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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의 빛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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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6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12쪽 | 490g | 135*205*30mm
ISBN13 9791188215898
ISBN10 1188215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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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15일. 먼동이 부유스름 텄다. 수철은 수평선 군함에서 월미도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인생은 정말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걸까. 삶은 숨과 다음 숨 사이에 있다던 지혜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동트는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삶이 갑작스런 죽음을 맞을 것인가.
--- pp.64~65

차창 밖 산하는 눈물겹도록 푸르렀다. 이윽고 기차가 사리원역에 멎었다. 38선 코앞으로 사단 병력을 데려갈 군용 트럭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밤에 도착해 살펴보니 주둔지가 연천이다. 수철의 고향 아닌가. 주상절리 절벽에서 한탄강 여울을 바라보며 친구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짚었다. 수철에게 전면 남침은 용납될 수 없을 듯했다. 그렇다면 국방군으로 나설까, 전장에서 수철과 마주칠 수 있을까, 그때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일까, 단둘이 만난다면 얼싸안겠지만 옆에 누군가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여러 상념이 꼬리를 물었다.
--- p.185

진철이 성주로 물러서는 길도 참담했다. 낙동강 주변만이 아니다. 산자락과 맞닿은 밭이나 숲정이 곳곳에서 인민군 주검을 발견했다. 피범벅 송장은 예사다. 길옆의 논두렁에 얼굴 묻은 시신엔 울컥했다. 동무를 묻어줄 겨를도 없을 만큼 다급했을까. 시신이 지천에 깔린 채 방치되었다.
--- p.217

어미산은 조선왕조의 태조 때부터 봉수대가 자리 잡을 만큼 중시된 산이다. 서쪽과 남쪽으로 여러 산등성이가 여트막이 뻗어 있다. 어미산이라 불린 까닭이 있다. 서울의 진산인 삼각산 인수봉이 아기를 업고 밖으로 나가는 꼴이다. 이를 달래어 막고자 선인들은 오래전부터 그렇게 불렀다. 산 이름에 민중의 지혜와 소망이 담긴 셈이다.
--- p.292

“이 전쟁에서 자신이 본 그대로 진실을 밝힐 기자가 있을까요? 나는 회의적입니다. 미군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더군요. 실성한 사람이 발작을 일으키듯 초로의 민간인들까지 마구 죽이더라고요. 상대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요. 원숭이처럼 취급해요. 정말 끔찍이도 한국인을 싫어하더군요.”
--- p.343

총을 맞고도 일본 형사와 조선인 앞잡이를 끝내 사살했다는 사진 속 아버지가 살아난다. 당신도 총상에 이렇게 고통스러웠을까. 그때 아버지는 어린 나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에 힘을 주었다. 미군이 38선을 넘을 때 잿빛 전망을 적었다. 소련이나 중국이 가만가만 있겠는가. 자칫 전쟁이 한없이 늘어질 수 있다. 옴나위 없는 불바다에 수많은 민중의 생때같은 생명이 던져지리라. 살천스런 예감을 적으며 염원했다. 전쟁이 38선 이북으로 확대되지 않기를, 38선 원점에서 평화를 되찾기를…….
--- pp.382~383

문학관 담쟁이는 포탄으로 팬 구렁에 뿌리를 맞대고 무성히 자랐다. 이윽고 문학관을 에워쌌다. 그 초록 이파리와 넝쿨 손이 지혜에겐 구렁에 잠든 두 철학도의 넋과 손처럼 다가왔다. 가을을 맞으면 더 그랬다. 덩굴손은 핏빛이 되었다. 스무 살의 세청년이 ‘철학의 길’을 언약하며 밤하늘 잔별이 숲을 이룰 때까지 이야기 나눈 그 가을이 사무쳤다.
--- 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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