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입장에 선다면, 시어머니가 되어본다면, 나 같은 어머니를 둔 아이의 입장에 선다면,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어른이라고 말합니다. --- p.31
폭포를 직접 그 밑에서 마주하지 않으면 대단함을 알 수 없다는 생각에 폭포 한가운데에 들어가버리면 전체의 모습은커녕 그 안에서 허덕이는 자신의 모습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면 전체의 모습과 함께 자신의 모습도 마주할 수 있지요.(...)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폭풍과도 같은 고난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도 그러한 자신과 자신의 고뇌를 떨쳐내고 멀리서 바라보는 냉정함을, 객관성을, 지혜를 잊지 않고 매일을 살아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 p.48~49
친한 사람들이 잇따라 황천으로 떠났습니다. 장례식을 찾은 분들께 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장례식의 의미 중 하나는 떠나간 사람이 온몸과 마음을 바쳐 남은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마지막 유언이라고요. 그 한마디를 가슴에 새겨듣습니다. 그리고 그 한마디를 살아가는 동안 매일매일 조금이라도 실천한다면, 떠난 자의 유언을 귀 담아 들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한마디는 무엇일까요? “당신도 죽는 날이 반드시 찾아올 거야. 예고 없이, 가차 없이. 언제 그날이 찾아와도 좋을 만큼 매일, 매시간을 살아가라고.” 이런 이야기가 아닐까요? --- p.68~69
죽음의 선고를 받아들임으로써 사람은 뒤늦게 생명의 존엄성을 깨닫고, 그 생명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며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죽음을 잊는다면 생도 아둔해집니다. 언제까지나 살아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인생은 비록 장수한다고 해도 결국은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인생으로 끝날 테지요. --- p.71
우선 석가모니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 자신보다 사랑하는 걸 찾아내기 힘드나니’라고 우리가 지닌 본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신을 아끼는 마음을 솔직하게 마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기본이라고요. 우리는 언제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을 깊이 사랑합니다. 무엇을 할 때도, 어떤 것을 생각할 때도 눈치챌 수 없을 만큼의 깊이로 자신의 상황이 어떤지, 자신에게 좋은지 나쁜지를 마음의 중심에 두고 따집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그러한 적나라한 자신을 제대로 마주하라고 이르셨습니다. --- p.136~137
벌거숭이로 태어나 벌거숭이로 죽습니다. 어렸을 때는 장난감 딸랑이 하나에 만족했지만 성인이 되면 자동차가 갖고 싶고, 이성을 원하고, 돈을 원하고, 명예를 원하게 됩니다……. 나이가 듦에 따라 갖고 싶은 것이 바뀌고, 손에 넣었다고 해서 취하고 흥분하며, 잃어버렸다고 침울해지면서 삶을 마감합니다. 갈아입는 옷과 소유물에만 마음을 빼앗겨 소유주인 나, 옷을 입는 사람인 나 자신이 지금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요. --- p.163
생명이 있는 것은 틀림없이 늙고 병들며 죽어갑니다. 많은 재산도 머지않아 빚으로 바뀌고, 애정도 증오로 바뀌는 날이 옵니다. 조건에 따라 빛이 바래는 행복은 진짜 행복이 아닙니다. 어떠한 조건에 있든 빛이 바래지 않는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이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이고, 그리고 깨달음을 찾고 이해한 가르침이 바로 불교인 것입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나의 삶을 묻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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