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남편의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 딱 5년 만의 일이다. 이제는 자유다. 주민센터의 회전문을 밀고 나오면서 나는 속으로 씩 웃었다. 그동안 기다렸던 애태움이 단번에 사라지는 듯했다. 마음만큼이나 발걸음이 가볍고 머리칼을 날리는 바람마저 상쾌했다. 가정법원에서 받은, 남편의 실종선고 심판 판결문을 반으로 곱게 접어 엊그제 산 토리버치 토트백에 조심조심 넣었다. 그 안에는 사망신고 때 사용했던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도 들어 있었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니 속이 후련했다. 이제 보험사를 찾아가 죽은 남편의 생명보험을 청구하면 된다.
---「효신 이야기 #1 사망 선고」중에서
“보험금은 어떻게 할래? 지금 바로 신청하러 갈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눈치 없는 남자 같으니라고. 지금은 돈보다는 축배를 들 때야. 돈은 곧 어마어마하게 들어올 텐데 서두를 필요 있겠어? 대꾸를 하지 않자 그제야 필주 씨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내 눈치를 살핀다. 내 기분이 어떤 상태인지 애써 가늠하려는 모습이 얼굴에 다 드러난다. 비위를 맞추려는 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그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웃자 필주 씨도 이유 없이 따라 웃는다. 그 바람에 그의 왼쪽 입꼬리가 살짝 들려 올라갔다. 매끈하게 빠진 턱과 그 미소는 내가 미치도록 좋아하는 그의 표정이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내 몸은 뜨거워진다. “오늘은 아니야. 적어도 몇 달은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누라 행세를 해야지. 보는 사람 눈도 많고 시어머니 눈치도 있으니까. 어쩌면 상을 치러야 할지도 몰라.”
---「효신 이야기 #1 사망 선고」중에서
“[정효신 씨 되십니까? 경기 북부지방 경찰청 남양주서 이윤세 경장입니다.]
“경찰청이요? 경찰이 왜 저를?”
[남편분 성함이 김재우 씨, 맞죠?]
“네? 그렇긴 한데…….”
[김재우 씨를 찾았습니다.]
뭐, 뭐라고? 남편을 찾았다고? 아니야, 그럴 리가……. 그럴 수가 없어.
[정효신 씨, 듣고 계십니까? 실종된 남편분을 찾았다고요.]
말도 안 돼. 남편은 죽었는데, 내가 이 손으로 죽여버렸는데……, 어떻게?
---「효신 이야기 #1 사망 선고」중에서
“재우야!” 시어머니는 그를 보자마자 새된 소프라노로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갔다. 뭐? 재우? 잠깐, 저 사람이 내 남편이라고? 그게 무슨 소리 야? 얼굴이 전혀 다르잖아. 설마 시어머니는 그를 재우 씨라 생각한다는 거야? 말도 안 돼. 저 사람은 내 남편이 아니라고. 당신들은 모르겠지만 내 남편은 죽었어. 이미 5년 전에. 역시 경찰의 착오였어. 그러나 휠체어를 탄 남자에게 달려간 시어머니는 그의 발치에 쓰러져 다리를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했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면서 목 놓아 울었다. 눈물겨운 모자의 해후에, 난 실소가 나올 것 같아 입을 막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이고, 재우야, 연락이라도 하지 그랬니? 그동안 이 어미가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지 알아? 이 불효자식! 그래도 살아 있으니 됐다. 무사하니 됐어.” 시어머니의 오버에 소름이 끼쳤다. 당장이라도 연극을 그만하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저 남자는 내 남편이 아니라는 말을 꺼내기에는 분위기가 너무도 진지했다.
---「효신 이야기 #3 그 사람이 아니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