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육식자, 즉 다른 동물에게 먹히지 않고 잡아먹기만 하는 위치에 있는 고래는 해양 생태계를 균형있게 유지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균형이란 말은 모든 생물이 마치 어떤 큰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타격을 가하면 결국 기계는 망가져서 작동이 멈추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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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뭍에서 발견된 고래화석의 개수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고래의 조상이 뭍에서 바다로 옮아간 과정을 더듬어 보는 것은 비과학적이고 모험적인 발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빨을 갖고 있는 고래가 수염을 갖고 있는 고래보다는 앞선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점으로 미루어 고래는 바다로 갔고 그곳에서 그냥 머물러 살게 됐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바다에서 수백만 년을 사는 동안, 고래는 물고기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앞다리는 지느러미로, 뒷다리는 근육질의 꼬리로 변해서 수평면으로 자리르 잡고 있다(이와 대조적으로 보통 물고기들은 꼬리지느러미가 수직면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 같은 신체구조는 상승동작을 용이하게 하므로 호흡을 위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을 쉽게 해준다. 게다가 머리는 몸통과 곧바로 연결도어 있고, 또 일반적으로 포유동물에게서 볼 수 있는 귀와 남성 성기, 젖꼭지 따위의 돌출 부위가 사라졌다.
한편, 피부는 매끈해지고 두꺼운 지방층(추위를 막아 주고 부력을 유지해 줌)이 피부와 접하고 있는데다가, 눈 또한 바닷물에서 생활하는 데 유리한 쪽으로 적응을 한 상태이다. 또한 콧구멍은 두개골의 정상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고래의 숨구멍이다. 외면적으로는 물고기인 것 같지만 따뜻한 혈액과 소화기관, 호흡기관, 생식방법 등으로 미루어 보건대 고래는 분명 포유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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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직도 고래는 살아 있다! 인간이 땅위에서 군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래는 그들의 생활공간인 바다에서 군림한다. 인간과 고래 사이의 이 같은 유사성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주시되고 있었다. 언어와 문화, 시대, 구전설화 등을 통해서 육지를 지배하는 인간과 바다의 왕자인 고래 사이의 불가사의한 유사성이 계속 이야기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작살로 거대한 고래에 맞서던 옛날 영웅시대에는 고래사냥꾼이 항상 경건한 의식을 지냈다. 이 의식을 통해서 바다의 왕자와 육지의 왕자는 생사를 초월한 만남을 가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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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대의 포경선원은 평균 42개월을 바다에서 보냈다. 허먼 멜빌은 '바다는 나의 고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포경선원은 권태와 공포, 고독과 열광을 맛보아야 했다. 또한 이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섬에서의 생활을 맛보기도 했고, 전혀 다른 문화권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충돌하는 경우도 있었다. 오직 끈기있고 용감하며, 담금질을 한 무쇠처럼 강인한 사람만이 이러한 항해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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