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컨대, 그 순간부터였다. 내가 레일리 크라하에게서 들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발언들이 줄줄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레일리 크라하가 지금껏 나를 보며 굳이 입 밖에 꺼내지 않고 담아 두던 생각들 말이다.
“지나가던 생판 다른 인간의 영혼이라도 자기 몸에 쑤셔 넣고 본인은 죽음에 몸을 내던져 사라졌답니까? 아니면 잘 살고 있는 다른 인간을 강제로 불러들인 겁니까? 어느 쪽이든 당신이 유리 옐레체니카의 몸을 빌린 생판 다른 인간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일찍이 유리 옐레체니카의 원조를 포기하게 됐을 뿐이지요.”
그리고 거기까지 얘기한 레일리의 눈동자가 사납게 일그러졌다. 격렬한 분개였다.
한마디로……. 거의 모든 진상을 일찍이 짐작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내가 이 세상의 창조주……. 알렉시스 에슈마르크의 표현을 빌리자면 ‘설계자’라는 점 외에는 거의 눈치채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기가 찰 지경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지금까지 하지 않아도 될 고생에 수많은 시간을 바쳤다. 몸으로나, 마음으로나 마찬가지였다.
“너, 이 자식…….”
나는 집사 놈에 대한 억하심정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며 눈을 세모꼴로 치떴다. 일찌감치 대부분의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파악하고 있었으면서 일언반구 말을 꺼내지 않았단 말인가? 정말이지 이 자식은 왜 이렇게 옹졸하고 좀스럽단 말인가?
“그깟, 이미 일찍이 짐작하고 있는, 당신이 내게 숨기는 비밀 따위가 당신의 양보할 수 없는 지점입니까?”
그런 내 꼴을 무심히 깔아 보던 그가 특유의 오만한 태도로 목을 옆으로 기울이고, 내 위로 얼굴을 숙였다.
“본래 계시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으신 겁니까?”
레일리 크라하가 퍽 다정다감한 태도로 속삭였다
“그렇다면 포기하십시오, 마스터. 저를 데리고 가실 생각이 없으신 것이 아닙니까? 당신 삶에 편입시킬 생각이 추호도 없다, 이 말씀이 아닙니까?”
그가 그대로 몸을 숙여 내 목덜미 옆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그의 품에 갇힌 듯한 형상이 됐다.
“이제 됐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마치 크게 숨을 들이켜는 듯했다. 아주 달콤하고 진득한 향기라도 맡고자 꽃다발에 얼굴을 파묻는 사람처럼.
“본래의 당신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그저 당신이 본래의 당신으로도, 유리 옐레체니카로도 내 곁에 있지 않겠다면.”
귓가에 사탕이라도 떨어트린 듯한 달콤한 목소리로, 레일리 크라하가 부드럽게 말했다.
“제 손에서 놓을 생각이 없으니, 어디로도 돌아가게 해 드릴 생각이 없습니다.”
정말……. 어쩌다가 이딴 놈한테 감정적 호감을 느끼게 됐지?
진정 나 자신의 취향을 반성해야만 할 때가 왔다. 죽어도 얽히지 말았어야 할 놈과 얽히고 말았다는 것을, 비로소 그때에야 확실히 깨달았다.
“당신의 팔다리를 부러트리고 세상의 빛을 꺼트려서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얌전히 제 곁에 있겠다고, 한마디만 하시면, 실컷 귀여워해 드리며 풍족하게 키워 드릴 텐데 왜 그 한마디를 못 하시지요?”
그의 발언은 갈수록 가관이 됐다. 나는 정말로 많이 반성해야 한다.
“그러니 괜한 수작 부리지 마십시오.”
정말로. 진짜. 캐릭터의 인생과 인품을 말아먹은 책임을 이렇게 지게 될 줄은 몰랐지만, 정말로, 정말로 반성해야만 한다. 반성한다고 해결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진짜로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
“갖고 싶은 것은.”
쓰레기들의 도시를 제패했던 악당, 므라우의 까마귀, 레일리 크라하가 말했다.
“무슨 짓을 해서든 손에 넣는 성품이라.”
일찌감치 멍 자국을 남긴 내 손목을 이빨 끝으로 물어뜯으며, 그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경고했다.
“수작을 부리시면 저도 대응해야 하지 않습니까. 부디 집사로서의 소임을 다해, 최소한의 수단 방법을 가리게 해 주십시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