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왜 대화인가
플라톤은 평생에 걸쳐 글을 썼고 그 결과 많은 저술을 남겼다. 로마의 키케로(Cicero)는 플라톤을 두고 “쓰면서 죽었다”, “쓰다가 죽었다(mortuuns scribens)”고 했다. “쓰면서 죽었다”는 표현을 조금 바꾸면 “죽으면서까지 썼다”는 것이 된다. 그가 남긴 저술들은 형식적으로 매우 독특하다. 마치 연극 대본처럼 등장 인물 사이의 대화로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작품들을 ‘대화편(희랍어(dialogos), 영어(dialogue), 독일어(Dialog))’이라고 부른다. 희랍어 ‘디알로고스(dialogos)’는 ‘로고스를 주고 받는 것’을 말한다. 플라톤이 남긴 대화편들을 연구자들은 그 성립 시기에 따라 ‘초기 대화편’, ‘중기 대화편’, ‘후기 대화편’으로 분류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라케스』 등 초기 대화편들은 플라톤이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세상에 알리겠다는 의도가 강하게 드러난 것들로서 ‘소크라테스적 대화편’이라고도 불린다. 이 초기 대화편들에는 흔히 플라톤 철학의 핵심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른바 ‘이데아 이론’의 싹이 담겨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파이돈』, 『국가』, 『심포시온』은 중기 대화편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요하고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가장 널리 읽힌 삼총사라 할 만하다. 바로 이 세 대화편에 고전적 형태의 ‘이데아 이론’이 가장 잘 드러난다. 그런가 하면 『파르메니데스』, 『테아이테토스』, 『필레보스』 등 후기 대화편은 말년의 플라톤 철학이 담긴 것으로서 중기에 확립된 ‘이데아 이론’의 응용과 적용을 시도한다는 성격이 강하다. 초기 대화편에서 중기 대화편을 거쳐 후기 대화편에 이르는 동안 우리는 소크라테스 영향력이 변화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초기 대화편에서는 소크라테스가 대화를 주도하고, 중기 대화편에서는 소크라테스와 대화 상대방이 거의 대등하게 주장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후기 대화편에서는 오히려 소크라테스의 대화 상대방이 주로 의견을 개진하고 소크라테스가 이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급기야 마지막 작품 『법률』에는 소크라테스가 등장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 26 내지 27편의 대화편을 전승받고 있다. 26편 혹은 27편이라고 확정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26 내지 27편’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히피아스』라는 이름을 가진 두 대화편이 존재한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어느 하나는 『대 히피아스Hippias meizn, Hippias major』로, 다른 하나는 『소 히피아스(Hippias ellaton), (Hippias minor)』로 불러 구별한다. 그런데 이 『대 히피아스』를 두고는 오랜 연구에도 불구하고 진작(眞作)이라는 의견과 위작(僞作)이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그러니까 『대 히피아스』를 진작으로 보면 플라톤 대화편은 27편이요, 위작으로 보면 26편이 되는 것이다. ‘26편 내지 27편’이라고 애매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오랜 세월 동안의 연구로 학자들이 합의에 이른 플라톤 대화편 목록은 다음과 같다. 플라톤은 이 목록의 순서대로 집필했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자들은 각 대화편의 ‘연대기적 시기(chronological date)’와 ‘사건의 시기(dramatic date)’를 구별한다. 앞에 제시한 목록의 순서는 ‘연대기적 시기’를 드러낸다. 그러니까 플라톤은 그의 글쓰기 인생에서 맨 처음에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썼고, 그 다음으로는 『크리톤』을, 또 그 다음으로는 『라케스』를 썼다. 이와는 다른 것이 ‘사건의 시기’이다. 예컨대 4부작tetralogia으로 묶이는 『에우티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을 보자. ‘연대기적 시기’로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맨 앞에 오고, 그 다음이 『크리톤』, 그 다음이 『에우티프론』, 맨 마지막이 『파이돈』이다. 앞서 4부작의 순서와는 다르다. 이 4부작의 순서가 ‘사건의 시기’에 따른 순서이다. 소크라테스는 재판을 받으러 가는 길에 법정 앞에서 재판을 마치고 나오는 에우티프론을 만난다. 둘 사이의 대화가 『에우티프론』이다. 소크라테스가 피고로서 재판을 받는 과정이 『소크라테스의 변론』에 담긴다. 사형을 선고받은 소크라테스는 약 한 달간 감옥에 머문다.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있던 날 델로스 섬을 향하는 아폴론 종교 사절단이 출발한다. 델로스 섬에서 아폴론 제사를 마치고 아테네에 귀환하기까지 약 한 달이 걸린 셈이다. 당시 아테네에서는 이 종교 사절단의 왕복 항해가 매우 중요한 일이어서 이 기간 동안 사형의 집행이 연기되었다. 그 사이 소크라테스가 감옥에서 동년배이자 고향 사람인 크리톤과 나눈 대화가 『크리톤』에 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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