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치는 멍하니 서서 수레가 덜컹거리는 소리와 어머니가 울먹이는 소리를 들었다. 슬픈 가락처럼 어머니의 울음이 점점 크게 울리다가 뚝 끊어졌다. 느티나무 사이로 주저앉은 어머니가 보였다.
“어무이!”
무치는 보따리를 떨어뜨리고 달려갔다.
“우리는 사람도 아닌 기라. 이기 사람이가. 이기……”
무치는 훨훨 나는 새를 생각했다, 커다란 날갯짓으로 거침없이 하늘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새. 그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는 비거가 앞에 놓여 있었다.
“날 비. 수레 ‘거. 나는 수레.”
종놈의 도망길에서 소년은 자란다
이 책의 주인공은 쇠돌무치라는 소년이다. 아니, 종놈이다. 강 진사 댁 종놈 쇠돌무치는 허리에 족보를 묶고 도망친다. 열세 살 소년이 스스로 선택한 길은 아니었다. 한 많은 어머니의 손길이, 무치의 허리에 훔친 양반 족보를 묶고, 대문 밖으로 무치를 밀어 내고, 문의 빗장을 걸어 버린 것이다.
무치는 여섯 살배기 도련님 상전을 모셨다. 업으라면 업고 내리라면 내리고, 상전이 다치면 대신 벌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목숨처럼 소중하게 모시던 상전들은 왜군이 쳐들어오자 자기들만 피난길에 올랐다. 무치의 어머니는 상전 일가가 실수로 놓고 간 노비 문서를 태우고 족보를 훔쳐 아들만은 다르게 살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무치를 내?는다. 무치는 어머니의 바람을 발길에 담아, 종으로 살지 않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무치는 평구 아재가 만든 비거를 훔쳐, 훔친 족보와 함께 날아오른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자기를 버리기 위해 떠난 도망길. 하지만 도망칠수록 도망칠 수 없는 현실이 무치를 옥죈다. 강 진사가 쫓고 있고, 가는 곳마다 왜군들이 있다. 그리고 비거는 생각처럼 날지 않는다.
작가는 혼란스러운 세상 밖에 던져진 소년의 두려운 마음과 복잡한 상황을, 담담하지만 단단한 문장으로 그려 낸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면서 오히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알고 인정하게 되는 소년의 눈물겨운 성장기를 보여 준다.
“지는 강 진사 댁 종, 쇠돌무치입니더.”
“쇠돌무치라. 쇠처럼 돌처럼 단단하고 강하게 살라고 그리 이름을 지었구나. 네가 이름값을 했구나.”
장군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따뜻한 피가 되어 무치의 온몸을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조선 중기, 생생하게 살아난 민중들의 이야기
이 책에서는 조선 중기 임진왜란 당시, 왜적에게 죽임을 당하고 포로로 잡히고 , 성에 포위되어 용감하게 싸웠던 민중들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낸다. 종들을 남겨 두고 피난을 떠나는 양반, 양반들한테 억울한 일을 당하다가 복수하려는 마음으로 왜군의 끄나풀이 되어 버린 청년, 목숨을 걸고 왜군들과 싸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왜군에게 포로로 잡혀 왜군들이 쓸 무기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듯 여러 상황에 처해 있는 민중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나 임진왜란 당시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 보게 한다.
험난한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 낸 민중들의 삶은 이야기 곳곳에서 깊은 울림을 준다. 그리고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꿈꾸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동화 속 아이들이, 다치고 꺾이는 전쟁 틈에서도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해 가는 것처럼 이 책을 읽는 아이들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꿈을 꾸는 마음을 배우기를 기대한다.
아이들이 성 밖에서 진주성을 돌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드무실에서 만난 아이들일 것이다. 왜군이 아이들에게 노래를 시키고 있었다. 무치는 가슴이 답답했다.
‘새장 같은 진주성.’
맞는 말이었다.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진주성 백성들은 꼼짝도 못하고 왜군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새장 문이 열리면 끝이었다. 그러니 어서 항하고 나오라는 소리였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