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에 수많은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졌지만 우주에는 아직도 수많은 미스터리가 남아 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인간이 쌓아온 지식의 양은 실로 방대하지만 아직도 ‘아는 것’의 목록보다 ‘모르는 것’의 목록이 훨씬 길고 그 목록의 증가 속도도 훨씬 빠르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모르는 것’이야말로 과학을 견인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이미 알려진 내용을 설명할 때보다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을 연구할 때 훨씬 강한 흥미를 느낀다. 과학이 살아서 숨을 쉴 수 있는 것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식의 0번째 경계. 알려진 미지(味知)(19쪽)」중에서
초기 조건의 미세한 변화에 민감한 계는 앞에서 내가 주사위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나열했던 방정식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방정식은 분명히 주어져 있다. 그러나 주사위가 손을 떠나는 순간, 위치와 선속도, 진행 방향, 회전각 속도, 탁자와 주사위의 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을까? 물론 희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직사각형 당구대 위를 굴러가는 공처럼 초기 조건의 작은 변화가 결과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알 수 없는 시점’을 알아내는 것이다. 계의 미래를 더는 예측할 수 없는 시점을 간파하여 성공을 거둔 대표적 사례로는 수학자 로버트 메이(Robert May)의 인구 증가 방정식을 들 수 있다.
---「지식의 첫 번째 경계. 카지노 주사위(75쪽)」중에서
전자와 쿼크가 하나의 점에 집중되어 있다 해도 점을 잡아 늘여서 두 개의 점으로 분리할 수도 있다. 또는 우리가 모르는 ‘숨은 차원’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1980년대 중반에 등장한 ‘끈 이론(string theory)’의 주제이다. 끈 이론에 따르면 전자와 쿼크는 점이 아니라 특정한 진동수(frequency)로 진동하는 가느다란 1차원 끈이며, 끈의 진동 패턴에 따라 다양한 입자로 나타난다. 수천 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결국 피타고라스의 우주 모형으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한동안 트럼펫이 우세한 듯싶더니 이번에는 진동하는 끈 즉 첼로가 뜨고 있다
---「지식의 두 번째 경계. 첼로(179쪽)」중에서
양자 물리학은 이토록 기이한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입자는 ‘확률 파동’이라는 수학적 객체로 존재하다가 관측이 행해지는 순간에 실체로 둔갑한다. 간단히 말해서, 관측 행위가 실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전자가 감지판에 도달하여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지 않는 한, 전자는 공간에 퍼져 있는 확률 분포로 간주되어야 하며, 이 분포는 파동적 특성을 갖는 함수로 표현된다. 그리고 감지판에 전자가 단 하나도 도달하지 않는 ‘금지 영역’이 존재하는 이유는 수학적 파동 함수가 두 개의 슬릿과 상호 작용을 교환하면서 그렇게 되도록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입자가 감지판에 도달하면(관측되면) 확률 파동이 붕괴되면서 하나의 위치가 결정된다. 마치 탁자 위를 구르던 주사위가 한 자리에 멈추면서 눈금이 결정되는 것과 같다.
---「지식의 세 번째 경계. 우라늄 한 덩어리(208쪽)」중에서
지금처럼 다양한 생명체가 존재하는 이유는 다윈의 진화론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 생명체의 종류가 많아진 것은 진화의 필연적 결과이며, 여기에 창조주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그러나 우주에 존재하는 20여종의 상수(전자의 질량, 중력 상수, 빛의 속도, 양성자의 전하, 플랑크 상수 등)가 지금과 같은 값으로 세팅된 이유만은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들의 값이 지금과 달랐다면 생명체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생명체가 번성하게 된 생물학적 이유는 알아냈는데, 그런 환경이 조성된 물리적 이유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지식의 네 번째 경계. 잘라낸 우주(317쪽)」중에서
우리는 기체 분자로 가득 찬 방의 미시적 상태를 완벽하게 알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거시적 상태뿐이며, 하나의 거시적 상태에는 수많은 미시적 상태가 대응된다. 지식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통계적 상황밖에 고려할 수 없는 것이다. 로벨리와 콘은 이 불완전한 지식이 우리의 시간 감각과 관련된 ‘흐름’을 낳는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알 수 없는 미시계를 거시적 관점에서 고려할 때 시간이 개입되고, 여기서 더 깊이 파고들어 가면 시간은 사라진다. 통에 담긴 물을 거시적 규모에서 보면 ‘수면’이 존재하지만, 원자 규모로 들어가면 수면이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하나의 원자에 대해서는 온도를 논할 수 없고 축축한 물 분자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온도 역시 기본적인 개념이 아니라 겉보기 현상에 불과하다.
---「지식의 다섯 번째 경계. 손목시계(416쪽)」중에서
“컴퓨터를 이용하여 블랙홀의 거동을 완벽하게 시뮬레이션했다면, 스크린에는 주변 물체를 맹렬하게 잡아당기는 장관이 연출될 겁니다. 하지만 컴퓨터가 자기 주변에 있는 책상이나 의자를 진짜로 잡아당기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시뮬레이션이 제아무리 그럴듯해도 컴퓨터 주변의 시공간은 휘어지지 않습니다. 의식의 시뮬레이션도 이와 비슷합니다. 당신은 컴퓨터로 의식을 거의 완벽하게 흉내 낼 수 있지만 컴퓨터 자신은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시뮬레이션과 에뮬레이션(emulation)의 차이입니다. 의식은 실제 일어나는 물리적 현상으로 인과율에 입각하여 생성되는 것입니다.”
---「지식의 여섯 번째 경계. 챗봇 앱(487쪽)」중에서
수학은 주사위에 대해서 마술 같은 결과를 낳는다. 확률이란 무엇인가? 주사위를 600번 던진다면 눈금 6이 100번쯤 나올 것이다. 그러나 내게 필요한 것은 확률이 아니다. 나는 주사위를 한 번 던졌을 때 어떤 눈금이 나오는지 알고 싶다. 그런데 혼돈 이론의 방정식에 따르면 초기 상태의 미세한 변화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계의 미래(또는 과거)를 예측하려면 현재 상태를 완벽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양자 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알 수 없으므로 계의 미래(또는 과거)를 예측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지식의 일곱 번째 경계. 크리스마스 폭죽(561쪽)」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