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韓非子 BC280?~BC233) 중국의 법가, 철학자 전국시대 한(韓)나라에서 태어남 법(法), 술(術), 세(勢)의 대가
한비자(韓非子)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는 전국시대(BC475~221)의 약소국이었던 한(韓)나라의 귀족 출신이었다. 한비자는 유가(儒家)인 순자(荀子)의 문하에서 공부했으나, 나중에 순자를 저버리고 당시 봉건 체계가 붕괴하는 상황과 더 밀접한 이론을 가진 다른 학파를 따랐다. 자신의 충고가 한왕(韓王)에게 무시당하자, 한비자는 자기의 생각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는 말솜씨가 별로 없었기에 자신의 이론에 대해 있을지도 모를 반론에 대한 논박도 글로 썼다. BC221년 통일 후 시황제(始皇帝)가 된 당시의 진왕(秦王) 정(政)은 한비자의 글을 읽고 이를 높이 평가했다. 진왕(秦王) 정(政 : 훗날의 秦始皇)은 한비자의 전제 정부에 관한 이론에 깊은 감명을 받아 BC221년 중국을 통일한 후 이를 통일국가의 정치원리로 삼았다. BC234년 진(秦)은 한(韓)을 공격했고, 한왕(韓王)은 한비자(韓非子)를 진에 협상자로 파견했다. 진왕은 한비자를 보고 매우 기뻐하며 그에게 높은 직위를 주려고 했다. 그러나 진의 승상이자 이전에 한비자와 같이 스승 순자(荀子) 밑에서 공부한 이사(李斯)는 한비자가 자신보다 더 뛰어났기에 왕의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한비자가 이심(二心)을 가졌다고 모함하여 그를 투옥했다. 이사는 한비자를 속여 그가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도록 했다. 한비자는 정치제도란 반드시 역사적 상황과 함께 변화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유가(儒家)처럼 낡은 제도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통치자의 도덕적 품성이 어떻든, 또 그가 어떻게 다스리든 상관없이 권력을 가졌다는 것은 이에 대한 절대복종을 요구할 권리도 가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름을 따라 <한비자(韓非子)>로 명명된 그의 저서는 당시 법가 이론의 총괄이었다. 우리고전연구회는 한비자를 공부하는 여러분께 미약하나 보탬이 되고자 이 책을 펴내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