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가 자식보다 더 바라는 것은 없었다. 특히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을(넬리에게 성을 결정지을 능력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날 밤 리처드가 넬리에게 선물한 다이아몬드 팔찌는 그런 소망의 증거였다. 더불어 그의 자상하고 부드러워진 성격도. 어찌나 성격을 쉽게 바꾸는지 정말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날 저녁 리처드는 넬리의 여린 손목에 팔찌를 채워준 다음, 소파에 발을 높이 올려 누울 수 있게 한 후 저녁으로 손수 달걀을 익혔다. 프라이팬에 너무 오래 둬서 질기기는 했지만. 넬리가 달걀에 거의 손도 대지 않은 건 알지도 못한 채 리처드는 접시를 치웠고, 넬리의 발밑에 쿠션을 하나 더 댄 다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에는 몸조심할 거지?”
“아, 그럴게요. 정말 조심할게요.”
넬리는 리처드를 안심시켰다.
--- p.127
“우리 똑똑한 아가씨.”
네이트는 찬물에 적신 수건을 변기에 몸을 숙인 앨리스의 목덜미에 대주면서 말했다.
“더 잘됐어. 그럼 당신이 늘 얘기한 책을 쓸 수 있겠다. 어쩌면 아기를 가질 준비를 시작해도 되겠네.”
그는 기쁜 것 같았다. 네이트의 관점에서 삶은 너무나 단순했다. 그는 마치 앨리스가 자신의 일에 대한 욕구를 스위치 내리듯 꺼버리거나 속도를 늦추지 않고도 기어를 바꾸는 것처럼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앨리스는 어쩌면 자신이 너무 앞서나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불안해지며 부담감이 엄습하는 걸 느꼈다. 그리고 이번에는 별 노력 없이 아주 쉽게 토하고 말았다.
--- p.158
리처드는 껌 공장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며 모든 사업 분야에 관여했다. 그는 넬리가 자기의 거짓말에 속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 순진하고 귀여운 넬리. 하지만 남편에게서 풍기는 다른 여자의 냄새를 놓치는 아내는 없다. 그 ‘미팅’이라는 것이 껌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일 거라고 넬리는 생각했다. 이런 넬리의 생각을 알게 되면 리처드는 그녀를 똑똑하다고 할까, 바보 같다고 할까?
--- p.165
앨리스와 달리 네이트는 늘 집에 있는 엄마의 손에서 자랐다. 아들들이 집을 떠난 다음에도 들고 오는 빨래를 해주고, 매일 저녁 7시면 식탁에 저녁을 차려놓는 그런 엄마였다. 네이트는 어린 시절을 즐겁게 회상하고 엄마가 해주신 모든 것에 늘 감사했지만 앨리스는?어쩌면 참 바보같이?네이트가 자신에게 같은 걸 기대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 p.186
리처드가 팔 하나 뻗으면 닿을 거리에 넬리가 앉아 있었다. 그러나 무력한 아내는 안중에도 없는 남편을 쳐다보며 넬리의 가슴에는 좌절감이 끓어올랐다. 화상을 입은 것 같았다. 없는 존재 취급을 당하고 무시당하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아, 그들이 처음 만난 밤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리처드가 자기에게 보인 관심과 그의 돈에 황홀해했던 그때로! 어릴 적부터 늘 검소하게 살아온 넬리에게 리처드의 넉넉한 돈은 기분 좋은 변화를 만들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그런 매력에 굴복하지 않을 텐데. 그러나 이런 소망을 품기에는 너무 늦었다.
--- p.255
“당신은 언젠가 생길 우리 아기 걱정은 안 돼? 우리 예쁜 딸이 정원에 들어와서 저 독 있는 잎을 따 먹으면 어떡할래?”
줄기가 검은 흙을 사방에 뿌리며 뽑힐 때 네이트는 휘청 균형을 잃었다.
“다 뽑아버릴 거야. 오늘 안에.”
“딸?”
네이트는 새로 캐낸 디기탈리스가 피부에 닿지 않게 조심하며 잡초 더미에 쌓았다. 그러고는 이마를 팔로 닦아냈다.
“나는 정말 딸이었으면 좋겠어. 당신은 안 그래? 미니 앨리스 말이야.”
--- p.299
“엄마가 받은 가정교육, 그리고 당시 여성들은 그저 집 안에 얌전히 있어야 했고, 집 밖의 삶에서는 어떤 꿈도 가질 수 없었다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엄마는 확실히 페미니스트였어요! 엄마가 저한테 준 최고의 선물(엄마는 훌륭한 엄마였기 때문에 많은 선물을 주셨지만)은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었어요.”
“어떤 건데요?”
샐리는 곧게 앉아 표정에 활기를 띠고 자신의 엄마처럼 손가락을 흔들었다.
“뭐라고 하셨느냐면, 샐리, 우리가 삶을 살아가며 스스로에게 해야 할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란다. 우리가 그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꾸만 대신 답을 하려고 난리들을 칠 거야.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해!”
앨리스의 목구멍에 무언가 이물질이 걸리는 기분이었다. 앨리스는 눈물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
“그러니까 앨리스, 내가 앨리스한테 똑같은 선물을 줄게요. 앨리스가 할 일은 책 쓰기, 장미 가꾸기, 식사 준비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에요. 그건 이 질문에 앨리스 자신의 대답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거예요.”
--- p.386-387
네이트는 말을 멈추고 기다리고 있었다. 앨리스가 다 괜찮다고, 지금까지 말해주지 않은 걸 용서한다고, 돈이 중요하다는 걸 이해한다고, 회사에서 그의 성공이 중요한 것도 마찬가지로 이해한다고(어쨌든 이 집안의 밥벌이를 하는 건 네이트였으니까), 그러니 더 많은 걸 원하는 그를 탓하지 않는다고 할 때까지. 우리는 한 팀이니까. 그게 네이트가 바라는 대답이었다. 우리는 함께이니까.
--- p.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