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의 어깨는 무거웠지만 때론 두드리면 문이 열렸고
초라한 자신을 일으켜 세운 건 스스로의 용기였다
전순예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꾸밈없는 문장에 실린 그 많은 경험과 생각들, 감정들에 경탄한다. 생명에 대한 애정, 고통을 이기고 껴안는 힘, 반듯한 삶의 의지, 겸손함과 너그러움을 존경한다. 『강원도의 맛』과 『내가 사랑한 동물들』에서 산골의 인심과 풍경, 함께 살았던 동물과의 사연을 전했던 작가는 이제 좀 더 무겁고알알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건을 팔아 돈을 벌어야 하는 여성의 이야기다. 작가가 20여 년 동안 판매한 물건은 이러하다. 문구, 장난감, 풍선, 사과, 배추, 빵,책, 크리스마스카드, 물비누, 더덕, 분쇄기, 냄비 세트, 압력솥. 주산학원과 신문배달지국도 운영한다. 이 물품과 서비스들을 가게에서 팔고,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팔고, 5일장에서 팔고, 상가를 돌아다니며 팔고, 남의 사무실에서 팔고, 남의 공장에서 팔고, 남의 집에서 팔고, 아파트단지를 돌아다니며 판다. 기쁜 일, 슬픈 일, 서러운 일, 억울한 일을 겪고, 때로 체면과 건강을 물품 대금과 맞바꾸게도 된다.
그러나 그가 절대 팔지 않는 것도 있다. 선량함, 정직함, 가족, 자기 신념. 팔아야 하는 것을 정직하게 팔고, 팔지 않아야 하는 것을 반듯하게 지키는 치열한 삶의 기록을 읽으며 숙연해졌다. 전순예 작가를 더 좋아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돈벌기 쉽지 않고, 가장의 어깨는 무거우며, 앞날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두드리면 때로 문이 열렸고, 자신이 초라하다 여겨질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누구의 응원도 아닌 스스로의 용기였다. 그 오랜 교훈들을 이렇게 진실하게 전할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까.
- 장강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