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을 박 기자에게 돌려주며 주혁이 먼저 말을 던졌다.
“조건이 몇 개 있다.”
“뭔데?”
“일단, 시간을 많이 못 준다. 어차피 증거는 확실하니까 금방 꼬리는 잡힐 거야. 일주일 줄게.”
“으아- 거참 빡빡허네.”
“뭘 약한 소리 하고 자빠졌어. 결과 안 나오면 바로 딴 곳에도 넘긴다? 독점으로 털 수 있는 시간이 일주일이라는 거야.”
주혁의 말을 들은 박 기자가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간 생각에 빠졌지만, 그도 벼랑 끝인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빡빡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J-주비스의 최화진이 자살한다는 날까지 시간이 얼마 없었다. 이제 1주하고 며칠. 가능한 빨리 처리해야 했다.
“다른 조건은?”
“그건 보면서 얘기할까?”
주혁도 챙겨온 사진을 꺼냈다. 전부는 아니고 몇 장만. 원본 파일은 모두 강주혁이 USB에 따로 챙겨놓은 상태였다. 한 장, 두 장, 세 장. 사진의 장수를 넘길 때마다 박 기자의 표정에 광기가 일렁였다. 희열을 느끼는 듯한 얼굴.
“송갑필이지, 이거. FNF 사장.”
“맞아.”
“그리고 얘는.”
“박종주.”
“태신식품 막내? 쓰레기들이 모였네.”
--- p.24
그는 지금 이름 모를 쾌감에 젖어 있었다.
애초 [척살]은 송 사장에게 엎어진 영화에 불과했다. 시간이 지나면 분쇄기에 밀려버릴 작품. 하지만 뜬금없이 나타난 강주혁 덕분에 숨이 붙었고, 저 많은 무명배우들에게 기회를 선사했다. 많은 고초가 따랐고, 위기도 있었다. 그럼에도 송 사장이 본 강주혁은 오묘하게 우직했고, 희한하게도 강직했다. 그의 핸들링 덕분에 어찌어찌 여기까지 왔다.
“대단한 새끼.”
송 사장은 짜릿함과 감개무량이 공존하는 표정을 지으며 촬영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빠르게 진행되는 촬영 현장, 배우들의 열연, 그 주변을 맴돌며 홍보 사진을 찍고 있는 국내 최고의 배급사, 그리고 강주혁.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잔뜩 번진 송 사장이 한 번 더 혼잣말을 뱉었다.
“이거, 진짜 터질지도 모르겠는데.”
--- p.68
―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지이이잉~!
주혁이 말하는 찰나에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070-1004-1009
발신번호를 확인한 강주혁은 양해의 손짓을 한 뒤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에서 전화를 받았다.
“‘브론즈’ 단계의 주인이신 강주혁 님 안녕하세요!
강주혁 님의 유료서비스 ‘브론즈’의 남은 횟수는 총 2번입니다.”
“이제 두 번.”
남은 횟수를 들은 주혁은 이어서 1번을 눌렀고.
“들으실 항목의 키워드를 ‘선택’해주세요!
1번 ‘2’, 2번 ‘9’, 3번 ‘10’, 4번 ‘새벽 2시 30분’, 5번…….”
키워드로 2번 ‘9’를 선택한 강주혁.
“탁월한 선택! 강주혁 님이 선택한 키워드는 ‘9’입니다!
톱 배우 강주혁 씨가 9월 ‘9’일 아침 충북 음성군청 부근 도롯가에 사망한 채 본인의 차량에서 발견됩니다. 경찰은 차량 내부에서 발견된 유서와 저항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자살로 사건을 종결합니다.”
그렇게 보이스피싱이 끊겼다. 전화는 끊겼는데 주혁은 핸드폰을 귀에서 떼어내지 못했다. 몇 초 후, 주혁이 어렵사리 읊조렸다.
“내가 죽는다고?”
몇 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올해라면 9월 9일은 며칠 뒤. 가만히 서 있던 주혁이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뭐라는 거야, 지금.”
퍽 혼란스러웠지만, 주혁은 힘겹게 방금 보이스피싱에서 들었던 내용을 수첩에 정리했다.
“내가 자살을 해? 이런 미친.”
주혁은 생각을 해봤다. 현재 자신이 죽고 싶은가?
“말도 안 되지.”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이 죽게 된다는 것인가? 답은 하나였다.
“수술을 당하는 거야.”
--- p.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