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을 걷는 동안에는 절대 길 잃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갈림길이 나와도, 숲에서 길을 잃어도
언제나 노란 화살표가 우리를 안내해주기 때문에
의심 없이 믿고 걷는다면
우리가 원하는 그곳에 반드시 도착할 수 있다.
내가 살아가는 인생길에도 화살표가 있다면 어떨까.
보이지 않으니까,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니까
이쪽이 더 좋은 길인지,
지금 내가 제대로 가긴 하는 건지,
언제나 갈림길 앞에서 주변을 살피고 망설이며 주저하게 되고
남의 눈치를 보면서 다수가 걷는 길을 쭐레쭐레 뒤쫓게 된다.
나만의 이야기로 채우며 바른 길로 간다는 건
내 발걸음을 믿어야 하는 건데,
나는 나 스스로를 제대로 믿어보지 않은 걸지도.
---「Buen Camino 당신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 ‘11’ 」중에서
도려낸 듯 움푹 파인 상처에서는 피가 멈추질 않았고,
금세 피로 물드는 휴지로 간신히 지혈을 하면서
벽에 걸린 거울 속 내 모습을 봤다.
땀 때문에 분장크림이 군데군데 지워져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광대가 거울 안에 있다.
매일 30~40km씩 걷는 것도 소중한 시간이라 생각하면서 웃고,
거의 매일 먹는 참치캔도 고단백 영양식품이라며
항상 맛있게 먹으려고 애쓰고,
말이 안 통해도 마음이 통하면 된다 생각하고,
예상보다 적은 돈으로 순례를 시작하게 됐어도
진정한 순례자가 되면 된다고 용기를 북돋으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은 이유도 동기도 모두 잃어버린 것처럼……
한참동안 거울만 들여다봤다.
울컥하고 밀려오는
그런 것들과
함께
---「Buen Camino 당신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 ‘28’ 」중에서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도 어느덧 1주일이 지났다.
이스라엘 출신인 론은 3년 동안의 의무적인 군복무를 마치고
나라에서 받은 보상금으로 여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돈이 바닥날 때까지는 절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치고 집을 나섰다는데,
부모님도 붙잡지 않으시고 “나가서 잘 살아 봐라.” 하셨단다.
그동안 말이 잘 안 통할 때는
갖가지 의성어와 의태어를 쓰고 그림으로 답답함을 해소하며
여행을 하게 된 계기, 꿈, 이스라엘에서의 생활,
혹은 추억거리, 사랑, 가족 등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눈 사이가 된 우리.
한참동안 말없이 먼 산만 바라보던 론이
심드렁한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처럼 무거운 고민을 털어놓는다.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깐
뭘 해서 먹고 살지 답답해지네.
물론 공부를 하고 돈을 벌며 정신없이 살겠지만 말이야.’
매사에 진지한 구석은 찾아볼 수 없었던 론의 고민이
나와 닮았다.
나답게살라는데
나다운게뭐인지
나도궁금해질때
---「 Namaste 나를 있게 한 모든 것에 경배를 : ‘10’ 」중에서
“라주. 너는 지금 월급이 어느 정도 되는 거야”
“음……. 2,000루피 정도”
“그 돈으로 생활하는 데 지장은 없어”
“턱없이 부족하지…….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내가 그만두면 더 적은 월급에도 오겠다는 사람이 수두룩할걸”
라주가 머리를 쓸어 올렸다.
“라주는 꿈이 뭐였는데? 원래부터 옷 만드는 게 꿈이었어”
“꿈? 배운 게 이것밖에 없는데 뭘.
오늘 하는 일을 내일도 모레도 하는 게 내 꿈이야.”
10억의 인구 중 1억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차가운 돌바닥에서 노숙자로 살아가고,
학교를 다녀야 할 어린 나이에
식당 서빙을 하는 뽀이가 되어 주방과 홀을 뛰어다닌다.
그래서 먹고 살 수 있도록 일을 하는 것,
그 이상의 꿈은 생각하지 못한 라주.
나 역시 취업대란의 현실 속에서 살다 왔기에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너무 많이 현실적이라서 씁쓸한 라주의 꿈.
나의 평범한 일상 또한,
누군가의 간절한 꿈일지도 모른다.
오늘 하는 일을
내일도 모래도
---「 Namaste 나를 있게 한 모든 것에 경배를 : ‘17’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