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은 먹색 하늘을 가로지르는 감나무 밑에서, 몸집이 작은 어머니가 발을 동동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왔구마! 왔구마! 드디어 왔구마!”
그렇게 말하며 두 손을 흔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 순간, 그는 앞으로 고꾸라질 것처럼 언덕길을 뛰어올랐다.
“잘 와불었다. 서두를 것 읎어. 여기는 니 집이니께.”
어머니의 맑은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뒷산에 메아리쳤다. 흩날리는 얼음 부스러기를 맞으면서 어머니는 환한 웃음으로 그를 맞아 주었다.
“저기, 어머니…….”
나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라고 하소연하려고 했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엄지장갑을 낀 손으로 그의 곱은 손을 꼭 잡았다.
“인자 안 좋은 기억은 다 잊어불고, 맴 편히 지내다 가래이.”
띠지붕에서 미끄러져 땅으로 떨어진 눈이, 툇마루 끝을 요새처럼 에워싸고 있었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걸음을 내딛을수록 그윽한 냄새가 짙어졌다.
“세이이치, 잘 들으래이. 무신 일이 있어도 어매는 니 편이구마.”
---「버림받은 자가 갈 곳」중에서
나쓰오, 인자 그리 열심히 살덜 안혀도 됭께 배불리 실끗 묵고 편안허게 살그래이. 닌 지금까장 겁나게 잘 살었어. 아무도 칭찬혀 주덜 안혀도 어매가 힘껏 칭찬혀 주꾸마. 그걸로 충분혀, 나쓰오.
---「단호한 한마디」중에서
"엄마의 목숨을 잇고 있는 인공호흡기를 뗐을 때 황급히 생각했어. 이 사람은 누구지, 하고.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있지도 않은 고향에 간 거야. 거기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확실히 깨달았어.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아무리 반항하고 아무리 무시하고 아무리 경멸해도, 난 엄마의 모든 것이었다고.”
---「꽃잎 배」중에서
“외롭지 않아요?”
길을 걷고 있노라니 서글픈 마음이 중얼거림이 되었다. 초롱의 아련한 불빛 속에서 어머니는 미소를 지었다.
“외롭긴. 한나도 외롭들 안혀. 마을 사램이 모다 돌봐주고 있응께.”
그리고 잠시 말을 선택하듯 망설이고 나서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느그가 나보담 훨씬 외롭지 않냐?”
---「개똥벌레」중에서
집이 가까워질수록 무로타의 걸음이 느려졌다. 벚나무 가로수길 끝에 있는 것은 이미 집이 아니라 잠자리에 불과했다. 손자의 목소리라도 들을까 하고 스마트폰을 꺼내다 마음을 바꾸었다. 딱히 외로운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뒷모습이 그를 추월해 간다. 걸음이 느려질 만큼 체력이 약해졌을 리는 없다. 목적이 없으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 집에는 몇 시에 들어가도 상관없다. 아니,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무위도식」중에서
며느리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짓고, 저물어가는 풍경을 아득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자꾸 속이게 돼서요…….”
“그런 말씀 마세요. 난 속으러 온 거예요.”
---「신이 오는 날」중에서
“어머니, 있잖아요. 나도 이제 연금으로 살아야 해서 돈을 펑펑 쓸 수는 없어요.”
물소리가 멎었다. 부엌을 돌아보니 고개 숙인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니, 여기가 마음에 들지 않은 건 아니에요. 내 분수에 맞지 않는 것뿐이에요. 정말로 단지 그것뿐이에요.”
금기를 깨뜨렸다. 가짜 어머니와 아들은 넓은 집 안에서 몸을 웅크렸다.
---「보름달이 뜬 날 밤」중에서
도쿄는 인간관계에 담백해서 혈연을 소중히 여기기는커녕 굴레라고 여기는 경우가 더 많다. 오빠와 여동생이 몇 년에 한 번 친척 결혼식이나 장례식에서 얼굴을 마주했다고 해도 특별히 사이가 나쁜 건 아니다. 깊은 관계를 피해온 만큼 그들의 앞에는 고독한 노후가 기다리고 있다. 병원에도 시설에도 그런 노인이 넘치고, 자신들도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래서 이 마을을 동경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고 말하지만, 도쿄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의 눈으로 보면 이곳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
---「때 이른 눈」중에서
인자 이걸 끝으로 나쁜 기억은 다 잊어불자꾸나. 그려도 잊을 수 읎다믄 나가 몽땅 저시상에 갖고 갈 텡께. 고상을 잊지 않으믄 복을 받을 수 읎어야.
---「때 이른 눈」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