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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February March April May June July 해설 김화영 : 혓바닥 위에 세운 감각의 제국 작가의 말 |
저조경란
趙京蘭
“당신들, 폴리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사고였어.” “……죽은 거야? 죽인 거야? 똑바로 말해.” “사고였다고.” “……!” --- 본문 중에서 |
나는 그것을 꿀떡 삼킨다. 그의 혀는 내 입속에서 펄떡거리는 생선처럼 저항한다. 나는 입을 꽉 다물어 그것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내 이는 그것을 잽싸게 가로채 으깬다. 내 혀는 넘치는 분비물로 그것을 축축하게 적시고 뒤집고 근육처럼 힘차게 움직여 목구멍 깊숙이 밀어넣는다. 더 깊숙이 더 완전하게 밀어넣기 위해 내 혀는 빳빳하게 일어선다. 한 조각, 한 방울도 입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내 위 속으로 완벽하게 미끄러져들어간다. 온몸의 감각이 바늘 끝처럼, 미세하게 떨리며 이윽고 나는 숨을 토해낸다. 마지막으로 내 혀는 방금 전 요리의 맛을 되새기기 위해 쩝쩝, 입맛을 다신다.
--- p.101 |
“이거, 조경란 소설 맞아?”
조경란이 육 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 『혀』를 읽고 문학동네 편집부에서 터져나온 첫 번째 반응은 이랬다. 이전까지의 조경란 소설이 깊이 있는 문체로 삶의 결들을 섬세하게 더듬는 느낌이었다면, 이 작품 『혀』는 전혀 다르다. 조경란이 강렬하고 흡입력 있는 스토리에 빠른 전개, 탄탄한 구성으로 승부하는 작가로 변신한 것이다. “내가 읽은 수많은 책들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 사랑을 시작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곤 했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는 사랑이 끝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원은 서른세 살의 요리사다. 스무 살 때부터 이탈리안 요리 전문학교에서 요리를 배웠고, 스물세 살부터 칠 년간 이탈리안 레스토랑 ‘노베’에서 일했다. 그리고 스물아홉 살부터 자신의 쿠킹 클래스 ‘WON’S KITCHEN’에서 요리를 가르쳐왔다. 칠 년간 함께했던 애인 석주가 떠나기 전까지는. 지.금.내.가.사.랑.하.는.사.람.은. 나는 그의 얼굴에 난 가장 크고 깊은 구멍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혀는 물고기의 혀처럼, 연약한 연골에 잘 싸인 새의 혀처럼 유연하게 움직인다. 가장 맛있는 것을 먹고 있을 때처럼 신중하게, 주의 깊게 움직인다. 세.연.이.야. 지원의 손을 꼭 붙잡고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약속했던 지원의 요리를 맛보고 찬탄해주던 그 남자의 혀가 이제 다른 여자의 이름을 발음한다. ‘WON'S KITCHEN’에서 요리를 배우던, 젊고 도발적인 전직 모델 이세연의 이름을. 지원이 훔쳐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지원의 주방 도마 위에서 “축축하고 번들거리는 거대한 분홍빛 혀처럼” 하나로 얽혀 있던 그들은 미련없이 떠났고, 지원은 “침묵하는 늙은 개” 폴리와 함께 남겨졌다. 헤어지자고 결정하면서 많은 것을 서로 공깃돌처럼 나누었지만 폴리를 누가 맡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게 끝났다. 그녀가 개를 싫어한다는 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너랑 나랑은 버려진 거야, 이렇게 둘이. 사 년 만에 다시 ‘노베’로 돌아온 지원은 충족되지 않는 사랑과 굶주림 때문에 가슴 가득 차오르던 분노를 가라앉히고 잃었던 식욕과 미각을 점점 되찾아간다. 하지만 요리사로서 다시 인정받기 시작한 지원과 달리 폴리는 점점 우울증을 앓게 되고, 보다 못한 지원은 폴리를 석주와 세연에게 보내기로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석주로부터 폴리가 이세연이 휘두른 프라이팬에 맞아 죽었다는 전화를 받는다. 지원은 한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간절히 원하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잔인한 여름, 친구 문주의 잡지에서 한때 석주와 지원의 꿈이었던 새 집과 쿠킹 클래스를 완성한 석주와 세연의 행복한 사진을 보며, 지원은 이제 멈춰야 할 때임을 깨닫는다. “땅에서 곧장 솟아오르는” 송로버섯과도 같을 줄 알았던 사랑은 이제 끝난 것이다. 지원은 모든 것이 갖춰진 키친에서 잘 벼려진 칼로 마지막 요리를 준비한다. 단 한 사람을 위한, “혀를 녹여버릴 만큼 맛있는” 단 하나의 요리를. * * * “나는 요리하고 사랑해야만 한다. 그것은 두 가지 일이면서 동시에 한 가지다. 이것이 내 운명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요리사 지원에게 요리와 사랑이 한 가지라면, 조경란에게는 거기에 한 가지 더, ‘말/언어’가 더해질 것이다. 무릎 안쪽에 숨어 있는 ‘다른’ 입술을 통해 남몰래 소통하고 관계하기를 원했던 그의 인물들이 이제, ‘입’을 열었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사랑. 이것은 여자와 남자에 관한 확장된 개념일지도 모른다. (……) 어디선가 사람들이 섹스에 몰입해 있는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저들도 틀림없이 미식가일 거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난겨울, 미닫이 문틈 사이로 한석주와 이세연을 엿본 후부터. 그를 위해서 요리할 때만은, 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허기가 느껴지는 그런 음식을 만들고 싶다. 지원의 입/혀를 통해, 조경란은 이제 본격적으로 독자와 소통하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먹어본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운밥을 지어본 사람이라면, 『혀』를 읽는 동안 저절로 고이는 침을 되삼키는 동시에 가슴 한켠이 서늘해지는 순간을,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한숨짓는 순간을, 몸이 기억하고 있는 어느 날의 추억에 온몸이 간질간질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 * 뭐, 드시고 싶은 거 없어요? 아마 자넨 만들어줄 수 없을 거야, 내가 먹고 싶은 건 날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어준 음식이거든. 사랑에 빠진 요리사의 음식은 먹지 말라는 서양 속담도 있지만(사랑의 열병으로 온몸이 흥분상태에 빠진 요리사는 미각이 둔해져 음식의 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는 것), 최근의 어느 기사를 보면 세계 유명 요리사들은 대부분 푸아그라나 캐비아, 송로버섯이 아닌 자신의 추억과 사랑이 담긴 음식을 ‘최후의 만찬’으로 꼽았다고 한다. 도넛에 맥주 1병, 병에 든 콜라에 프라이드 치킨 한 조각, 달걀 프라이와 치즈버거, 컵케이크 한 조각…… 그들은 그 음식들을 꼽으며 “음식은 맛 못지않게 과거의 경험이나 추억과 깊이 관련돼 있다” “추억을 떠올려주는 음식은 따뜻한 포옹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추억은 늘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기억한다. 따뜻한 밥냄새에 따라오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 독특한 허브향의 이탈리안 요리에 뒤따라오는 첫사랑의 추억…… 『혀』는 이런 모든―우리의 몸이 기억하고 있는―맛과 향과 추억을 불러온다. 그 향과 맛이 독특해 미량만으로도 다른 음식의 향을 모두 덮어버린다는 송로버섯처럼, 이 책의 책장을 여는 순간 독자들은 화려하고 다채로운 미식의 세계 속에 숨은 인간의 사랑과 욕망과 거짓을 감각적이고도 섬세하게 그려 보이는 조경란의 식탁에서 쉽게 떠날 수 없을 것이다. 소설 『혀』는 조경란식 “감각의 제국”이다. 그의 자아는 의식이기 이전에 우선 감각이다. 그중에서도 미각, 즉 입 속의 혀다. 그는 입을 통해서 세계와 만난다. _김화영(문학평론가, 불문학자) 조경란의 『혀』는 마음이 산산이 조각나고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바로 그 순간에 집중한다. 그러니 『혀』를 읽는 당신이여, 찢겨진 사랑에 무릎 꿇었던 그 옛날로 돌아가기를. 그런 후에야 현란하게 펼쳐진 갖가지 요리들 너무 우두커니 서 있는 한 여자의 창백한 얼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얼굴은 한때 당신의 얼굴은 아니었는지. 잊혀진 감각들이 고개를 든다, 바로 지금 당신의 혀 위에서._차미령(문학평론가) “다 읽고 나면 입에 군침이 돌게 하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다.” 조경란이 육 년 만에 내놓은 새 장편소설이다. 1996년에 데뷔했으니 햇수로 이제 12년차, 그 동안 네 권의 창작집(『불란서 안경원』 『나의 자줏빛 소파』 『코끼리를 찾아서』 『국자 이야기』)을 묶어내는 사이에도 2,3년에 한 권꼴로 장편소설(『식빵 굽는 시간』(1996) 『가족의 기원』(1999)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2001))을 선보여온 부지런한 그였으니, 이번 장편은 독자를 꽤 오래 기다리게 한 셈이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의 즐거운 허기를 꽤 오래 누렸으니, 이젠 눈과 코를 즐겁게 하고 침샘을 자극하는 향긋하고도 자극적인 메인요리를 맛볼 시간이다. * 문학평론가 차미령씨의 비평 「바로 지금 당신의 혀 위에서」는 계간 『문학동네』 겨울호에 실릴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