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기. 구본웅에 이어 한국의 로트렉으로 불린 곱추 화가. 자신이 소유한 유일한 것을 '지독한 열등감'으로 꼽았던 사람. '돌출된 가슴뼈, 외봉낙타처럼 생긴 등, 5척에도 못 미치는 키'. 그러나 그 신체적 불구를 정신적 불구로 평생 간직하기를 거부했던 화가. 불구인 탓에 역설적으로 자부심 하나로 당당하게 세상과 대면했던 인물. 그러나, 그러나 속일 수 없었던 것은 자기연민이다. 열등감은 전혀 지치지 않고 분열, 증식한다. 다만 그는 그리는 행위에서 자위했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다. 열등감의 해소는 삶이 끝나는 그 순간, 그러니까 고통스런 죽음에서 가능하리라.
--- '공작도시의 자라지 않는 나무_손상기' 중에서
그녀는 유럽에서 서구 여성의 당당한 자기선언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며 당당하게 사회를 주도하는 주역으로서의 여성의 지위를 실감했다. 특히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보장하는 탁아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여성의 실존적 자유가 넘실대는 파리에서 그녀는 농촌의 정서를 구폐처럼 버렸다. 탐욕스럽게 자유를 만끽하며 질풍노도처럼 요동치는 자유의 격랑에 몸을 실었다. 야수파의 격정적 필치와 활달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광태적인 붓질로 스스로의 인생을 채색했다.
--- '영원한 신여성, 최초의 선각자_나혜석' 중에서
자신을 비롯한 사회에 관한 경멸과 모독은 때로 위험하고 무책임할 수 있다. 그것은 부정의 확실한 대상과 목표를 상실한 어설픈 치기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자유로운 인간의 정신을 억압하는 그 어떤 사회적 규율과 제도도 그가 용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소아적 영웅심리에서 점차 구체적인 형상으로 승화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는 손으로 말하고 손으로 사회에 저항하며 존재의 근거를 찾았다. 작품의 일관된 주제인, 유형 무형의 억압적 실체에 대한 저항은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 '생체권력과 저항_류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