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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사진으로 읽다
중고도서

경주 남산 사진으로 읽다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남산을 사진으로 읽다

박명순 저 / 박근재 사진 | 한생각 | 2018년 11월 0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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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1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417쪽 | 800g | 140*210*30mm
ISBN13 9791196107642
ISBN10 1196107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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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의 조형미는 초심의 순수함으로 정제된 순간을 포착하여 그 신비감을 더한다. 슬픔은 슬픔이 아니고 기쁨은 기쁨이 아니라는 반어법이 감실 부처상에서는 통한다. 곧바로 드러나는 직설 화법이 아닌 미묘함에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불상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다 온화해지고 편안해진다. 자연 속에 기대어 있는 나는 그 어떤 욕망도, 걱정도, 의미도 없는, 그냥 저 바위와 다를 바 없는 내가 된다. 아니, 나라는 것도 없다. 이 속에서 하나로 합일된 상태, 맑고 또렷하고 편안하다는 느낌까지도 없는 그냥 진공의 내가 된다.
// p 17 ‘충돌과 반향의 공간’ 가운데

[ 불곡 마애여래좌상 ]
보물 제198호
동남산 불곡 입구에서 숲길을 따라 오르면 산 중턱쯤 펼쳐진 자연 바위 가운데에 깊이 약 1m의 석굴을 파고 그 내부에 사람 크기에 가까운 여래*좌상을 조각하였다. 작은 석굴로 인해 흔히 감실이라 불린다. 단단한 화강암에 굴을 파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므로 우리나라에는 이런 석굴 사원이 거의 없다. 이 석불은 경주 남산에 남아 있는 신라 석불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삼국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며, 이 불상으로 인하여 계곡을 불곡(부처 골짜기)이라 부르게 되었다.
// p 23 ‘충돌과 반향의 공간’ 가운데

때로는 석불좌상의 정면을 마주 대하지 못해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본다. 매화꽃과 철쭉, 소나무 숲의 아름다움과 함께 자연스럽게 생성된 기이한 암석과 더불어 바라보기도 하고, 또는 담장 뒤로 물러앉아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바라보기도 한다. 자연과의 조화로움으로 본래 그러했을 아름다움을 최대한 이끌어내려 거리를 맞추고 조리개를 열어본다. 더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바라지도 않겠다. 봄이 되면 기다려지던 그 매화 향은 오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이제 사라졌다. 피고 짐은 당연한데, 영원성에 대한 기대감이라니, 역시 어리석음은 나에게 있었다.
// p 52 ‘매화 향에 이끌리어’ 가운데

보리사 경내의 석불좌상이 잘생긴 귀티의 얼굴이라면, 마애불은 마음씨 좋은 이웃으로 동네 어귀에서 만날 법한 친근감 있는 얼굴이다. 보리사 석불좌상이 선정에 든 미묘한 얼굴이라면, 마애불은 푸근한 미소로 경계 없이 반기는 인간미 넘치는 얼굴이다. 석불좌상이 때로는 칼날 같은 죽비로 의식을 후려치는 표정이라면, 마애불은 삶에 지친 이들의 무수한 회포를 이유 없이 그냥 들어줄 것 같은 후덕한 얼굴이다. 석불좌상이 잘 정돈된 가람 터에서 매화, 수국, 목련 등의 헌화와 신도들이 올리는 향 공양을 받는다면 마애불은 산 중턱 멀찍이 홀로 떨어진 채 무성한 풀들의 비릿한 향내 속에서 ‘Let it be me!’이다. 내게 맡겨 둬, 그냥 내버려 둬, 신경 끄세요, 이다. 사람들의 잦은 발길로부터 살짝 떨어진 산 중턱 수풀 속에서 고요히 명상에 든 마애불은 환희의 순간을 충만한 미소로 자아낸다. 품어 준다.
// p 61 ‘선방의 선승, 고독한 수행’ 가운데

바위에 새겨진 불상의 얼굴은 세월에 마모되어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낮에는 물체를 잘 보지 못하는 부엉이처럼 마애 조각상의 눈 역시 소실된 채다. 그러나 밤이 되면 더욱 밝고 총명한 부엉이처럼 어둠을 밝히는 명징한 혜안의 눈을 가졌음에 여기 부엉골에 마애불이 존재함일 것이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그들만의 삶의 방식, 탁월한 감각으로 지혜롭게 살아
가는 건강한 생명들은 의외로 많다. 눈을 대신한 감각은 초감각계로 때로 일반의 상식을 뛰어넘기도 한다. 눈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것만은 아닐 테다. 보이지 않는 혜안을 볼 수 있는 눈, 어둠 속에서 더욱 총명을 발하는 부엉이처럼 마모된 마애불상의 눈 위로 황금빛 광선은 더욱 또렷한 빛을 발한다.
// p 264 ‘빛나되 반짝거리지 않기를’ 가운데

용장계곡 정상 부근에는 하늘 향해 열어 둔 자리, 하늘 향해 활짝 핀 꽃자리, 연화대좌가 있다. 남산의 석탑이나 불상들은 대개 바위산 암반을 초석으로 그 위에 쌓은 화강암 탑과 불상이다. 이 연화대좌 역시 커다란 바위에 연잎을 새겨 꽃자리를 피웠다. 대좌의 크기로 보아 제법 큰 불상이 있었을 법한데 현재 불상은 사라지고 연화대좌만 남아 있다. 하늘 맞닿은 훤히 트인 정상, 비워 둔 연화대좌는 생각하기에 따라 여러 의미망을 생성시킨다.
// p 398 ‘동쪽에 피운 하늘 꽃자리’ 가운데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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