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러 해 기도사역을 인도하면서 많은 성도가 기도의 필요를 알고 있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중보기도에도 열심이지만, 정작 기도의 능력과 영적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막연하게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과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기도의 실체를 알지 못해서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도 없이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반복한다는 것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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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도할 때 누구나 응답받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응답을 위해서는 기도와 간구의 대상이 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시는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그런 후에 기도 대상의 상황과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 그에 맞는 적절한 기도 방법을 분별한 다음 영적인 간절함과 진지한 태도로 기도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기도에 대해 많은 질문과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기도를 소개함으로써 기도의 영적인 원리를 설명하려 한다. 그리고 내가 만난 여러 문제와 상황에서 적절한 방법을 택해 기도함으로써 응답받은 일들을 나누고자 한다.
다양하고 전략적인 기도를 통해 당신의 기도 생활에 활력과 능력이 더해지고 기도의 응답을 통해 영적 승리의 기쁨을 누리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귀로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욥의 고백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놀라운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프롤로그」중에서
무엇이 수로보니게 여인으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을 견디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주님께 매달리게 했는가? 단언컨대 그녀는 예수님이라면 반드시 자신의 딸을 치유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자신의 딸을 고칠 수 있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고 확신했기에 그토록 치욕스러운 일을 당하고도 끈질기게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이 한두 번 기도한 후 응답되지 않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쉽게 포기한다. 이런 경우 대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기보다 영적인 소극성과 흔들리는 믿음, 나아가 자존심 때문에 기도를 그만두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수로보니게 여인이 당시 상황에서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웠다면 그녀의 딸은 치유받지 못했을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 어떤 말을 듣더라도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절규에 가까운 간구를 멈추지 않았기에 놀라운 응답을 받은 것이다.
정말 기도의 능력을 안다면 이제는 한숨과 원망의 입을 다물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라. 기도에 강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한다. 그리고 끈질기게 기도한다는 것은 기다리는 고통을 감내하기를 각오하는 일이다.
기도가 금방 응답되지 않을 때 사탄은 우리에게 다가와 속삭인다.
“하나님은 네 기도를 듣지 않아.”
“네가 기도하는 그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아.”
“기도는 부질없는 일이야!”
때때로 이런 조롱을 당해도, 앞이 보이지 않아 하나님이 정말 계신 건지 알 수 없는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날지라도, 결코 믿음의 끈을 놓지 말고 끈질기게 기도하라.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때에 인생의 위대한 간증을 만들어 낼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될 것이다.
--- p.31-32
이스라엘 백성의 집 문에 뿌려졌던 짐승의 피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보증하는 표가 된 것처럼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 자신과 가정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표적이 된다.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을 뿌리고 외치고 찬양하고 자랑하고 적용하는 곳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고 천사들이 동원된다. 그렇기에 흑암의 세력들이 물러가며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용서, 치료, 보호, 평화가 그곳에 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가족, 우리 집, 교회, 사업장, 학교 그리고 자동차뿐만 아니라 잠자리에 들 때나 장례식장이나 병원에 갈 때나 또는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기 전에도 보혈기도를 드리면 너무나 다른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중보기도 할 때도 보혈기도를 먼저 하는 것이 좋은데 자신과 상대방 그리고 그 문제에도 보혈로 덮는 기도를 하면 놀라운 응답을 기대할 수 있다. 한편 물을 마실 때도 샤워를 할 때도 목욕탕에 들어갈 때도 보혈로 덮는 기도를 해 보라.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 p.95-96
나는 온누리교회에서 5년째 기도사역을 인도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중보기도를 한다고 하지만 진정한 기도의 능력과 영적인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상황을 상상해 보라. 우리가 자녀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하던 어떤 사람이나 상황이 떠오른다. 그럴 경우 성령의 감동으로 그 기도를 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자신의 기도를 방해한다고 판단해 “주님, 잠깐만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아이가 이런 상황이거든요” 하며 끝까지 자기 기도를 하는 경우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면 성령의 감동으로 기도 제목과 기도 방식까지도 인도해 주실 텐데, 우리는 아직까지 기도에서조차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고 스스로 이루고 싶은 소망 목록을 만들어 용의주도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정작 사탄과 싸우는 게 아니라 성령님과 씨름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많은 사람이 이렇게 기도하기 때문에 기도의 즐거움을 못 느끼고 쉽게 지치며 중보기도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진정한 중보기도를 하고 싶다면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나 욕망 그리고 상상까지도 내려놓아야 한다.
중보기도의 대가라고 불리는 조이 도우슨(Joy Dawson)은 “중보기도란 성령의 인도를 받고 그분의 능력을 힘입어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할 때 우리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공유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겔 22:30).
성이 무너진 곳을 보수할 사람을 찾았지만 찾지 못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나님께서는 과연 그 시대에만 중보기도자를 찾으신 것일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무너진 곳이 너무 많다. 개인의 성을 비롯해 가정의 성, 사회의 성, 국가의 성, 심지어 교회의 성까지 보수할 곳이 넘쳐난다. 하지만 하나님이 찾으시는 진정한 중보기도자는 에스겔 선지자가 살았던 그 당시에도, 지금도 여전히 많지 않다.
--- p.134-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