp.189~190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어른들이 자기들이 하는 말의 내용이나 의미 아니면 적어도 어조를 아이가 이해할 것이라는 짐작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서로 나누는 대화에 그 아이의 귀가 열리는 나이가 되면, 그러니까 좀 시간이 더 지나서 백인 식구들의 입에서 ‘아프리카’, ‘제삼국’, ‘식민지화’, ‘흑인’이나 심지어 ‘이민자’와 같은 단어를 들을 때면, 그들의 온정주의적인 미소와 잘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로 인해서 아이는 이런 단어들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리 중립적인 말이 아니라는 것을, 넓게 보면 자기와 상관있지만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 말이라는 것을, 요컨대 이런 단어들은 백인이 아닌 자기가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 pp.196~197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큰형이나 사촌들을 만나러 프랑스로 가기 위해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운동화를 사기 위해서, 드라마에 나오는 여배우 같은 금발머리 여자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프로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서, 혹은 또 뭐가 있더라, 하여간 서류와 비자를 받기만을 꿈꾸는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나친 환상은 갖지 마세요. 프랑스에 가면 일자리도 있고 사회보장과 가족수당도 받을 수 있고, 요구르트와 세제와 멋진 운동화가 있는 슈퍼마켓도 있고, 거실에는 텔레비전이 있고 제대로 운동할 수 있는 넓은 운동장과 멋진 기구들이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 p.211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아서 프랑스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버스, 같은 지하철을 타지만 소용이 없다. 이런 것들에 대해 탁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으니까. 나는 “사람들은 상관없어 하지. 이런 모든 생각들은 사람들의 관심밖으로 밀려나 있거든.. 사람들은 보지도 않고 알지도 못해. 사람들은 매일 자기 자신에게 그 이상의 질문은 던지지 않은 채 무관심하게 흑인과 백인들 옆을 스쳐지나간다구. 구별할 게 없다고 판단하거나 평등하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절대적인 무관심 때문에 말이야.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런 사소한 것들이 존재하고 있고, 그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거라구”라고 말하고 싶었다 --- pp.227~228
모두가 나를 두고 떠나는 걸 보는 것이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나는 결코 그들과 한편이 아니며, 이런 확실한 사실을 부정하려 애쓰는 것 자체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들은 나보다 먼저 이해하고 있었고, 오늘의 이런 결과는 모두 나의 자업자득인 셈이었다. 그리고 정말이지 창피했다. 프랑스인이라는 창피함, 극진한 취급을 받는 어린아이 같은 창피함, 태어날 때부터 세상의 보호를 받으며 위험의 안전지대에 있다는 창피함. 하지만 무엇보다도 형, 벤, 에메르손과 여자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는 창피함, 처음에 바로 따라가서 오래 전부터 우리를 갈라놓은 이 차이를 벗어던지지 않은 창피함을 느꼈다. 나에게 가장 상처가 되었던 것을 콕 집어서 말하자면, 사실 형수를 포함한 내 형제들이 잠깐이라도 내가 자기들을 쫓아갈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잠깐이라도 자신들과 함께 도망치기 위해서 내가 군인들이 제공하는 편안함을 포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모두 내게서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 p.244
「화이트 스터프」를 찍는 동안과 그 후에 이어진 흥행 기간만큼 내 삶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음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이다. 그때는 단지 내 자신이 드디어 완성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자유라는 이 느낌을 충분히 만끽하지 못했음을 깨달았고, 스무 살 때와 마찬가지로 인생으로부터 여전히 뭔가 더 좋은 것을, 더 많은 것을 기다리면서 끝없는 갈증으로 목말라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내 자신이 완성된다는 느낌,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가졌을 때만큼 삶을 좋아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갑자기 그렇게 할 수 없는 내 자신을 보게 된다면 참을 수 없을 거라는, 다시 무명 배우로 되돌아가서 더 이상 여자에게 “내가 출연한 영화가 3월에 개봉하는데, 시사회 초대장 하나 보내줄까?”라는 말을 할 수 없게 된다면 내 인생은 엉망이 되어버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pp.260~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