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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도 돌아가고 싶은 그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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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도 돌아가고 싶은 그때가 된다

박현준 | M31 | 2020년 05월 2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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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5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358g | 130*205*20mm
ISBN13 9791196282691
ISBN10 1196282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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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뜨거움. 낯 뜨거움 혹은 가슴 뜨거움. 박용우가 먼저 몇 달째 암묵적이었던 우리의 관계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 대사 역시 내가 짐작한 성격대로 표정 변화 없이 소심하고 무덤덤한 얼굴로 내뱉는다. 그래서 더 뜨거움. 이 대사 하나로 우리는 지금까지 서로의 존재를 몰래 인지하고 있었음이 들통나버렸다. 아 역시 뜨거움. 나 역시 반색하지는 않았고 건조하게 “네에… 네”라고 대답했을 뿐이다. 그래서 더욱 거세게 뜨거움. 나는 “하아, 저 기억하시네요! 하하, 네 맞아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아직 몸의 반은 물속에 들어 있는 것이 나와 박용우의 관계에 어울렸다. 우린 서로 넉살 좋게 허허 웃으며 종업원과 단골손님의 우정을 과시하기보다는 조금 애매한 게 어울렸다.
---「아.메.리.카.노.맞.으.시.죠」중에서

그리고 지하철의 경우보다 한층 더 심한 자괴감이 들 때가 있는데, 그건 바로 택시를 이용했을 경우다. 예전에도, 그때도, 거의 매번, 심지어 오늘도! 그 시각 택시를 타면 왜 항상 기사님들은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애청하고 있는 것인가! 아, 손석희 씨의 그 정갈하고 냉철한 음성은 술에 찌들어 뒷자리에 너부러져 있는 내 모습과 어찌나 그리도 상반되는지….
---「술에 취한 귀갓길에서」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배우, 김윤석. 아직도 그가 영화 「거북이 달린다」에서 한 대사가 아른거린다. 싼티 나는 다방 레지가 온갖 교태를 부리며 콧소리로 오빠~오빠~거리며 회를 사달라고 조른다.
때 김윤석이 세계에서 제일 시크하고 찰진 어조로 한 대사가 정말이지 일품이다.
“오빠여? 아빠여?”
---「아저씨론」중에서

“어디에 사는 누구께서 신청하셨습니다. 윤상의 이별의 그늘.”
앗, 고된 녹음이 끝나고 귀가하는 길 반가운 선곡이었다. 아직 음악이 시작되기 전 기사님께서 미리 불륨을 조금 올리시는 1차 행동 발견. 이윽고 그 유명한 인트로가 시작되고 있었고, 기사님께서 클랙슨 부분을 손가락으로 베이스 드럼에 따라 꽤나 정확하게 두드리시는 2차 행동 발견. 그러는 동시에 다시금 볼륨을 더 올리시는 3차 행동 발견.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 나는 입을 열었다.

“기사님, 윤상 좋아하시는가 봐요?
손가락으로 리듬도 타시는 거 보니까요!”
기사님은 반색하시며 “네! 저 이 노래 정말 좋아해요!”라고 말하신다. 이에 나도 한껏 격앙된 음성으로 대답했다.

“하하, 그러시구나. 저 제일 좋아하는 가수가 윤상이거든요!”
기사님은 마음 놓고 볼륨을 화끈하게 더 높이신다. 늦은 새벽 라디오 소리를 소음으로 여길 수도 있는 낯선 승객이 같은 취향으로 합치되어 편안한 친구로 허물어지는 순간. 친구가 된 순간부터 기사님은 과감히 4차 행동을 개시하신다. 따라 부르신다. 큭큭. 그것도 감정 이입하여 열창하신다.
---「이별의 그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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