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퐁당!”
그대의 오늘도 어딘가에 흠뻑 빠져든 행복한 시간이기를!
7년차 아나운서. 여전히 엉거주춤 서 있는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을 자꾸만 거울에 비춰보게 된다. 지금 나의 자세는 어떠한가. 어설프고 불안하지는 않을까. 얄밉고 거만하지는 않을까. 21년산은커녕 한입 먹고 버리게 될 만큼 향기 없는 모습은 아닐까.
나의 20대는 퐁당, 어딘가에 빠져 살았던 시간들이었다. 꿈을 위해 퐁당, 사랑을 위해 퐁당, 그리고 삶이라는 거대한 바다 속에도 퐁당 빠졌었다. 처음엔 이렇게 빠져버리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완전히 흠뻑 빠졌을 때 우리는 그곳을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다.
이 책은 20대의 꿈꾸던 시절부터 서른을 살고 있는 오늘 나의 마음까지를 모은 것이다. 10년 전 일기장을 들춰보니 어설프고 서툰 감성들이 물감처럼 또옥똑 선명하게 묻어난다. 진하고 또렷하지만 이리저리 뒤섞여 당장이라도 그림을 망칠 것 같은 불안감이 늘 서려 있다. 하지만 이제는 적당히 물을 섞어 농도를 조절할 줄도 알고, 아니다 싶을 땐 완전히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도 있는 여유도 생겼다. 무심히 흘러버린 세월인 줄 알았건만 그 안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고, 이야기가 있었고, 조금씩 조금씩 성장한 내가 있었다.
사무치게 그립고 애잔한 시간들이지만 최선을 다해 살았기에, 누군가 다시 돌아가라고 한다면 그냥 여기 머무르겠노라고 말하고 싶다. 앞으로 살아가게 될 나의 시간들도 돌아보기보다는 늘 기대하는 시간들이었으면 좋겠다.
부디 이 책이 이제 막 하얀 스케치북을 펼쳐든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래 전의 나도 지금의 그대와 같았음을, 꿈꾸는 그대는 이미 충분히 아름다움을 꼭 이야기해 주고 싶다. --- 프롤로그 중에서
나에게도 하염없이 흔들리던 시간들이 있다
그러나 그마저도 있는 그대로의 나였다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날이.
바람이 불면 눈물이 주르륵 흐르던 날.
그저 바람이 불어 그러나보다 했는데
해가 나도, 비가 와도
심지어 그 좋아하던 눈이 내려도 눈물이 그치지 않던 그런 날이.
우연히 길에서 만나 안녕하냐 안부를 묻는 이에게
‘그저 그렇지요’ 대답하곤 괜스레 가슴이 먹먹했던 날.
안녕한 일상이 무얼까, 혼자 울컥했던 그런 날이 있다.
잠 못 드는 어느 밤
두 눈은 분명 말똥말똥한데
미래란 것이 도무지 보이지 않아 앞이 캄캄했던,
그래서 차라리 두 눈 질끈 감아버린 그런 날이 있다.
고요한 하루가 적막해
친구들의 연락처를 뒤적이다가
얘는 바쁠 거야, 얘는 일하잖아, 얘는 데이트 중이겠지.
결국 그 누구에게도 전화를 걸지 못했던 그런 밤.
혹시나 하고 연락이 된 오래된 친구에게
‘잘, 지내지?’ 단 한마디.
그리곤 정말, 아무 말도 잇지 못했던 그런 밤.
그렇게 침묵 속에 내내 흐느끼기만 했던 밤이 누구에게나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날」 중에서
처음 ‘아나운서’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참 많이도 울었다. 공산품은 출시될 때부터 완제품으로 뚝딱 잘도 나오건만, 20년 이상 숙성·제조된 나는 뭘 해도 불안하고 부자연스러웠다. 물론 ‘신입’이라는 이름은 많은 것을 용서했다. 대학에서 최고참으로 졸업을 했음에도 사회에서는 다시 꼬마. ‘얘는 아직 어리니까. 아직 뭘 모르니까’ 하는 선배 대변인들은 늘 내 편이 돼주었다. 그러나 연차가 쌓이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심지어 상을 받기도 했음에도 나는 늘 스스로가 불안하고 부끄럽기만 했다. 분명 가진 것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고 의외의 장면에서 박수를 받기도 했지만 그것은 언제나 내 것이 아닌 듯 느껴졌다. 결핍을 느낀다는 것은 발전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 방향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는, ‘과연 이 길이 맞기는 한 걸까’ 운명처럼 걸어온 길을 의심하곤 했다. 그 까닭을 깨닫는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직장생활 7년차,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 이유, 나는 지나치게 ‘범생이’였다. --- 「내게, 이 길이 맞는 걸까」 중에서
우리 다 어릴 때 엄마한테 배웠잖아요. 바지는 두 다리에 하나씩 끼워 넣으면 되는 거고, 단추는 맨 위부터 채우면 되는 거고. 근데 「톱밴드」를 하면서는 대체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하는 건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겉옷 위에 속옷을 입어야 하는 건 아닐까를 고민했을 만큼 ‘파격’이라는 단어와 싸워야 했지요. 눈에 힘준다고 갑자기 카리스마가 생기는 것이 아니듯, 가죽 재킷에 해골무늬 티셔츠를 입는다고 해서 로커가 되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마음을 바꿔먹었습니다.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기보다 음악이나 한 번 더 듣자.’ 그때부터 자동차에 각종 CD가 꽂혔습니다.
예전 같으면 잠 깨울 때나 들었던 록 음악들이 나의 출근길에 동행했습니다. 그렇게 꼬박 6개월, 나는 비주류로 살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부터 평소 옷차림이 좀 달라졌나 봅니다. 출근의상인데 사람들이 묻습니다.
“너, 오늘 톱밴드 촬영 있니?” --- 「서바이벌, 진짜 살아남기」 중에서
그러다 대학 1학년 어느 봄, 파란 니트를 접어 입은 모습이 참 좋았던 한 사람을 만났다. 무얼 해도 진지했던 그 사람은 참 똑똑했고 모든 일에 정열적이었다. 그러나 열정과 욕심이 많았기에 언제나 조급했고 모든 것에 극단적이었다. ‘이것 아니면 죽겠다’ 하는 삶에 대한 투지는 대부분 그를 빛나게 했지만 때론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을 숨 막히게도 했다. 사랑과 집착은 한끝 차이라 했던가. 끔찍이도 나를 아껴주었건만 나 때문에 죽겠다는 사람이라면 훗날 나 아닌 다른 어려움 앞에도 죽겠다고 나설 것만 같아 결국 그에게서 돌아서야 했다.
연인끼리 사랑한 만큼 싸우기도 하고, 그러다 헤어지기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진대 첫사랑에 대한 환상과 계획이 가득했던 스무 살의 내게, 이별은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 이후 한동안 사랑이란 건 절대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 생각하며 견디기 힘들만큼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 그토록 근사했던 사람이 내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 결국 그렇게 처절하게 무너져가는 것을 보며 나는 그때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신념이 깨진 데 대한 억울함 때문이 아니었다. 기억해야 할 아픔이 상처로 남았기 때문이었다. 내게도, 그리고 그 사람에게도. --- 「상처는 아픔을 기억해」 중에서
지금쯤 당신은 아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겁니다. 행복한 마음 반, 두려운 마음 반. 머릿속엔 온갖 물음표들이 떠다닐 테지요.
‘평생을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한다면 진짜 이 사람이 맞는 걸까’ 하는, 한 3개월쯤은 전에 했어야 할 고민부터, 내일 아침 얼굴 부으면 어떻게 하나? 입장할 때 스텝이 엉키면 어쩌지? 내가 애인이라던 우리 아빤? 식장에서 엄마 보고 울어버리면? 얼굴에 뾰루지라도 나면 이걸 짜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 어떤 결혼지침서에도 나와 있지 않은 고민의 목록들이 어찌나 많던지요. 평소 같으면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나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친구와 전화로 수다라도 떨었겠지만, 고민은 결국 ‘지금 잠을 못 자면 화장이 엄청 뜰 거야’하는 데까지 미쳐, 평생 남는다는 결혼사진 한 장을 위해 억지로 자리에 드러눕습니다. (중략)
나는 믿어요. 입장하다 조금 삐걱거려도, 덜렁이며 순서를 잊어도 당신은 내일, 분명 아름다울 겁니다. 그리고 그런 당신을 보며 사람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박수를 쳐줄 거예요. 그러면 당신은 그저 온 마음을 다해 환한 미소로 인사하면 돼요.
그러니 오늘 밤 평안히, 그대 잘 자요. --- 「내일, 결혼하세요?」 중에서
의사들은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길어야 일주일, 빠르면 사나흘. 천천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더군요. 대체 무얼 보고 저들은 생명의 길이를 예측할 수 있는 걸까. 여전히 우릴 보며 농담도 하시고 웃기도 하시는데. 따져 묻고 화를 내고 싶은 순간이 많았습니다.(중략)
마이크 앞에서는 곱게 화장을 한 채 생글생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나운서 이지애였지만 집에 와서는 아픈 아버님을 두고 떠날 수밖에 없는 죄 많은 며느리일 뿐,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답니다.
아버님이 몸져누워 계신 그날 밤에도 며느리는 ‘파격의상’으로 검색어에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 즈음 누군가는 제게 미소가 가식적이라고 글을 올렸더군요. 그럴 수밖에요. 그때 저는 정말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를 온통 눈물로 보내고도 ‘오늘 하루 안녕하시냐?’ 말해야 하는 방송인의 잔인한 운명을 그때 처음으로 원망했습니다. 진심에 없는 미소였으니 억지스레 꾸며내야 했고 그렇게라도 꾸미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을 업으로 삼아 지금껏 살고 있으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요. --- 「아낌없이 주는 나무」 중에서
꿈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달렸던 20대는 수많은 난관을 만나 넘어지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면서 발가락 하나하나에 굳은살이 배길 만큼 최선을 다했다. 서러운 시행착오를 겪으며 숱하게 눈물도 흘렸지만, 그때 생긴 굳은살을 ‘훈장’이라 여길 만큼 강했고 날렵했다. 그 예쁜 나이에 나는 거칠었고 상처투성이였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30대의 나는 좀더 우아해도 좋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했던가 보다.
그러나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우아하게 걷는 걸음이 왠지 둔하고 무겁게만 느껴진다.
서른한 살, 나는 다시 성장을 시작한다. ‘서른한 살’이 아니라 다시 ‘한 살’이다. 다시 기고 걷고 뛰기까지 끊임없이 자라보기로 한다. 나이 먹어 늙어가는 것이 아닌 여전히 날렵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다시 ‘성장’하기로! --- 「다시, 한 살」 중에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