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 그냥저냥 살다 보니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니라 행복이 뭔지 몰라서, 행복하지 못한 건 아닐까요? 내 옆으로 행복이 지나가는 걸 몰라서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닐까요? 행복하지 않은 것과 행복이 뭔지 몰라 행복하지 못한 건 다르잖아요. 나이는 30대 중반이 넘었고 다들 멀쩡히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주변에 사랑이 뭔지, 행복이 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요. 다들 집에서는 든든한 가장이고 부모님의 사랑스러운 자녀이며 회사에서는 업무 담당자로 자기 역할에 충실한 어른일 텐데 말입니다. 사실 사는 게 바빠서 이런 생각조차 못 하고 사는 경우가 더 많죠.
대충 사는 사람보다 열심히, 잘하는 사람이 먼저 지칩니다. 무조건 열심히, 잘하기만 하는 것이 답은 아닌가 봅니다. 최소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살아가려면 생각보다 사회에서 이루어야 할 것들이 많기에 해야 할 일만 해도 금방 지칩니다. 지쳐 쉬다 보면 하고 싶었던 것이 뭐였더라, 잊어버리고. 내 꿈이 뭔지 의문이 들 때는 다들 그렇게 산다고, 그래도 해야 할 일이 있는 게 어디냐고 나를 다독여 봅니다. 보통 집이 그런 다독임이 있는 공간인데 우리에게는 가끔 나를 다독이지 않아도 되는 공간도 필요합니다. 설렘이 다독임을 대신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요. 시간은 내 능력으로 되돌릴 수 없지만, 공간은 찾아갈 수 있으니 산으로, 바다로, 예쁜 카페로, 사진 속으로 공간이동을 해봅니다. 결국 다시 제대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죠. 집 안 구석 곳곳에 상처가 남아 있더라도 괜찮을 좋은 에너지를 충전해서 돌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상을 산책처럼 살아가는 것,
애쓰지 않으면서 만족할 줄 아는 것,
상처를 금방 잊어버리는 것,
나 자신에게만큼은 솔직할 것,
후회를 곱씹지 않을 것.
이런 것들이 엄청난 능력임을 초1 때부터 알았더라면 좀 더 만족하면서 살 수 있을까요? 그 어려운 것을 이제라도 시도해 보기로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삶에서 필요한 밸런스도 달라집니다. 그 밸런스, 어차피 평생 맞춰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 늦은 건 아니겠죠? 저랑 함께 인생의 밸런스 맞춰 볼까요?
--- 「나 자신에게만큼은 솔직해지도록 해요, 우리」 중에서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은 꼭 옆에 두세요. 세상이 그렇더라고요. 살다 보니 미안하다는 말은 강요될 때가 많고, 고맙다는 말은 당연시될 때가 많아요. 강요는 불편하고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는데도 말이죠. 고맙다고 자주 말하는 사람은 꼭 기억해 주세요. 사소한 것에도 고마움을 느낄 줄 알고 당신의 사소한 점도 아껴줄 사람이에요. 고마움을 느끼는 것도 능력이더라고요. 평생 고마워할 줄 모르고 사는 사람도 많아요. 고마워하는 건 노력한다고 생기는 능력은 아닌가 봐요. 사소한 고마움도 느껴주는 사람은 따뜻한 사람입니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사람은 적어도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고요, 마음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에요. 당신에게 서운할 때도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서운함을 말할 거예요. 그럴 때는 잘 들어주세요. 그 사람이 서운함을 말하는 건 불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서운 한 점을 말하면서까지 오래오래 보고 싶다는 뜻이니까요. 그런 좋은 사람을 잃는 것보다 잘못한 점을 반성하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게 훨씬 나아요. 고마움에 미안함마저 담는 사람은 꼭 옆에 두고 잘해주세요.
--- 「이런 사람은 꼭 옆에 두고 잘해주세요」 중에서
낯을 가린다는 이유로 놓치는 인연이 많은 것 같다. 낯을 가린다는 말은 또 다른 의미로 너를 잘 모르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간관계에 노력하지 않겠다는 뜻이고, 그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상처일 수도 있으니까, 딱 오해하기 좋은 말이다. 나에 관한 얘기를 하며 오해하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텐데, 나 원래 이런 사람이라면서 ‘원래’란 단어로 자신을 설명하는 사람은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인연은 더이상 필요 없다는 사람이라면 상관없겠다.
외로운 건 부정하고 슬픈 건 참으면서 살아가도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우리 모두는 낯가리지 말고 사람을 가려야 한다. 낯가린다는 통보로 좋은 사람과 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며 다가가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마음으로 마주 보고 길을 가로질러 중간에서 만나면 되는데 길의 끝과 끝에 서 있으면서 멀뚱멀뚱 눈을 깜빡이면서 저 사람이 먼저 뛰어오나 안 오나 눈치만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 사람이 내 쪽으로 건너오길 기대하면서. 어쩌면 그 기대가 누군가에게는 강요가 될지도 모르는데 나쁜 의도는 전혀 없다고 당당히 말하면서 상대방에게 배려의 무게를 강요하고 있다. 그렇게 좋은 사람을 놓치면서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꿈이 크면 시간은 화려하게 흐를지 알았는데 모두에게 꾸준히, 똑같이 흐르는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잘산다는 거 사실 별거 없다. TV 속, SNS에서 별거 있어 보이는 사람도 카메라 밖에서 어떻게 사는지는 그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지 않는 한 정확히 알 수 없고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어떻게, 얼마나 자주 울고 있는지 모른다. 또 그 사람이 굳이 알리고 싶지 않다면 나는 몰라야 한다. 혹시 한 사람을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스토커 일지도.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으면 반은 이미 성공한 거다. 지친 어느 날, 좋은 사람과 약속을 잡으면서 기분이 좋을 수 있다면 잘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힘든 일이 있어도 좋은 사람과의 약속으로 웃을 수 있다면 쉬어갈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약속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수다 떨고 돌아갈 곳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살고 있는 거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약속을 지킬 능력이 있다는 것,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소소하지만 절대 사소하지 않다.
그러니 우리는 그냥 좋은 사람을 잘 가려서 약속하고 만나면서 살면 된다. 낯가림보다 사람 가림이 훨씬 더 중요하기에 낯 가리지 말고 사람 가리면서 살면 된다. 길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으면 먼저 뛰어가서 나 이렇게 좋은 사람이라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먼저 웃으면서 말해줘야 한다.
물론 시간을 갖고 행동으로도 증명해내야 하고. 그래야 그 사람도 나를 봐주며 서로를 알아갈 수 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좋은 사람이라면 분명 내 쪽으로 함께 뛰어나오며 헉헉거리고 있는 나에게 괜찮냐고, 함께 쉬자고 말해 줄 것이다.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으면서도 쭈뼛쭈뼛 주변만 맴돌다가 솔직히 나 낯가리는 사람이라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자. 우리.
먼저 건너오길 기다리기만 하기에는 좋은 사람이 너무 아쉽다. 좋은 사람이 있다면 가만히 기다리는 시간보다 그 사람을 향해 뛰어가는 시간이 더 행복할 것이다. 주변에 좋은 사람을 많이 두는 것은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상대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람 가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일단 잘해줘 보고 마음을 쏟아도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을 인생에서 탈락시키면 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해줬을 때 사람의 마음이 훨씬 쉽게 보인다. 더 큰 상처를 받기 전에 작은 상처로 끊어내는 연습도 필요하다.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 탈락.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도 탈락.
울게 하는 사람 탈락.
힘들게 하는 사람 탈락.
마음을 확인하게 만드는 사람 탈락.
탈락, 탈락, 탈락.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탈락시킨 사람은 다 가리고 남은 사람에게 잘하면서 살면 된다. 어차피 꼭 해야 하는 일이면 잘하면서 살아요, 우리. 사람은 제대로 가리자고요.
--- 「낯가리세요? 사람 가리세요」 중에서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다. 익숙하다 못해 혼자서 하는 게 더 편하고 당연하다. 이 말을 ‘누군가에게 상처받았어’라고 해석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완벽하게 혼자이고 싶다가도 또 누군가를 붙잡고 실컷 울어보고 싶기도 했다. 혼자인 게 익숙하고 편하다며. 그런데 왜 울어. 대답을 할 수 있다면 울지 않겠지. 이럴 땐 나도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원하는 것은 아주 많았고 그 욕심들을 채워줄 수 있는 전부를 원했다. 얼만큼이 전부인지 몰랐을 뿐. 이기적인지도 모르지만, 욕심이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마음 정도는 마음대로 살고 싶은데 그게 참 마음대로 잘 안 된다. 지나가던 모르는 사람이 당황하며 왜 우느냐는 물음에 그 사람에게 잠시 만 당황해 달라고 부탁하고서는 가끔은 울고 싶기도 하다. 앞에 있는 누군가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동안만이라도 실컷 울어보고 싶다. 생각해 보면 서른일곱이라는 나이를 먹고 내가 실컷 해보는 건 실컷 먹는 것뿐인 듯하다. 이러니 평생 다이어트지. 참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돈을 실컷 써보기 도, 꿈을 향해 실컷 노력해보기도, 하고 싶은 말을 실컷 다 해보는 일도, 실컷 울어버리는 것도 힘들다. 모르는 사람을 잡고 실컷 울어버리다 그 사람이 화라도 내면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겠지. 옆에서 잔소리하며 화내 줄 사람이 필요한 건가. 좀 혼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지만, 어쩔 줄 몰라 오래오래 당황해줬으면 하고 바란다. 혼자가 편한 사람은 아무 눈치 보지 않으려 우는 것도 혼자 우는 게 훨씬 더 편하다. 달래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지금의 마음을 설명해주고 왜 우는지를 이해시키고 금방 뚝 그쳐야 할 것 같다. 울다 보면 언젠가는 그치겠지만, 운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삼십 대의 멀쩡한 어른이 우는 건 그치는 게 목적이 아니다. 지금까지 울고 싶을 때 옆에 있어 주었던 사람은 하나하나 물었다. 울고 있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괜찮아? 왜 울어? 무슨 일 있어? 어떻게 된 일이야?
그래도 성숙한 어른은 되어보고자 마음먹고 살아가는데, 참을 만하긴 한데 울고 있을까. 이유가 한 가지일까. 설명할 수 있을까. 무슨 일인지 알고 울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할 힘은 있을까. 그런 질문들 때문에 더 혼자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모르는 것들을 자꾸 물어보는데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니까. 울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게 되는 습관이 생겨 아무리 울어도 시원하지 않나 보다. 일일이 설명하자니 귀찮고 성가시고 솔직히 자신도 없는데, 용기 없음을 담보로 적당한 불행은 그냥 감내하면서 살아갈까.
외롭다고 느껴질 때마다 혼자서 마음 편하게 영화관을 갈 수 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이제 심야영화도 없어졌으니 한밤중에 외롭다고 영화관을 찾을 수 없다. 외로움도 시간을 정해 놓고 눈치 봐야 하나.
--- 「혼자가 붙잡는 시간 속에서」 중에서
‘해봐야지’라는 결심까지 딱 한끝이 남아 있을 때가 있다. 결심 앞에서 서성이는 습관은 아마 내 인생에서 이룰 수 있던 꿈들을, 이루지 못한 꿈으로 흐릿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하면 된다고 말해줄 사람이 그때마다 곁에 있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에 대한 고민으로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 아무렇지도 않게 뭐가 그렇게 걱정이 많냐고, 선택이 어려운 거냐고, 그냥 하면 된다고,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나를 무겁게 누르던 버거운 결정도 내릴 수 있다.
세상을 알아갈수록 자꾸 시작이 두려우면서도 새로운 것 앞에서 작아지는 나를 느끼며 살아있음을 느낀다. 어제와 다를 것 같은 내일이 오는 것. 오늘과 다른 내일에 어색하게 서 있을 내가 걱정된다. 다름이 걱정되는 건지 어색함이 걱정되는 건지, 어제와 똑같음이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어제와 똑같은 나’이고 싶은 나에게 순간적인 위로 같은 말, 일단 하면 된다. 삶에 대한 책임, 결과와 잘잘못을 따질 시간이 없다. 하면 된다고 하니, 해야지 뭐. 해결은 어차피 ‘내일의 나’가 알아서 할 터이니 딱 지금 시작할 만큼만의 위로, 지금 시작할 만큼만의 응원. 그래 하면 된다.
뭔가 고민이 많은 표정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으면 그냥 하면 된다고 말해주세요. 결과가 겁이 나서가 아니라 시작이 두려워서 망설이는 거예요. 어차피 결과는 찾아가면 되는 것이니까요. 하다 보면 어찌어찌 되긴 돼요. 결과를 찾아갈 용기는 있지만, 시작이 두려운 일도 많잖아요. 아마 하면 된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하면 된다고 말해주는 당신이 필요한 거죠. 하면 된다는 말에 힘을 낸다면 그 사람은 당신을 좋아하고 있는 거예요. 당신의 ‘하면 된다’에 용기 내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에요
--- 「하면 된다」 중에서
해주고 싶은 말은 많아지는데, 자꾸 누군가의 조언은 듣기 싫어집니다. 내가 잘살고 있다는 것만을 증명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SNS에 예쁜 사진만 올리고, 사람들에게는 괜찮다고만 하고, 힘들고 아픈 시간은 숨겨버리면서 말이에요. 충고 따위 듣지 않아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또 마음은 힘들어 의지하고 싶은 순간이 생기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가 있죠.
도움을 청하는 방법을 잊은 걸까요. 아쉬운 소리를 하기 싫은 걸까요. 괜히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끝내야 공감을 받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 때 보고 싶은 책이고 싶습니다. 엄마의 잔소리 같을 수도 있고 좋은 어른의 편안한 조언일 수도 있겠죠. 그냥 혼잣말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네요. 어쩌면 저만의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을 길게 늘어놓았는지도 모르겠네요. 살면서 실수하는 건 얼마든지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나랑 똑같은 실수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제가 받았던 상처와 같은 상처들은 안 받으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알아요.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는 못하죠. 그냥 위로해 주고 싶습니다. 완벽한 해결책은 뭐, 전문서적이나 유튜브, 전문가들도 많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잖아요.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하는 거잖아요.
가끔 나도 내가 답답하고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잘 생각해 보세요. 차근차근 생각해 보면 나는 알고 있어요, 내가 왜 그러는지. 분명히 있어요, 내가 그러는 이유. 꼭 찾길 바랄게요.
--- 「사람에게 마음을 쏟도록 해요, 우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