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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여행자의 일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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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여행자의 일이라면

: 여섯 영화 다섯 도시, 여행의 미장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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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1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316쪽 | 508g | 150*200*30mm
ISBN13 9791196173623
ISBN10 1196173621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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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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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기에, 이 영화의 모든 판타지가 집약되어 있다. (…) 우리가 여행을 떠나며 기대하는 최고의 낭만은, 단순히 아름다운 도시와 유명한 랜드마크 따위가 아닌, 결국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더 나아가선 운명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일 테다. (…) 처음 보는 두 남녀가 만나 일상적이면서도 가볍지 않은 대화를 나누며, 처음 보는 도시의 구석구석을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는 일. (…) 이것은 우리가 여행지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항상 꿈꾸는 낭만의 최전선이다. (…) 이건 현실을 가장한 완벽한 판타지에 가깝다.
---「1장 사랑의 낭만적 특이점」중에서

그들은 성당에서 나와 빈 시내를 가로지르는 도나우강변을 따라 걷는다. 나 역시 영화 속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도나우강변으로 향했다. 을씨년스러운 겨울밤의 강가엔 운동을 하는 사람들만이 가끔씩 지나갈 뿐이었다. 이름만 도나우강이고 도시만 빈일 뿐이었지, 흡사 한강 둔치를 보는 듯한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나른한 강의 기운 때문이었는지, 혹은 한강이 떠올라서였는지, 그동안 내심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풀어지는 듯했다. 여행이라는 행위가 결국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일이라지만, 처음 가보는 도시는 언제나 사람을 외롭고 긴장되게 만든다. 그렇게 매일 낯선 사람과 낯선 언어들 사이에 놓여 있던 우리가 그 속에서 낯익은 풍경과 정취를 발견하는 그 순간, 낯섦과 익숙함은 농도가 적당한 반죽처럼 잘 섞여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우리가 영화라는 허구 속에서 현실의 모습을 발견할 때 더 쉽게 감정을 이입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것처럼.
---「1장 사랑의 낭만적 특이점」중에서

앙드레 지드나 헤밍웨이 등의 작가들이 즐겨 찾았던 역사 있는 서점이기도 한 이곳에서 영화는 제시와 셀린의 재회를 그린다. 미국에서 온 제시와, 파리의 여인 셀린. 둘의 재회를 나타내기에 이렇게 상징적인 곳이 또 있을까. 온통 프랑스어로 가득한 파리 한가운데 마치 영어의 섬처럼 위치한(파리의 한가운데에 영국 최고의 작가 셰익스피어의 이름을 딴 서점이라니!) 이 이질적이면서도 운치 있는 영미 문학 서점에서 둘의 재회가 이루어지는 것은, 미국 남자와 프랑스 여자의 9년 만의 재회를 다루기엔 더없이 적절한 장소처럼 보인다.
---「2장 그 모든 간극들에 대하여」중에서

내가 떠올린 영화는 그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그저 순수함의 결정체처럼 보이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다. 그날 나는 퇴근하자마자 홀린 듯이 이 영화를 다시 봤다. 청명한 하늘과 푸른 숲을 배경으로 맑고 순수한 목소리가 가득 울려 퍼지고, 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의 기억까지도 같이 상영되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영화. 영화를 다시 보면서, 이 작품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순수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 마음속에 막연한 환상이 생겼던 것 같다.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투명해지는 영화의 배경이 된 도시에선, 잃어버린 순수를 마주할 수 있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환상이. 그리고 정확히 다음 날, 나는 그 도시로 향하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3장 투명에 가까운 순수」중에서

여행의 기간 동안 나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의 어느 순간을, ‘Goldstar’라는 상표가 붙은 검은색 브라운관 텔레비전 앞에서 ‘도레미 송’을 따라 부르던 작은 꼬마를 떠올렸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를 찾아가는 일은, 결국 과거의 나를 찾으러 가는 여행이기도 했다. 나는 이 영화 촬영지들 속에서,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과거의 내가 되며 따뜻해질 수 있었다.
---「3장 투명에 가까운 순수」중에서

건물들은 10년도 더 넘은 영화에 나온 그 모습과 거의 흡사했다. 도시의 모습이 세월이 흘러도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다시 말하면 사는 이들에겐 한없이 불편한 점투성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낡고 오래된 건물을 마음대로 고칠 수 없다는 건 그것대로 불편한 일투성이일 테다. 그러나 골목마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은 도시를 여행하는 여행객으로 하여금 인위적이지 않은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요소 중의 하나였다. 과거를 사는 쥰세이라는 캐릭터와 피렌체는 그런 면에서 더 없이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피렌체는 온통 과거의 시간으로 가득한 곳이었으니.
---「4장 약속의 유통기한」중에서

존 카니 감독은 이 영화에서 자신이 살아온 더블린이라는 도시의 지극히 일상적인 장소와 거리들을 보여준다. 영화임에도 소설이 아니라 한 편의 에세이 혹은 다큐멘터리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앞에서 말한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나 캐릭터들의 특징, 연출 등의 이유도 있지만 결코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는 지극히 일상적인 영화 속 촬영 장소들 때문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함께 노래를 부르던 월턴스(Waltons)라는 더블린의 악기 상점 역시 영화가 아니었다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그저 평범한 가게에 불과했다. 더블린을 여행하는 동안에는 이렇게 숨어 있는 영화 촬영지들을 발견해내는 재미들이 있었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감독이 꽁꽁 숨겨둔 보물을 찾는 기분이었달까. 사실 이 영화가 아니었으면 더블린에 올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테니, 나에게 이 도시에선 영화 속에 나온 장소들만이 의미 있는 장소였다.
---「5장 평범한 날들 속의 어떤 강조점」중에서

나는 이어폰을 꽂고 그녀가 부르던 ‘If You Want Me’를 들으며 천천히 영화 속 장소를 그대로 걸었다. 거리는 조용했고, 이어폰을 타고 흐르는 목소리는 몽환적이었다. 그러나 노래가 들리는 4분 남짓한 시간 동안은 이 회색의 도시가, 우중충한 하늘이 마치 눈앞에 필터를 씌운 듯이 다르게 보였다. 보폭에 따라 흔들리는 시야는 영화 속에서 핸드헬드로 담겨진 그 장면을 그대로 내 눈앞에 펼쳐놓고 있었다. 불 꺼진 가로등이 오렌지 빛을 내며 켜지고, 주위가 어둠에 덮이는 상상을 하며, 영화 속 그녀가 된 듯한 착각에 잠시 빠졌다. 나는 자연스레 그녀의 걸음에 보폭을 맞춰 걸었다. 마법 같은 노래와 장면은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5장 평범한 날들 속의 어떤 강조점」중에서

영화 속에서 라피나가 지낸 곳으로 나오던 기숙사는 학교 앞에 위치한 일반적인 가정집이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돌계단과 난간을 보며 나는 라피나가 시크하게 앉아서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반해 그녀에게 다가오던 한 소년을 떠올렸다. 늘 그렇듯이 영화 속 촬영지를 다니는 여행은 장소에 대한 상상력과 때로는 과한 의미 부여가 필요하다. 겉으로 보기엔 별것 아닌 거리와 건물들을 목적으로 떠나는 여행. 그런 여행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은 오직 영화 속 한 장면이다.
---「6장 꿈의 폐곡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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