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국의 역사가 짧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21세기 현대인의 삶의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의 역사는 세상에서 가장 길 것이다. 그중에서도 뉴욕은 현대 도시문명의 원류다. 가정집에 전기 콘센트가 설치되어 가전제품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곳, 길거리에 전기 가로등이 처음 세워진 곳이 뉴욕이다. 상류층만 즐기던 ‘문화’가 대중의 즐거움을 위한 ‘엔터테인먼트’로 바뀐 곳도 뉴욕의 브로드웨이다.
중산층이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재테크’라는 것을 처음 시작한 곳도 뉴욕이고, 고속도로를 뚫고 대도시 인근에 위성도시를 만들어 오늘날 수많은 직장인들이 교통체증을 견디며 긴 시간 출퇴근을 하는 현상도 뉴욕이 발명한 생활상이다. 결혼 대신 타인의 구속 없이 연애만 하는 젊은이들의 ‘싱글즈 라이프’도 뉴욕에서 처음 실험되었으며, 백화점의 ‘쇼 윈도우’를 보고 선택한 의류, 잡화 등의 브랜드로 나의 정체성을 정의하기 시작한 것도 뉴요커가 처음이다
--- p.6-7, 「프롤로그」중에서
영국과 미국이 국교를 트는 것을 계기로 애스터는 발 빠르게 움직여서 영국령인 캐나다와 미국 사이의 모피 수송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이렇게 번 돈을 다시 중국에 아편을 파는 사업에 투자해 몇 배로 부풀렸고, 이후 그 업계를 떠나 뉴욕의 부동산을 긁어모았다. 그의 미천한 시작, 글로벌한 비전, 업계를 가리지 않고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은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이 되었다. 뉴욕대에 입학했을 때 처음 입주했던 기숙사 앞의 조그마한 광장의 이름은 ‘애스터 플레이스’로, 아직도 그를 기리고 있다.
애스터의 지독한 무례함이 오히려 뉴요커 사이에 영웅담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그가 계급 상승 지향의 굴레에서 자신을 해방시킨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애스터는 애초부터 귀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상인 계급 중에서도 젊은 시절부터 미국 중부의 거친 자연에서 모피 사냥꾼들과 뒹굴던 사람이었다. 그는 거부가 되었다고 해서 뉴욕의 사교계나 유럽의 귀족 앞에서 본 모습을 감추고 우아한 척 가면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원래부터 교양 없는 계층 사람이었음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신이 애초부터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그토록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고 믿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 p.33~35, 「Part 1. 한 가지에 올인하다, 03 _ 미천한 시작을 자랑스러워한다」중에서
뉴요커는 인간의 공통점을 믿는다. 극단적인 상황에 많이 처해본 도시에서 뉴요커는 인간이 압박을 받으면 이상한 선택을 한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사회가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은 나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그와 내가 처한 상황이 달라서일 뿐이라는 믿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한 선택은 내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시사점을 던져준다.
‘역지사지’라는 우리의 옛말처럼, 미국에도 ‘남의 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걸어보기 전에는 남을 판단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교육수준, 사회계층, 문화권의 사람과는 역지사지 할 수 있지만, 존 보이토비츠와 같은 사람은 사연을 들어 볼 가치조차 없다며 무시한다. 만약 내가 알고 있는 스토리가 획일적이어서 창의적인 콘텐츠를 찾기가 어렵고 내 사고가 좁다고 느낀다면 그처럼 비참하고 엽기적인 사연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 발성되지 않는 목소리들이 바로 우리 사회가 그렇게 갈구하던 ‘새로운 콘텐츠’인 것이다. 새로운 콘텐츠는 남의 스토리가 나에게 중요할 때 가장 잘 발견된다.
--- p.98-99, 「Part 2. 차이를 만들다 05 _ 사연이 바로 콘텐츠다」중에서
아기 때부터 자발적인 지적 호기심과 사회생활의 필수 요소인 포용력, 리더십 같은 것을 몸에 배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도록 그와 관련된 장난감, 리듬 타기, 공간 지각 놀이 등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공부를 시킨다’가 아니라 ‘알아서 공부할 줄 알고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영리한 아이를 만든다’를 목표로 영유아기에 집중적인 교육 투자를 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시장의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미국인이 ‘discipline’이라고 부르는 자기 통제력은 다른 문화에 대한 존중과 더불어 뉴요커 교육 철학의 두 번째 축이다. 책에서 머리를 떼지 않고 공부만 하느라 어른이 되었는데도 낯선 곳에서 스스로 길 하나를 찾지 못하고, 새로운 사람과 말을 트지도 못하며, 자기가 먹을 음식조차 스스로 만들지 못하는 어른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앞에서 행복의 지름길은 경제적 자립이라고 말한 것과도 상통한다.
--- p.128-129, 「Part 3 같이 또 같이 03 _ 뉴요커의 자녀 교육」중에서
동네마다 색채가 전혀 다른 뉴욕은 마치 전 세계의 문화를 압력솥에다 넣고 끓이고 있는 곳 같다. 그리스와 중국이, 자메이카와 아프리카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서로 경계하면서도 생각과 삶의 방식을 주고받고 배우면서 또 싸우는 과정에서 세계에서 가장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도시문화를 형성하며 거듭난 것이다. 이것은 프리드먼이 “납작하고, 덥고, 사람이 너무 많다”라고 묘사한 지구 전체의 미래 모습과도 비슷하다.
처음 뉴욕에 간 사람은 비싼 물가, 불친절한 사람들 때문에 뉴욕에 질려서 다시는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렇게 워킹 투어를 하다가 자기가 어느 동네에 무슨 이유로 끌리는지를 발견하면서 자신도 모르고 있던 자기의 면모를 발견하는 도시가 바로 뉴욕이다. 뉴욕에서는 항상 어느 구석인가 나와 맞는 것이 있다.
--- p.161, 「Part 4 스토리 오브 뉴욕 01 _ 전 세계의 문화 압력솥」중에서