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유령이나 악마를 일으켜 세우는 건 내가 좋아하던 저자들이 통 크게 제시한 약속이었고 또 내가 가장 간절히 원했던 거였다. 비록 내 주문은 늘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 실패를, 내 스승들이 기술이나 엄밀함을 결여한 때문이라기보단 나 자신의 경험 부족과 실수 탓으로 돌렸다.
--- p.55~56
내 손에 그토록 놀라운 힘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그걸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 오래도록 망설였다. 비록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은 내게 있었지만, 섬유질, 근육, 정맥 같은 그 모든 복잡한 것들과 더불어 그 생명을 담을 틀을 마련하는 것은 여전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려움과 고역인 그런 상태였다.
--- p.75
음습하고 축축한 아침, 마침내 동이 텄고 잠을 못 자서 아픈 눈에 하얀 첨탑과, 여섯 시를 가리키는 시계가 걸린 잉골슈타트 교회가 보였다. 문지기가 그 밤 내 피신처였던 마당의 문을 열었고 나는 거리로 나와, 모퉁이를 돌 때마다 행여 눈에 띌까 두려운 그 끔찍한 놈을 피하려는 듯 빠르게 걸음을 떼었다. 감히 내가 거주하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검고 황량한 하늘에서 퍼붓는 비에 흠뻑 젖었지만, 그저 서둘러야 한다는 충동만 느꼈다.
--- p.84
이 말을 한 순간, 근처 나무숲 뒤에서 어떤 형체가 슬며시 움직이는 게 어둠 속에서 감지됐다. 나는 꼼짝 않고 서서, 뚫어지게 그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착각했을 리 없었다. 번개 불빛이 물체를 비추자 그 형체가 뚜렷이 드러났다. 거인 같은 몸집에, 인간의 것에 속하기보단 훨씬 무시무시하게 그 뒤틀린 모습은 즉시 그게, 내가 생명을 준 추악한 악마, 바로 그놈이란 걸 말해 주었다.
--- p.112
눈을 떴을 때는 어두웠어. 추위도 느껴졌고, 너무 쓸쓸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고 반쯤 겁에 질렸어. 그대의 그 아파트를 떠나기 전 추위를 느껴서 몇몇 옷가지로 몸을 감쌌지만, 밤이슬로부터 나를 지키기엔 충분치 않았지. 나는 가련하고 무기력하고 비참한 놈이었어. 아무것도 모르고 식별할 수도 없었지만, 사방에서 고통이 밀려드는 것을 느끼고 주저앉아 흐느꼈지.
--- p.157
존재하는 저 수많은 인간들 가운데 나를 동정하거나 힘이 될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그런데도 그 적들을 향해 나는 친절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걸까? 그건 아니지. 그 순간부터 나는 인간 종족을 향해서, 그 누구보다도 나를 만들어 이 견딜 수 없는 불행으로 내몬 그 사람을 향해 영원한 전쟁을 선포했어.
--- p.210
나는 의기양양하게 내 화장용 장작더미에 올라가서 불타는 화염의 고통 속에서 기뻐 날뛸 거야. 그 커다란 불빛도 사라질 거야. 내 재는 바람에 실려 바다로 가겠지. 내 영혼은 평화롭게 잠들 거야. 혹시 영혼이 생각을 한다면, 확실히 그렇다고 생각지 않을지도 모르고. 그럼 안녕히.
--- p.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